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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칼럼] <불량주부>, 모든 생활에는 씩씩함이 필요하다

가족 중 유독 한 사람만 힘을 내야할 이유는 없다

이 드라마의 매력은 티격태격하며 생활에 힘을 얻는 과정에 있다

며칠 전, 올해로 공무원 2년 차인 친구를 만났다.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2년 동안 준비하여 시작한 공무원 생활. 그 생활도 벌써 2년째에 접어들었는데, 요즘 들어 부쩍 그만두고 싶은 마음에 좀이 쑤신단다. 야근을 밥 먹듯 하며 이 한 몸 다 바쳐도 언제 잘릴지 모르는 회사에 다니는 나로선 칼퇴근에 잘릴 위험부담 없는 직장에 다니는 것만으로도 큰 복이라는 반응이 나올 수밖에. 그러나 친구는 도리어 스트레스가 심하더라도 일반 회사에 다니는 내가 부럽다고 한탄한다.

다닐 직장이 있는 것만으로도 고마운 일이라는 사실도 잊은 채, 우리는 사회생활의 고단함을 주제로 오랜 시간 이야기를 나누었다. 우리의 공통된 의견은 ‘쉬고 싶다’는 것. 뉴욕과 파리를 오가는 커리어 우먼 내지는 일과 살림을 모두 완벽하게 해내는 슈퍼우먼을 꿈꾸었던 두 여고생은 어디로 간 것인지. 낯선 사람과 부대끼며 몇 년 출퇴근하더니 이제는, 아침잠 좀 실컷 자보는 게 소원인 나머지 전업주부를 꿈꾸게 된 서른 줄의 여자 둘만 남았다. (전업주부 역시 아침 일찍 일어나야 한다는 사실을, 그들은 잊은 듯하다.)

그렇기에 ‘주부생활 몇 년 만에 취직한 아내, 직장생활 몇 년 만에 실직한 남편’을 소재로 한 <불량주부>라는 드라마는 방영 초기부터 나의 관심을 끌 수밖에 없었다. 요즘 내가 딱 ‘누가 나 대신 회사 좀 나가줬으면’ 하는 심정인 탓이다. 그리고 아내의 취업을 민감하게 받아들이는 손창민을 볼 때마다 사회에서 묻은 때를 씻고 황폐해진 정신을 가다듬을 시간으로 받아들이면 되지 않겠냐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의도했든 그렇지 않든, 자신을 대신하여 일터로 향하는 씩씩한 아내에게 오히려 고마워해야 할 일 아닌가.

그렇다고 내가 극중 남편을 ‘나쁜 놈’ 쯤으로 본다는 뜻은 아니다. 만약 내가 전업주부인 신애라의 입장이었다면, ‘실직’과 같은 가족 내 위기상황이 닥쳤을 때 남편이 말이라도 ‘나만 믿어’라고 해주어야 일할 의욕도 가져볼 수 있을 것 같다. 집에 있으라는 남편의 말에 반발은 하겠지만, 그 말 덕에 기운을 차릴 수도 있는 것이다.

모 탤런트의 일화가 생각난다. 남편이 무명 탤런트이던 시절, 단칸방에 신혼살림을 꾸미고 어렵게 살던 때를 떠올리며 그의 아내가 이런 말을 했었다. 일거리가 떨어지자 버스와 지하철에 볼펜 따위를 팔러 나가는 남편을 보며 ‘내가 이 사람을 믿고 살아도 되겠구나’ 생각했다고.

토끼 같은 자식들이 ‘아빠 힘내세요~ 우리가~ 있잖아요~’ 노래하고, 여우 같은 아내가 ‘외로워도 슬퍼도 나는 안 울어~’ 힘을 돋우고. 그러나 가족 중 유독 한 사람만 힘을 내야 할 이유는 없다. 누구에게 힘내라고 하기 전에, 나부터 먼저 힘내서 열심히 사는 모습을 보여야 상대방도 힘내서 열심히 살 수 있다. 그런 점에서 <불량주부>의 아내와 남편은 서로에게 참으로 힘이 되는 ‘힘내라 송’을 부르고 있는 셈이다. 아내는 사회생활의 어려움을 이해하고, 남편은 가사일의 가치를 깨닫는 등 앞으로 전개될 내용이 어느 정도 짐작은 가지만, 이 드라마의 진짜 매력은 이들 부부가 티격태격하며 생활의 힘을 얻는 과정에 있을 것이다.

모든 생활에는 ‘생활력’이 필요하다.

직장생활이든, 결혼생활이든, 주부생활이든 무엇이든 씩씩해야 잘 할 수 있다. 뉴욕과 파리를 오가는 커리어 우먼을 꿈꾸던 시절에는 현모양처형 여성(그때는 현모양처라고 하면 무조건 하늘하늘한 원피스를 떠올렸다)만 주부생활을 잘 할 수 있으리라 믿었다. 그러나 지금은 주부생활도 씩씩해야 잘 할 수 있다고 믿는다. ‘생활’이라는 차원에서 볼 때, 모든 생활에는 ‘생활력’이 필요하다. ‘생활력 강하다’라는 말이 언제부터 자갈치 시장을 연상시키는 표현이 되었는지는 모르겠으나, 굳이 자갈치 시장까지 가지 않더라도 생활에는 ‘힘’이 필요한 것이다. ‘생활하는 힘’, 그것은 바로 ‘생활력’이다.

직장생활과 주부생활, 모두 힘들기는 매한가지라는 평범한 진리를 전하는 이 드라마는 한쪽 생활에 치어 다른 쪽 생활을 꿈꾸는 사람들에게 어느 정도 위안을 줄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아침잠 좀 더 자고 싶다’는 이유로 전업주부를 꿈꿔보는 나 같은 사람에게는 더욱 그러하다. 탈출하고 싶은 일상이지만, 한편으로는 얼마나 힘들게 이루어놓은 일상이던가. 또한 나는 얼마나 열심히 살아왔고, 나의 생활력은 내 주변인들을 얼마나 살게 하던가. 웃고 즐기는 와중에 자신의 ‘생활력’을 재정비할 수 있는 시간이 될 수 있다면 나는 이 드라마에 더 바랄 것이 없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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