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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만한 구조의 스릴러 영화, <블랙아웃>

아무도 믿을 수가 없다. 기억을 잃어버린 자를 둘러싼 미궁의 살인사건.

<블랙아웃>은 필립 카우프만의 연출 작품이다. 그가 만든 <외계의 침입자>(1978)나 <필사의 도전>(1983)은 수준급이다. 그는 할리우드 대중주의와 장인의 연출력을 능수능란하게 교합하는 것으로 인정받을 만한 감독이다. <블랙아웃>은 노련한 그 장인의 손길이 스릴러 장르에 미쳤다는 점에서 흥미를 자아낸다. 게다가 새뮤얼 잭슨, 애슐리 저드, 앤디 가르시아로 엮은 삼각편대는 기대할 만한 배역진이다. 영화에서 그들의 연기는 훌륭하다고 말하기는 힘들어도 나쁘지는 않다. 문제는 영화의 방만한 구조다.

제시카(애슐리 저드)는 끔찍한 사건으로 부모를 잃은 나쁜 과거를 갖고 있다. 그러나 아버지의 절친한 친구이자 경찰계의 대부인 존 밀스(새뮤얼 잭슨)의 도움을 받아가며 여자로서는 처음으로 샌프란시스코 강력계 경관이 된다. 시기의 눈총들이 거세지만 제시카는 아랑곳하지 않는다. 다른 남자들과 달리 동료 경찰 마이크(앤디 가르시아)만은 그녀를 이해하고 돕는다. 제시카는 살인사건의 조사를 맡게 되는데, 우연히도 피해자는 자신이 알고 있는 남자다. 그런데 연달아 일어나는 유사한 살인사건의 공통점이 모두 의아하게도 그녀와 관계있는 남자들의 죽음이다. 그런데도 제시카는 사건의 알리바이가 될 만한 그들과의 중요한 순간을 기억해내지 못한다. 제시카는 자신이 그들을 죽인 게 아닌지 스스로 혼란에 빠진다. 자신을 포함하여 그 어느 누구도 믿기 힘든 상황이 된다.

<블랙아웃>이 내거는 게임의 관건은 누가 범인인가이다. 스릴러 장르의 초급 규칙이다. 기본적인 이 관습을 풀었다가 다시 묶는 기술적 수준에 따라 작품의 수준도 결정된다. 그 묘미는 가장 가까운 것을 가장 멀리 있게 한 뒤 눈치채지 못하는 사이에 다시 거대한 무엇의 실체로 근접시키는 데 있다. 그것이 게임의 기술이다. <블랙아웃>은 마치 마술처럼 풀려날 어느 지점이 있기라도 한 듯 유보하며 영화를 밀고 나간다. 그러다가 ‘설마 하는’ 사이에 공식을 정확히 기입해 넣음으로써 진을 빼버린다. 필립 카우프만이라는 숙련된 장인의 이름을 잊더라도, <블랙아웃>은 장르적 쾌감을 주려던 일차 목적을 성취하지 못한다. 두 시간 내내 ‘스릴러 교본 제1장 첫줄’만 반복해서 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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