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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속 ‘일하는 주부’ 좋긴 한데…

드라마속 취업양상 다양해져 대부분 비정규직 현실 반영

<굳세어라 금순아>

여성들의 취업이 늘고 있다. 통계청 자료에도 지난해 여성의 경제활동 참가율이 49.8%, 10년전보다 2%포인트 늘어난 수치다. 그래서일까? 요즘 드라마에선 여성들 특히 주부들이 일자리를 찾아 나서는 모습을 흔히 볼 수 있게 됐다.

젊은 나이에 남편을 잃고 아이까지 낳아 힘겹게 시집살이하는 ‘금순이’는 녹즙 배달 아르바이트를 그만 두고 미용실 보조 일을 잡았다.(문화방송 일일극 <굳세어라 금순아>) 여섯살짜리 딸이 있는 결혼 6년차 전업주부 ‘미나’는 피자 매장직원을 거쳐 본사 마케팅팀으로 들어갔다.(에스비에스 월화극 <불량주부>) 30대 이혼녀 ‘성실’도 프로슈머(생산자와 소비자의 영문 합성어)라는 신종 일자리를 구했다.(한국방송 주말극 <부모님 전상서>)

그런데 이들의 직업은 미용사 보조, 계약직 사원, 프로슈머 등 하나같이 현재로선 비정규직이다. 이 또한 여성의 취업률은 증가하나, 그 가운데 비정규직 비율이 높아지는 현실을 반영한 듯 보인다. 2003년 여성 취업자 가운데 73% 이상이 비정규직이라는 조사를 거론하지 않더라도 말이다.

뚝딱 취업되는건 비현실적 ‘궁여지책’ 동기도 아쉬움

<불량주부>

이런 현상에 대한 평가는 일단 긍정적이다. 드라마 속 주부들의 직업이 최소한의 현실성을 얻으며 다양해지는 양상이 그렇다. 지금껏 주류를 이루던 엘리트 중심의 일하는 여성 캐릭터에서 탈피한 것도 진일보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30대 ‘아줌마’들의 인터넷 모임인 줌마네(zoomanet.co.kr)의 부대표 로리주희씨는 “예전 드라마에서 여성의 직종은 매우 비현실적이며 획일적이었으나, 이처럼 다양해지는 것은 드라마 제작진들의 노력이 엿보이는 대목”이라며 “기존 드라마를 보면, 결혼하지 않은 여성들만이 주로 직장을 다니고, 직장에서도 일하는 것보다는 사랑타령이나 하는 모습이 주로 나왔었다”고 말했다. 여성민우회 미디어팀의 강혜란씨도 “엘리트 중심의 일하는 여성에서 다양한 직업적 양상으로 변화한 것은 긍정적으로 본다”고 평가했다.

그러나 드라마에 따라 몇 가지 한계가 지적된다. 취업 과정의 비현실성이 첫째다. 결혼 전 직장생활을 했다지만 6년차 주부인 미나가 그리 어렵잖게 취업한 것이나, 소비자인 주부로서 프로슈머가 되기에 장점이 있다 해도 전업주부 15년만에 쉽사리 직장생활에 나선 성실은 그리 현실적이지 못하다. 강혜란씨는 “30년전이나 지금이나 여성의 취업률이 그리 높지 않은데 주부가 너무 쉽게 취업하는 모습은 아쉬운 부분”이라고 지적했다.

자신만의 능력과 노력으로 일자리를 얻을 법함에도 거의 언제나 주부들이 곁에 있는 남성들에게서 도움을 받는 것도 한계다. 금순이는 자립적이고 강인한 성품을 지녔다는 점 등에서 기존 드라마와 구별 되는 독창성을 지닌 여성 캐릭터이지만, 결국 의사인 재환의 도움으로 재환 어머니의 미용실에서 일하게 됐다. 직장 상사인 젊은 실장 연우의 지대한 관심을 받는 미나 역시 크게 다르지 않다.

<부모님 전상서>

취업 주부의 가장 큰 어려움인 육아와 가사를 다루는 부분에서도 아쉬운 점이 보인다. 성실의 경우, 많은 시간을 투여하지 않는 직업을 선택하는 설정으로 피해가고 있으나 자폐아인 아들 양육과 취업 사이의 갈등이 확연히 표현되지 않은 점이 아쉽다.

취업과 자아실현의 관계는 세 드라마의 가장 큰 한계를 보여주지만, 한계를 넘어설 가능성이 없진 않다. 남편의 죽음, 실직, 이혼 뒤에야 일자리 찾기에 나섰다는 것은, 취업의 직접 동기가 자아실현과 거리를 두고 있다는 방증이다. 그러나 이런 과정을 거쳐, 금순이 ‘비달 사순’ 같이 되겠다던 꿈을 다시 꾸고 미나는 전업주부 때 잃어버린 정체성을 되찾고 성실은 결혼과 함께 놓친 자립의 기회를 회복한다면, 기존 드라마가 만든 취업 주부의 경계를 뛰어넘는 성과도 낳을 수 있겠다. 로리주희씨는 “어쩔 수 없이 돈을 벌어야하는 상황에서가 아니라, 평범한 자신의 꿈을 찾기 위해 취업하는 아줌마의 모습을 보았으면 한다”고 말했다.

‘백마탄 왕자’ 들 어디 가셨나

‘백수’ 캐릭터들 안방점령

‘백마 탄 왕자’로는 이제 장사가 안되나보다. 요즘 드라마 속 왕자가 사라졌다. 교묘히 겉모습을 감추고 언제 다시 안방을 점령할지 알 수 없지만 말이다.

그래서 일단 백수다. 상시 구조조정 체제에 따라 실직한 가장은 전업주부로 변신한다. ‘마초’로 살아온 인생 어언 30여년에 앞치마 두르고 요리를 해봤자 ‘불량주부’다. 아무런 능력도 노력도 없지만 되레 천연덕스러운 모습은 편안한 아저씨 이미지다.(에스비에스 <불량주부>) 청년실업 시대에 속수무책인 무능력한 백수는 얼떨결에 초우량 대기업의 ‘신입사원’이 된다. 천하태평하고 능력도 없는데다 게으르기까지 하지만 근거 없는 자신감과 자존심, 엉뚱한 뚝심은 오히려 부담스럽지 않다.(문화방송 <신입사원>) 하룻밤 사랑으로 어쩔 수 없이 계약결혼까지 하는, 철없는 대학생은 꾸밈없이 솔직한 모습으로 요즘 세태를 설득력 있게 담아내기도 한다.(문화방송 <원더풀 라이프>)

학벌 좋고 가문 좋고 돈 많고 능력 있는 데다, 외모까지 수려한 기존 드라마 남자주인공들의 모습과는 완전히 딴판이다. 현실에서 찾아보기 힘든 백마 탄 왕자와 재벌 2세를 통해 판타지를 꿈꾸며 즐거워하던 여성 시청자들의 기호가 조금씩 변화한다는 진단이다. 남성들 또한 거부감없이 이들에게서 공감을 느낀다. 코믹 드라마 유행을 반영한다는 풀이도 설득력 있다. 어둡고 무거운 것보다 가볍고 밝은 드라마를 선호하는 분위기가 폭넓게 자리잡았다는 것이다.

한 드라마 피디는 “기존 남성 캐릭터의 저변에 깔려 있는 가부장적 가족주의는 더 이상 드라마 주시청자인 여성들의 호감을 불러일으킬 수 없다”고 설명했다. 반면, 또 다른 드라마 피디는 “이는 일시적 현상으로, 근본적인 변화는 아직 논하기 이르다”며 “‘왕자’에 대한 판타지를 지닌 여성들이 있는 한 이를 이용한 드라마는 앞으로도 만들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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