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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태로운 도시의 관계를 관찰하는 잔잔한 정서, <5월의 구름>
김현정 2005-04-19

영화를 찍기 위해 고향에 내려온 영화감독, 그 앞에 진짜 삶이 펼쳐진다.

이스탄불에 살고 있는 영화감독 무자파르(무자파르 우즈데미르)는 새 영화를 준비하기 위해 고향 마을에 온다. 그는 고향 사람들을 배우로 쓰고 촬영도 그곳에서 할 생각이다. 한적한 마을에는 무자파르의 부모와 번번이 대학입시에 실패하면서도 대도시로 나가려고만 하는 사촌 사펫(마흐멧 에민 토프락), 멜로디 시계를 갖고 싶어하는 아홉살 사촌동생 알리 등이 살고 있다. 무자파르는 아버지를 설득해서 배우로 서게 하려고 하지만, 아버지는 이십년 동안 주인없는 땅에서 키워온 포플러 나무가 정부 소유가 될지도 모른다는 사실에 정신이 없다.

<5월의 구름>은 지난해 개봉한 누리 빌게 세일란의 <우작>과 어느 정도 겹치는 영화다. 같은 배우 두명이 도시와 시골에 사는 사촌형제를 연기하는 이 두 영화는 모두 연출과 스탭을 도맡아하며 혼자 영화를 만들어온 세일란에게는 반쯤은 자화상과도 같다. 그러나 금이 간 유리컵처럼 위태로운 도시의 관계를 관찰하는 <우작>에 비해 아직 고향을 떠나지 않은 <5월의 구름>은, 조금은 천진하고 다정한 면이 있다. 그 잔잔한 정서는 다음 영화인 <우작>에서 동거하며 서로의 신경을 건드리게 될 무자파르와 사펫 때문이 아니다. 아이답게 영악하면서도 세상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는 알리와 모두가 어리석다 비웃는 신념을 고집하는 아버지 에민, 시골여인 특유의 인내로 남자들을 품는 어머니 파트마 덕분이다. 에민과 파트마는 실제로 세일란의 부모다. 세일란은 자신이 영화를 만드는 것과 같은 과정을 영화 안에서 다시 한번 재현하면서, 무엇이 현실이고 픽션인지 묻는 질문을 지워버리고, 그 대신 사소한 에피소드를 나열하면서 저들에게 삶이란 무엇이지 묻도록 한다.

사진작가의 경력이 있는 세일란은 별다른 장비없이 자그마한 카메라만 가지고 그대로 엽서가 될 수 있을 풍경들을 포착했다. 억지로 카메라 앞에 앉아 대사를 읊던 에민이 포플러 나무의 어두운 그늘을 쳐다보거나 사촌형 때문에 참담한 심정이 된 사펫이 스크린 전면을 메우는 장면은 주의하지 않으면 놓치고 말았을 일상의 깊숙한 정서를 건져올리는 순간들이다. 여러 평자들은 시적인 풍경과 담담한 어조 때문에 이 영화를 압바스 키아로스타미의 <바람이 우리를 데려다 주리라>에 비교하곤 했다. 그러나 세일란은 키아로스타미보다는 황량해 보인다. 포플러 나무를 지키는 데 목숨까지 바치겠다고 공언한 아버지와 어느 정도 화해를 하지만, 세일란은 이기적이고 치사한 방식으로 비집고 올라오는 본성 또한 외면하지 않는다. 그리고 무자파르와 사펫의 관계에서 가장 두드러지게 드러나는 그 본성은 세일란의 세 번째 장편 <우작>으로 이어졌다. 2000년 베를린영화제 경쟁부문에 올랐던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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