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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믹드라마 <신입사원> <불량주부> 속 사회풍자
2005-04-19

눈물나는 현실이 왜 이렇게 웃기지?

<신입사원>

요즘 텔레비전 채널마다 코믹물 일색이다. 이런 가운데 단순한 웃음이 아니라, 사회 현실을 풍자해 뭉클한 웃음을 주는 드라마들이 시청자들의 인기를 얻고 있다. 화제의 드라마는 문화방송의 <신입사원>(극본 김기호 이선미·연출 한희)과 에스비에스의 <불량주부>(극본 강은정 설준석·연출 유인식 장태유).

청년실업 문제를 주요 소재로 한 <신입사원>은 내세울 것 없는 학벌과 배경을 가진 ‘강호’(문정혁)가 LK라는 대기업에 우연찮게 입사해 직장생활을 하면서 겪는 에피소드를 그리고 있다.

강호는 LK그룹 입사시험에서 전산착오로 필기시험 만점을 받아 면접을 보게 된다. 면접관이 영어로 질문을 하자 강호는 옆사람에게 무슨 뜻인지 물어본 뒤 당당하게 한국어로 답을 한다. 즐겨 읽는 책을 물어보자 ‘무협지와 만화책’이라고 답하고, 경제와 관련한 질문에는 ‘생각해본 적 없다’고 대답해 면접장을 경악으로 몰아넣지만, 회사 전무는 강호가 필기시험 만점자라는 선입관에 사로잡혀 강호가 무슨 말을 해도 기특하게만 본다.

입사에 성공한 강호는 신입사원 연수과정에서 조직폭력배와 맞닥뜨리게 되는데, 무서워하거나 기죽지 않고 오히려 회사 물건을 팔 수 있는 기회로 역이용하는 적극성과 대담함을 보여준다.

이렇게 황당한 설정에도, 이 드라마는 일류대학을 나오고 영어를 유창하게 하는 ‘공부형’ 인재들만 대기업에 입사하는 현실을 재미있게 풍자해 시청자들에게 대리만족을 준다는 평을 받고 있다.

한 시청자는 시청자 의견난에서 “비록 영어는 잘 못하지만 임기응변과 순발력으로 어떤 환경에서도 바보스러울 만큼 꿋꿋하고 당당한 강호 같은 인물이 이 시대를 끌어갈 원동력이 아닐까요?”라고 반문했다.

<신입사원>은 하청업체의 접대 관행, 학연에 의한 줄타기, 비정규직 문제 등 기업에 만연한 잘못된 관행도 꼬집는다.

특히 아침회의에서 “조직의 뜻에 반하는 행동을 하지 말라”는 문 과장의 주문에 “그러면 회사와 조직폭력배가 다른 점이 무엇이냐?”고 따지는 강호의 모습은 직장인들의 막힌 가슴을 뚫어주기에 모자람이 없었다.

지난 14일엔 일방적으로 해고 통보를 받은 계약직 직원 미옥(한가인)이 1인 시위를 벌이고 강호가 이를 적극적으로 돕는 내용이 방송되자, 계약직 경험자로서 계약직의 비애를 현실감있게 그려 공감이 간다는 시청자들의 의견이 많았다.

<불량주부>

<불량주부>도 잘 나가던 영업과장 구수한(손창민)이 하루아침에 직장을 잃고 실업자가 되면서 전업주부로 바뀌어가는 모습을 통해 ‘조기 실업’ 문제를 다뤄 시청자들의 공감을 얻고 있다. ‘사오정’ ‘38선’ 같은 말이 유행하는 시대에 남편들이 겪는 고민과 말못할 괴로움, 그리고 아내들이 직장과 살림, 육아라는 삼중고를 동시에 짊어져야 하는 현실을 생활 속에서 푹 익혀진 에피소드로 보여주며 가슴 뭉클한 웃음을 자아낸다.

구수한이 주문을 따내기 위해 스타킹을 머리에 쓴 채 노래를 부르고 권투선수 흉내를 내거나, 해고 사실을 아내에게 숨기고 주차 아르바이트를 하다가 아파트부녀회장에게 들키지 않으려고 마스크를 쓰는 장면, 찜질방 노래경연대회에서 경품을 타려고 아줌마들 앞에서 춤추고 노래 부르는 모습 등은 절로 웃음이 나게 하면서도 코끝을 찡하게 했다.

<신입사원>과 <불량주부> 두 드라마가 시청자들의 가슴을 파고드는 이유는 현실에서 낚은 듯한 인물들의 행동과 대사, 그리고 웃길 때는 웃기면서도 시원한 곳을 긁어주는 풍자의 묘미가 잘 어우러졌기 때문일 것이다. 시청자들은 이 드라마들이 단순한 코믹 드라마에 그치지 않고, 강한 사회 풍자와 메시지를 전달하는 드라마로 좋은 결실을 맺길 기대하고 있다.

안방극장 ‘로맨틱 코미디’ 넘실

실패위험 적은탓…실험정신 아쉬워

요즘 안방 극장이 코믹 드라마로 넘쳐나고 있다. 경제난으로 가뜩이나 살기 힘든 시절이라 시청자들에게 웃음을 선사하는 드라마가 많은 게 꼭 나쁘기만 한 건 아니지만, 드라마가 너무 가벼워지는 게 아니냐는 평가도 많다.

현재 방송 3사가 방영 중인 월화 미니시리즈만 보더라도 모두가 로맨틱 코미디물이다. 한국방송의 <열여덟 스물아홉>, 문화방송의 <원더풀 라이프>, 에스비에스의 <불량주부>는 내용면에선 차이가 있지만 로맨틱 코미디물이라는 점에서는 별 차이가 없다. 수목 미니시리즈도 사정은 비슷해 문화방송이 <신입사원>을 방영 중이며, 에스비에스는 지난 13일부터 명랑 학원물인 <건빵선생과 별사탕>으로 흐름을 이었다.

왜 이처럼 방송사마다 로맨틱 코미디풍 드라마가 넘쳐나는 걸까?

시청률에 촉각을 곤두세우는 방송사들이 로맨틱 코미디물은 시청률이 안정적으로 나온다고 믿기 때문이라는 것이 미디어 비평가들의 대체적인 분석이다.

문화방송의 <영웅시대>나 <슬픈연가>, 에스비에스의 <세잎클로버> 같은 대작이나 블록버스터 드라마는 흥행에 실패한 데 반해 지난해 방영된 <파리의 연인>과 <풀하우스>, <결혼하고 싶은 여자> 등의 로맨틱 코미디풍 드라마는 큰 인기를 얻었다. 올 들어서도 <쾌걸춘향>이 히트를 치자 방송사마다 로맨틱 드라마가 상대적으로 위험 부담이 적다는 공감대를 이뤘을 것이라는 해석이다.

하지만 아무리 로맨틱 코미디가 재미있다고 해도 채널마다 비슷비슷한 드라마가 계속 나온다면 시청자들이 식상해할 가능성이 크다.

코믹 드라마 붐에 대해 한 드라마 피디는 “유행은 말 그대로 일시적인 것”이라며, “실험정신으로 끊임없이 새로움을 추구하는 드라마가 진정으로 시청자들의 사랑을 받는다는 점을 제작진들이 빨리 깨달아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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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윤영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