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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거, 계약결혼, 또야? <원더풀 라이프> <열여덟 스물아홉>
강명석 2005-04-21

설정만 거창한 티격태격 로맨틱코미디

<열여덟 스물아홉>

‘출생의 비밀’이라는 말만 들어도 시청자들이 ‘또야?’라고 하던 때가 있었다(그러고나서 열심히 봤다). 하지만 요즘은 ‘동거’나 ‘계약결혼’이라는 말에 ‘또야?’를 해야 할 판이다(역시 그러고선 열심히 본다). MBC <옥탑방 고양이>로 시작된 이 티격태격 동거물 혹은 부부물은 비슷한 설정의 영화 <어린 신부>를 지나 KBS <풀하우스> <쾌걸 춘향>에서 꽃을 피우더니 이젠 MBC <원더풀 라이프>와 KBS <열여덟 스물아홉>처럼 같은 시간대에 편성되기까지 한다. 그러다보니 작품들은 점점 비슷해지고, 그것을 피하기 위해 점점 거창한 설정들을 끌어들인다.

장르의 시조격이었던 <옥탑방 고양이>는 드라마 주인공들이 혼전순결을 지키지 않았다는 것만으로 이슈가 됐지만, <원더풀 라이프>는 혼전임신을 내세운다. 장르의 작품들이 많아질수록 후발주자는 점점 유별난 설정에 집착하는 장르의 법칙은 여기서도 여전하다. 그러나 문제는 이 드라마들의 장르가 사실 ‘동거물’이나 ‘부부물’이 아니라 로맨틱코미디라는 점이다. 이유야 어쨌건 주인공들은 늘 ‘마지못해’ 같이 살고, 쉴새없이 티격태격하다가 마지막에야 사랑을 확인한다. 동거와 결혼은 주인공이 같이 살기 위한 핑계일 뿐이고, 당연히 현실적인 고민보다는 두 주인공을 ‘티격태격 모드’로 이끄는 게 우선이다. 그래서 설정이 거창해질수록 주인공들은 점점 비현실적인 ‘원더풀 라이프’ 속으로 빠진다. 결혼해도 ‘연애’는 계속 해야 하기 때문이다. 동거 시절에는 콩나물값이 없어서 티격태격하던 것이(<옥탑방 고양이>) 계약결혼을 하니 남편이 연예계 톱스타가 되고(<풀하우스>), 부모의 지원이 등장하며(<쾌걸 춘향>), 결국 부모가 집과 생활비를 대주는 것은 물론 아이까지 맡아 기르는 ‘초현실적인 상황’(<원더풀 라이프>)까지 이른다.

작품이 거듭될수록 주인공들은 사회에서 받아들이기 힘든 사건들을 벌이지만, 정작 그들은 아무런 책임도 지지 않고, 자신들이 얼마나 큰일을 저질렀는지도 자각하지 못한다. 덕분에 <옥탑방 고양이> 시절만 해도 정신적, 육체적으로 부담없는 연애를 동거와 취업문제라는 현실적인 고민과 섞어놓았던 이 장르는 어느덧 결혼과 가사, 심지어 육아마저도 두 남녀의 밀고당기기를 위한 ‘소꿉장난’으로 변질시킨다. 그래서 그들은 <열여덟 스물아홉>처럼 기억상실로 인해 열여덟살로 돌아간 정신연령을 핑계로 남편과 싸우자마자 집을 나가버릴 수도 있고, <원더풀 라이프>처럼 아이를 부모에게 맡겨놓고 실컷 싸우다가 가끔씩 한가로운 표정으로 마치 애완동물 그리워하듯 “보고 싶다”는 말만 내뱉으면 부모의 도리를 다하는 것이 된다. 결국 변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옛날에는 드라마를 끝낼 방법을 못 찾을 때 출생의 비밀이나 불치병을 끌어들였고, 이젠 두 남녀를 만나게 하는 구실로 결혼과 출산을 써먹을 뿐이다. 변한 게 있다면 삼각관계가 사각이나 오각으로 ‘스케일’이 커졌다는 것뿐 아닐까. 정말, 연애하는 이유가 그렇게 없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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