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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칼럼] <제5공화국>, 전두환을 사랑하는 모임이 만들어진다고?

악이 주인공인 드라마 <제5공화국>

대학 4학년 때의 일이다. 역사 관련 필수교양 과목을 재수강하면서 1학년들과 함께 강의를 듣던 때인데, 한 1학년생의 발표를 듣고 놀란 기억이 있다. ‘박정희 대통령을 존경한다’는 내용의 발표였는데, ‘무고한 시민들을 희생시킨 과오는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교수님의 질문에 그 학생은 ‘한국 경제를 일으켜 세운 지도자라는 점에서 존경할 점이 더 많다’고 대답하여 강의실을 썰렁하게 만들었다.

드라마 <제5공화국>을 보고 있자니, 그때 그 1학년생이 생각난다. <제5공화국> 시청자 게시판에 '전사모(전두환을 사랑하는 모임)'를 만들자는 의견이 많다는 소식 때문이다. 설마 하는 마음으로 게시판을 확인하니, ‘진정한 지도자’라는 의견도 보였다. 드라마적인 요소에 강한 인상을 받은 나머지 실제 인물마저 존경하게 되었나 본데, 참으로 당황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비교적 최근의 역사를 다루는 데다, 등장인물 대부분이 살아있다는 점에서 <제5공화국>은 여러모로 위험 요소가 많은 드라마다. 조금만 엇나가도 무지막지한 비판의 대상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가장 큰 딜레마는 선과 악 중에서도 하필이면 ‘악’을 주인공으로 한다는 것. 모름지기 드라마란 주인공을 응원하도록 만들어진 이야기인데, 이 드라마는 주인공에게 감정이입을 하게 하면 할수록 이런저런 비판을 피할 수 없게 되었다. ‘전사모’가 생기거나, ‘왜 전사모가 생기게끔 드라마를 만드느냐’는 비판이 일거나. 드라마 제작진의 부담과 고민이 보통이 아닐 것 같다.

그러나 나는 전두환을 미화한다는 비판이나, 전두환 멋지다는 환호나, 지금은 모두 신경 쓰지 말고 계속 가던 길을 가라고 말하고 싶다. 사실 <제5공화국>은 단점 보다는 장점이 많은 드라마다. 일단 재미있다. 특히 10.26 사건을 다룬 1회는 정치 드라마를 즐기지 않는 나조차 빠져들게 할 만큼 긴박한 구성이 돋보이는 회였다. <그때 그 사람들>과 비교해 보아도 <제5공화국> 1회가 낫다고 생각할 정도였으니까. 사건 발생 시각을 소리와 자막으로 표시하고, 중간중간 나래이션을 삽입하는 등 극적 긴장감을 높이는 효과들도 주요했다. 예를 들어 중앙정보부장인 김제규가 박정희를 살해한 뒤 중앙정보부로 가지 않은 실수를 지적하는 나래이션은, ‘없었으면 어땠을까’ 싶을 만큼 드라마적인 재미에 큰 도움이 되었다.

드라마의 기획 의도를 보면 ‘우리의 현대사를 우리의 젊은이들이 다시 한 번 생각할 수 있는 좋은 기회를 가지는 것이라는 편한 마음가짐으로 <5공화국>을 시작하고 싶었고 또 그렇게 이 드라마의 끝까지 갔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본다’라는 구절이 있다. 얼마나 불편했으면 ‘편한 마음가짐으로 <5공화국>을 시작하고 싶었다’고 말할까. 비판과 환호에 신경 쓰다 보면 아무래도 움츠러들 수밖에 없을 테니, 나 역시 ‘편한 마음가짐으로 끝까지 가라’고 드라마 제작진들을 독려하고 싶다.

나는 정치적인 입장에서 이 드라마를 비판하거나 환호할 생각이 없다. 오히려 드라마적인 요소가 어떠한가에 따라 비판하거나 환호할 생각이다. ‘악’이 주인공인 드라마의 딜레마는 그 ‘악’을 철저히 보여주는 데서 풀 수 있지 않을까. 전두환을 미화한다는 비판에 신경 쓴 나머지 그를 위축시켜 묘사한다면, 제대로 된 ‘드라마’가 나오기란 어려울 게다. 정치적으로 옳고 그른 부분을 가려내겠다는 취지가 아닌 만큼, 이 드라마의 재미는 그야말로 5공화국의 흥망성쇠를 생생하게 그리는 데 있으리라. 언뜻 전두환을 미화하는 것처럼 보이더라도, 사실은 그의 실체를 철저히 드러내는 것. 내가 이 드라마에 바라는 재미란 바로 그런 부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