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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걸 마음대로, <인투 더 썬>
김나형 2005-05-17

태양은 시걸 마음속에 있는 거니까요.

스티븐 시걸. <언더씨즈>가 유일한 흥행작인 쌍팔년도 액션가이. 도시락통 같은 얼굴은 달이 갈수록 부어가고 드럼통 같은 몸은 해가 갈수록 굳어가지만 아랑곳없다. 그는 1년에 2∼3편씩 꼬박꼬박 주연작을 찍으며 비디오 대여점과 케이블TV에서 암약하고 있다. 놀랄 일은 아니다. 그의 영화는 그만큼 재미있다. 묵직하고 묵묵한, 중년 취향의 B급 액션. 그게 ‘시걸 스타일’이다. 지금도 누군가는 그의 영화 한편으로 왠지 자기 싫은 늦은 밤시간을 즐겁게 때우고 있을 것이다.

<인투 더 썬>은 일본에서 자란 전직 FBI요원 트래비스(스티븐 시걸)가 신진 야쿠자인 ‘쿠로다’(오사와 다카오)파와 한판 붙는 이야기다. 쿠로다는 ‘진기’를 버리고 돈만 좇는, 비열하고 잔혹한 반미치광이로 그려졌다. 이 젊은 야쿠자는 폼새 사납게 중국 조폭과 손잡고 미얀마 마약조직과 직접 거래를 튼다. 3개국이 얽힌 가운데 FBI가 끼어들고 정통 야쿠자 ‘코지로’파가 가세한 와중에, 트래비스는 오랜 친구인 나야코(야마구치 가나코)와 사랑을 나눈다. 물론, 나야코는 쿠로다에게 살해당하고 그로 인해 트래비스가 불타오르게 된다는 설정이다.

한마디로 ‘시걸 마음대로’ 만든 영화다. 제작비 250억원을 투자하고 각본과 프로듀서를 겸한데다 캐스팅까지 가담했으니 그럴 수밖에. 동양(무술)에 관심이 지대한 시걸이니, 일본을 배경으로 온갖 아시아 종족과 FBI가 등장하는 영화에서 과묵한 무술 사범이 되어보고 싶었을 법도 하다.

그러나 골든 라즈베리에서 최악의 감독상을 받은 일을 잊지 않았더라면 더 좋을 뻔했다. 말썽쟁이 신참, 동서양 문화차를 겨냥한 농담, 동양 여인과의 애틋한 사랑 등 온갖 클리셰를 동원하고, 저속촬영, 점프컷, 컴퓨터그래픽을 대중없이 남용해보지만 당최 두서가 없다. 쿠엔틴 타란티노처럼 동양의 공간과 무술을 갖다붙이고, 클린트 이스트우드처럼 “아직도 무슨 영웅인 줄 아는데 세월이 변했어!” 같은 농담도 해보지만 도무지 뼈대가 없다. 시걸의 단조로운 캐릭터를 상대 악역 배우가 늘 커버해주곤 했으나, 그러기에 오사와 다카오의 카리스마는 심하게 컬트적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종목을 잘못 택했다. 맘씨 좋은 곰아저씨 같은 사람에게 ‘일본도’라는 살기어린 무기가 어울리냐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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