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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고의 재구성, <pm 11:14>
김현정 2005-05-31

11시14분 동시에 일어난 두건의 교통사고. 서로 관계없어 보이지만, 사실은 관계가 많다.

밤 11시14분 작은 도시 미들톤에서 동시에 두건의 교통사고가 일어난다. 술을 마시면서 차를 몰던 10대 소년의 자동차 위로 심하게 망가진 시체가 떨어지고, 예쁘고 교활한 소녀 셰리(레이첼 리 쿡)가 십대 소년 세명이 타고 있던 차에 치어 즉사한다. 두번의 사고에 얽힌 인물들은 셰리를 첫 번째 고리 삼아 사슬로 연결할 수 있는 관계다. 중절수술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편의점을 터는 셰리의 남자친구 더피, 실수를 만회하기 위해 더피를 돕는 점원 버지(힐러리 스왱크), 셰리의 잘못을 덮으려던 아버지 프랭크(패트릭 스웨이즈). <pm 11:14>은 미들톤을 바쁘게 오가면서 사건이 일어나기까지 몇 십분 동안 뿌려졌던 조각을 끼워맞춰간다.

<pm 11:14>은 과거를 쪼개어 현재의 그림을 완성하고 시간을 거슬러올라간다는 점에서 <메멘토>와 비슷하다고 평가받았던 영화다. 그러나 <pm 11:14>은 사건이 아니라 사고를 재구성하는 영화고 긴장을 놓치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써야만 한다. 이 아이들이 어쩌다 차에 치었는가, 라는 질문은 레너드의 아내를 누가 살해했는가, 라는 질문에 비하면 연약하기 짝이 없기 때문이다. 지나가다 교통사고를 목격한 사람은 의문보다는 동정을 느끼는 게 자연스럽다. 시나리오도 직접 쓴 감독 그렉 마크스는 처음부터 안고 출발한 그 약점을 빠르게 던지는 과거의 조각과 처참한 사고에 걸맞지 않은 유머, 빠른 속도를 배가시키는 음악으로 극복하고자 했다. 누구에게든 쉽게 속을 것 같은 더피가 겁많고 성실해 보이는 버지를 사기강도 행각에 끌어들이는 에피소드는 짧고 웃기고 신속한 것이 사실이다. 그리고 더피의 여자친구 셰리가 등장하는 찰나의 순간은 두번의 사고와 절묘하게 맞아떨어지는 단서를 남기고, 그 전과 후의 셰리의 행동 역시 평범한 사고 뒤에 숨겨진 연쇄작용을 궁금하게 만든다.

<pm 11:14>은 신성으로 떠올랐지만 한동안 마땅한 영화를 만나지 못했던 힐러리 스왱크를 제작자로 끌어들일 만한 매력을 충분히 가지고 있다(이 영화는 2003년작이다). 트렌드가 되었던 형식을 따랐고, 단서를 짜맞추는 재기가 있고, 캐릭터 대부분이 젊다. 그러나 까다롭게 따지고 들자면 결점 또한 넘기기 힘들다. <pm 11:14>은 정보없는 관객에게 이 사고엔 뭔가가 있다는 의미심장한 인상을 주기엔 부족하다. 기다리다 지칠지도 모른다. 무엇보다도 범퍼가 아니라 앞 유리창만 부서졌는데도 자신이 사람을 치었다고 착각하고선 뺑소니치려는 십대 소년은 지나치게 멍청해서 설득력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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