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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립의 방을 나와 인간적 유대에 눈뜨다, <플로리스>

미국영화에서 퇴역군인은 출연이 잦은 편이다. 극적 갈등을 유발하는 사회적 부적격자의 자질을 이들이 두루 갖추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귀향>이나 <디어 헌터> <람보>처럼 이들을 통해 전쟁의 상처를 직접 논평하는 영화를 제외하더라도, 전통적인 남성적 가치에 갇혀 수평적인 관계 맺기에 실패하는 많은 남성 캐릭터의 이력에 군인경력을 배치하는 영화는 드물지 않다. 이 족속들은 대체로 가부장적인데다 파시스트적 성향도 강해서 변화한 성문화를 특히 참아내지 못한다. 그래서 고립을 자초하고 더욱 공격적으로 변해간다. <택시 드라이버>의 주인공은 사창굴에 들어가 기관총을 난사하며, <아메리칸 뷰티>의 리키 아버지는 동성연애자를 저주하며 아들을 훈련소 신병처럼 키운다. 좀 순한 편인 <여인의 향기>의 늙은 퇴역 장교도 자식을 부하처럼 대하는데, 여인 앞에서 다시 한번 멋진 남성으로 서는 게 마지막 소원이다.

<플로리스>의 왈트도 다르지 않다. 퇴역해군 왈트는 경비병 시절 무장강도를 잡은 경력을 훈장처럼 달고 사는 초로의 남자다. 동성애자와는 엘리베이터도 같이 타지 않을 정도로 혐오감을 갖고 있고, 탱고 클럽에선 천해보이는 여인을 창녀라고 부르며 멸시한다. 그러나 갑자기 발병한 뇌졸중이 그의 인생을 바꿔버렸다. 제대로 걷지도 못하고 입이 틀어져 버리니, 이 자존심 강한 노인은 <여인의 향기>의 맹인 주인공이 그랬듯 자기방에 스스로를 가둬버린다. 발음연습을 위해 고용한 노래강습사가 하필이면 경멸해 마지않던 여장남자 러스티. 여기까지 오면, 이야기가 갈 길이 빤해진다. 갱들이 끼어들면서 약간 우회하긴 하지만, 둘이 갈등하다가 우정을 쌓고, 이를 계기로 주인공은 고립의 방을 나와 인간적 유대에 눈뜬다는 것.

이야기가 새롭지 않으니 캐릭터의 호소력이 무기가 돼야 할 텐데, <플로리스>는 이 점에서 돋보이는 편은 아니다. 왈트 역의 명배우 로버트 드 니로는 이런 방면의 연기는 눈감고도 할 것 같은데도 이상하게 생기가 없고, 주변인물들도 밋밋하다. <의뢰인> <폴링다운> <배트맨 포에버> 등의 기억할 만한 작품을 남긴 조엘 슈마허 감독은 60살의 나이에도 인물 연출쪽은 여전히 솜씨가 달린다. 여장남자를 연기한 필립 세무어 호프먼의 연기는 미국에서 호평을 받은 편. 감독과 주연의 이름값에 큰 기대를 걸지 않는다면 그럭저럭 볼 만한 드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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