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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장호 [48] - 안타까운 흥행작, <어우동>
2000-03-21

어우동은 운동권?

영화감독이 인터뷰에서 자주 받는 질문 중에 하나가 자신의 연출 가운데 가장 아끼는 작품이 무엇이냐?라는 것이다. 일본의 구로자와 아키라 감독은 어떤 인터뷰에선가 “차기작”이라고 간단하게 대답했다. 나도 가끔 그렇게 대답하고 싶은 충동을 느끼곤 한다. 지난 작품들은 이미 여러 사람에게 공개됐다는 것만으로도 어쩐지 자랑스러운 마음보다 참담한 마음에 가깝다. 지난 시절의 한국 영화판처럼 연출자의 의도를 50%도 반영하기 어려운 척박한 문화풍토에선 충분히 납득할 수 있는 진실이다. 그래서 그게 최선이 아니라는 자존심이 고개를 든다. 차라리 불쌍한 작품이 어떤 것이냐고 묻는다면 여러 작품이 떠오른다. 흥행이 안 된 작품, 또 흥행은 잘됐지만 평자들에게 평가를 얻지 못한 작품, 관객에게 잘못 이해된 작품… 등 아쉬움이 있는 작품들이 더러 있다. 그 가운데 하나가 영화 <어우동>이다.

<어우동>은 내가 만든 영화 가운데 가장 관객을 많이 끌어낸 영화였지만 내가 바랐던 올바른 평가는 받지 못했다. 나는 <어우동>을 연출하면서 우리 시대극의 변천사를 상당히 의식했다. 종래 시대극의 모습을 바꾸는 일은 쉽지 않다. 텔레비전과 영화에서 사극들은 대개 전에 만들어 놓았던 의상과 소도구를 대부분 그대로 이용하게 된다. 수많은 엑스트라들이 사용하는 의상이나 소도구까지 철저히 새로 제작하려면 엄청난 경비가 들기 때문이다. 그래서 주인공이나 조연급의 의상과 소도구 일부분만 제작하는 것이 상례인데 어쩔 수 없이 기존의 형태를 유지하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궁중사극을 많이 만들었던 60년대 신필림의 경우에도 철저한 고증보다 웬만하면 거의 같은 형태의 의상을 사용할 수밖에 없었다. 더구나 시장에 나와 있는 싸구려 원단을 사용하게 되므로 시대에 맞지 않는 인공염료의 색감이 그대로 드러나 미학적으로도 문제가 많았다. 그러나 혁명적인 제작이 아니고서는 바꿀 길이 요원하다.

나는 신필림 시절의 시대극과 결별하고픈 욕망이 너무 커서 태흥영화사 이태원 사장을 설득해 엑스트라의 의상까지 모두 새로 제작하기로 결정했다. 우선 천연염료의 느낌을 주기 위해 원단부터 면과 무명을 주로 사용했고 지금까지 양반의 도포나 바지저고리에 흔히 이용했던 옥색이나 회색. 또는 연보라, 연분홍, 흰색 등을 피하고 복식사에서 밝힌 것처럼 잿빛, 쪽빛, 그리고 갈색 등 지금껏 영화나 TV에서 보여주지 못했던 천연염료의 느낌을 과감하게 사용했다. 또 궁궐에서 착용한 공복 역시 청색, 홍색 모두 서양의 인공염료의 색감이 그대로 노출되어 천박스럽기만 했던 것을 천연염료의 은은함과 깊이를 살리기 위해 어두운 청, 홍으로 힘들여 만들었다.

충무로 영화판에는 참으로 오랜 세월 살아 있는 역사처럼 영화 의상만 전담했던 이혜윤 여사가 있다. 내 청년 시절엔 충무로 영화판에서 흔히 짱구 아줌마라는 애칭으로 불렸다. 그분의 영화의상 한평생에 <어우동>의 의상과 소도구의 대변혁은 잊을 수 없는 사건 가운데 하나라고 감히 확신한다. <어우동>의 의상 고증은 고 석주선 교수가 도움을 주었다. 그리고 한복연구가 이헌정씨의 솜씨와 성의로 아주 큰 성공을 이루어냈다. 특히 기생 전모를 비롯한 독특한 장신구들을 직접 제작해준 전통복식 연구가인 허영씨의 도움이 컸다. 영화 <어우동>의 대성공은 그뒤 한국영화와 TV에서 사극의 모습을 다양한 시대 고증에 충실하게 만드는 데 일조했다고 자신한다. 영화 의상의 기초가 되는 엑스트라의 복식들이 다양해졌으므로 선택의 폭이 널널해진 것이다.

개봉과 함께 단성사 앞에는 이보희의 얼굴을 복제한 어우동의 마네킹이 대형 유리상자 속에서 예쁜 전통 한복의 옷맵시를 뽐내게 되었다. <어우동>의 인기는 대단했다. 신인 여배우 이보희의 인기는 금세 정상으로 올라섰다. 연일 계속되는 매진은 <무릎과 무릎 사이>에 이어 다시 나에게 횡재의 길을 열어놓았다. 그러나 호사다마라고 했던가. 이상한 투서에 의해 영화 <어우동>은 한국영화 검열역사에 다시 없는 난센스 해프닝을 일으켰다. 영화관에서 한참 인기리에 상영중인 <어우동>의 필름이 다시 공연윤리위원회에 실려가 대폭 삭제되었다. 뿐만 아니었다. 당시의 공연윤리위원장 최창봉씨는 <어우동> 때문에 불명예스럽게 전격 경질되고 말았다. 그렇게 된 내막은 너무 어처구니가 없게도 모든 게 감사원장의 명령 때문이었다. 그 이름을 영영 잊을 수 없는 당시의 감사원장은 군장성 출신의 황영시라는 사람이었다. 누군가 영화인 중에서 이 사람에게 투서를 보냈는데 그 내용은 영화 <어우동>이 민중사관에 의해 만들어진 운동권의 의식화된 영화로 현 대통령을 조선조의 왕으로 비유한 불손한 영화라는 것이었다. 그래서 영화 <어우동>은 왕의 권위에 섹스로 도전하는 상징적 성애의 장면들이 여기저기 잘려나가고 말았다. 지금 생각해도 괘씸하기 짝이 없는 행패에 속수무책으로 그저 당했던 분하기 그지없는 기억들이다. 지금 우리가 누리고 있는 자유는 정말 불과 얼마 안 되는 매우 짧은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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