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섹스와 폭력을 통하지 않으면 이뤄지는 게 없는 세상, <진실게임>
박은영 2000-03-14

95년 듀스의 멤버 김성재의 죽음으로, 세상은 한동안 술렁였다. 범인으로 지목된 애인이 증거 불충분으로 풀려나고, 의혹을 남긴 채 종결되고 잊혀진 사건. <진실게임>의 아이디어는 김성재의 의문사에서 출발했다. <아빠는 보디가드>의 김기영 감독은 매스컴에서 이 사건을 접하고, “인기 가수와 열성 팬의 관계”에 집중해 2년간 시나리오를 쓰고, 2년의 시간을 들여 영화로 제작했다. 98년 영화판권담보융자지원 대상작.

그러나 <진실게임>은, 특정인의 다큐멘터리가 아니다. 실재 사건에서 영감을 얻고 상상력으로 살을 붙인 가공의 스토리고, 그 이면에 존재하는 진실을 역추적해가는 미스테리 스릴러다. 인기 절정의 가수 조하록의 죽음, 앳된 여고생의 자수로 시작되는 영화는, 피의자인 소녀와 참고인들의 진술을 따라 과거로 거슬러올라간다. 조하록의 사랑을 독점하려는 팬클럽 멤버들과 신보판매 및 가요순위에 팬클럽을 동원하는 조하록의 공생관계, 양쪽 모두를 착취하는 비양심적인 매니저의 행태 등 수사 과정에서 드러나는 비화는 단순한 ‘낙수’ 수준이 아니다. 동성애 관계였던 급우 영주의 자살 뒤, 다혜가 영주의 우상 조하록에게 집착하기 시작하는 설정에 이르면, 영화는 조검사를 포함한 부모(세대)의 무관심과 몰이해에 대한 비판까지 가한다.

<진실게임>에는 몇몇 스릴러 수작들을 벤치마킹한 흔적이 있다. 선과 악의 두 얼굴을 지닌 다중인격의 캐릭터 다혜는 <프라이멀 피어>를 닮았고, 사람들의 진술에 따라 달라지는 사건의 정황은 <라쇼몽>의 서술 구조와 유사하고, 취조하는 이와 당하는 이의 두뇌싸움 구도는 <유쥬얼 서스펙트>를 보는 듯하다. 그러나 스릴러라는 장르의 맛을 내기엔 영화에 군살이 좀 많다. 이야기가 너무 많아 서로 부대끼는 느낌이다. 그리고 모두가 어둡고 자극적이다. 무대 위 세상이 조작된 환상이라면, 무대 뒤 세상은 추악한 권모술수뿐이라고 말하는 듯하다. 섹스와 폭력을 통하지 않으면 이뤄지는 게 없는 세상, 모든 상황은 극한으로 치닫고, 비틀린다. 과연 여기엔 우리가 기댈 ‘진실’이 있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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