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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적 제약이 정답이네, <환생-NEXT>
강명석 2005-06-16

MBC <환생-NEXT>가 운명적 사랑을 그리는데 성공한 이유

MBC <환생-NEXT>의 남녀는 거듭된 생 속에서 운명적인 사랑을 반복한다. 그런데 운명적인 사랑이란 실상 법칙을 잘 지켜야 이길 수 있는 게임 같은 것이다. 남자는 마치 컴퓨터가 만든 캐릭터처럼 역할이 고정돼 있다. 한 남자는 늘 두 여자의 사랑을 받고, 다른 한 남자는 한 여성을 일편단심으로 사랑한다. 그리고 두 여자는 사랑을 얻기 위해 게임의 룰을 지켜야 한다. 불행한 인생을 살 것, 상대방 여자보다 더 낮은 신분일 것, 그래서 더 높은 신분의 남자에게 이루어져서는 안 될 사랑이라는 것을 각인시킬 것. 그러면 남자는 모든 제약을 뛰어넘어 여자를 사랑하고, 그 결과로 몰락하며, 여성 역시 불행해진다. 조선시대에는 정화(장신영)가 기범(류수영)과 사랑에 빠지면서 둘 다 죽었고, 고려시대에는 몽골 장수였던 기범이 수현(박예진)을 사랑해 목숨까지 내어가며 사랑을 고백한다. <환생-NEXT>에서 끔찍하리만치 반복되는 것은 네 남녀의 관계가 아니라 픽션 속의 운명적인 사랑이란 곧 이루어질 수 없는 비극임을 확인시키는 것이다. 시대만 다를 뿐, 우리는 결국 똑같은 구조의 비극적인, 혹은 운명적인 사랑 이야기에 열광한다. 그들을 가로막는 강력한 제약으로 인해 주인공들은 늘 자신의 마음을 표현하지 못하고, 그래서 애틋해질 수밖에 없는 그들의 은유적인 표현이 전달하는 절절한 감정이야말로 사람들이 비극을 운명이라 믿는 이유가 된다. 죽음의 그 순간에 사랑을 원하는 남자에게 “그렇게 되었다… 이미 그렇게 되었다…”는 말밖에 하지 못하는 여자의 모습은 가장 비극적이면서도 가장 달콤한 러브송이다.

<환생-NEXT>는 무릇 비극이란 강력하고 단순한 제약과 그에 반하는 애틋하고 품격있는 표현의 공존이며, 그 제약 중 가장 강력한 것은 드라마의 큰 소재인 시대적 제약임을 알고 있다. 개인으로서는 어찌할 수 없는 시대적 제약이 존재할 때, 주인공들은 자신의 무력함을 깨달으며 더욱 애틋한 감정을 품는다. 그리고 이는 왜 대부분의 현대극이 자꾸 품격있는 비극 대신 눈물을 강요하는 신파가 되는가를 역으로 알려준다. 온갖 억지스런 설정으로 두 남녀를 헤어지게 만들어 그것을 비극이라 우기는 현대극은 두 남녀를 불행하게는 만들되 그 애틋함은 잃어버린다. KBS <러브홀릭>이 두 남녀를 어렵게 만들기 위해 사제지간의 사랑부터 시작해 기면증, 살인, 라이벌의 광적인 집착과 협박 등 많은 억지 설정들을 덕지덕지 붙여 “우리 정말 이루어지기 힘든 사랑이에요!”라고 외치는 걸 보라. 그래서 <환생-NEXT>의 진짜 게임은 현대에서 시작된다. “이미 그렇게 되었다”고 말하던 전생의 남녀와 달리 현재의 그들은 “그럼 왜 난 아닌 건데?”라고 외친다. 고대에는 운명에 순종하던 비극의 주인공이, 현대에는 자유의지의 개인이 돼 있다. 어떤 제약도, 비극도 없는 현대에서 그들은 또 사랑을 운명이라 말할까. 아니면 늘 비극이 되고자 했던 자신의 마음이 곧 운명이었음을 고백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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