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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금연 영화보다 강력한 영향력, <인사이더>
심영섭(평론가) 2000-03-07

이 영화에서는 아무리 상황이 심각해져도 주인공들이 담배를 피우지 않는다. 어떤 금연 영화보다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하면서도 <인사이더>는 동시에 강력한 사회파 영화다. <인사이더>는 등장인물들과 사건의 폭이 만만치 않은데, 수많은 회사와 사람들이 실명으로 등장하고 담배산업을 주축으로 언론과 기업의 유착관계, 기자와 정보원과의 관계 등이 난마처럼 얽혀 있다. 자칫 사회면 톱기사를 밋밋하게 옮겨버린 듯한 장광설을 사뿐히 기워낸 것은 전적으로 마이클 만의 연출력이다(<인사이더>는 작품상, 감독상, 남우주연상을 포함, 아카데미 7개 부문 후보에 올라 있다). 특히 2시간45분의 러닝타임에도 불구하고 시종일관 낮은 포복으로 일관하는 클로즈업이 없다면, 영화의 긴장감은 아예 증발해버렸을지도 모른다. 다큐감독 출신답게 마이클 만은 <라스트 모히칸>의 안이한 로맨티시즘을 뒤로 하고 <히트>를 전환점 삼아 점점 더 날카로운 현실에 대한 통찰력을 드러낸다.

하지만 감독도 <인사이더>의 공을 전적으로 자신의 것만으로 내세울 수 없는 상태. 이미 전 미국 언론이 간파하고 있듯, 이 영화는 주제나 줄거리뿐 아니라 전개 방식의 많은 부분을 앨런 파큘라 감독의 <대통령의 사람들>(All the President’s man)에 빚지고 있기 때문이다. 당연히 <인사이더>의 또다른 이름은 <모두가 담배 회사 사람들>. 그러나 <대통령의 사람들>에서는 '깊은 목구멍'이라 불리는 워터게이트 사건의 핵심 제보자가 영원히 침잠해 있는 반면, <인사이더>는 '깊은 목구멍' 와이갠드 박사가 처음부터 노출된채 담배회사와 심리전을 벌인다. 그래도 영화평론가 로저 에버트는 <대통령의 사람들>보다 <인사이더>의 영향이 더 컸노라고 너스레를 떤다. 그에 의하면 워터게이트 사건이 자신의 부모를 죽이지는 않지만 담배는 그럴 수도 있다는 것. 아닌 게 아니라 흡연자의 돈으로 다시 흡연의 해악이 은폐되는 악순환의 고리를 끓는 건 결국 한 사람의 희생이자 복수라는 게, 그나마 건조한 영화 표면에 어느 정도 습기를 준다. <히트> 때처럼 안전하게 일급 남자배우의 투톱 체제로 내세우고 있는데, 연기를 따지자면 여기서는 방송사 PD 역의 알 파치노보다 와이갠드 박사 역의 러셀 크로쪽이 한수 위다. 물론 <LA 컨피덴셜>의 터프함을 바라지 않는다는 조건에서.

<인사이더>에서는 두 남자의 밀고 당기는 신경전이 우정이라는 미명하에 손쉬운 감상의 늪에 빠지는 일이란 절대 없다. 어렵게 취재한 뉴스가 언론과 담배회사의 유착으로 물거품이 되자, “한번 더럽혀진 명예는 다시 회복될 수 없다”며 훌훌 사표를 던지는 알 파치노의 비장함은 사무라이의 그것에 가깝다. 그는 스스로 <CBS> 내부 사정을 <뉴욕타임스>에 밀고하는 '인사이더'가 됨으로써 자신의 '인사이더'인 와이갠드를 지킨다. 그의 행동은 궁극적으로는 진실을 지키려는 몸짓이기도 하다. 이 지점에서 현명하게도 <인사이더>는 ‘영웅’보다는 진실에 가까이 가려는 ‘사람’들을 선택한다. 와이갠드가 자신의 딸에게 가지는 애착, PD인 로월 버그만과 앵커인 마이크 월러스의 애증에 관한 세부묘사가 시간을 잡아먹으면서도 눈엣가시로까지 비치지 않는 건 그 때문이다. 그러니 2시간45분이 길다고 너무 불평하지는 말자. 지상에서 영원으로 가는 <그린 마일>의 몇 미터짜리 녹색 복도도 세 시간 가야 끝이 나는데, 실화라는 진실에 가까워지는 것은 또 얼마나 길고도 험난한 세월의 길인가.

<인사이더>의 배경이 되는 담배소송

회사는 니코틴의 유해함을 알고 있었다

앨런 파큘라 감독의 <대통령의 사람들>이 워터게이트 사건을 파헤치는 민완기자들의 활약상을 담은 것처럼, <인사이더> 역시 현재 미국에서 19개월째 진행중인 담배회사소송을 실제로 다룬 작품. 사건의 전말은 이렇다. 미국 플로리다주는 1999년 7월7일 흡연으로 인한 사망자의 유족 등 흡연피해자 50만명이 낸 손해배상청구에서 원고들에게 2천억달러(약 240조원)를 배상하라는 원고 승소 판결을 내렸다. 이로써 <인사이더>의 배경이 된 B&W뿐 아니라 필립 모리스 등 5개의 굴지의 담배회사들은 천문학적 손실을 입게 된 것. 플로리다주 법원의 판결문 요지는 이러하다. 첫째, 이들은 일반 소비자의 기대를 위반한 결함있는 제품을 제조했다. 둘째, 1969년 이전에는 흡연에 대한 경고를 하지 않았다. 셋째, 따라서 1969년 이전의 담배 판매행위는 ‘고의적인 속임수에 의한 사기 행위’로 볼 수 있다. 이때 과연 담배회사의 경영진들이 니코틴의 유해성을 알고 있었냐 하는 것이 위 논리의 핵심인데, 이에 대한 증언을 한 사람이 바로 제프리 와이갠드 박사. 이렇게 해서 법원쪽은 원고가 담배를 피우기 시작한 62년부터 필립 모리스의 담배 경고문이 붙기 시작한 69년까지의 피해기간을 계산해 원고에게 2650만달러를 지급할 것을 명령했다. 현재 미국 내에서는 이외에도 1천여건의 담배소송이 제기되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담배회사들은 <인사이더>가 평결에 영향을 끼칠 수 있다며 배심원들이 ‘이 영화를 보지 못하도록’ 해달라고 요청했으며 법원의 승낙을 얻어낸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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