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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장호 [46] - '무릎'이란 단어에서 시작한 <무릎과 무릎 사이>
2000-03-07

코리안 뷰티, 그 이름은 '무릎'

지금은 노안이어서 책을 읽기가 쉽지 않지만 한창 때의 나는 독서광이었다. 그동안 몇번씩 이사하면서 많은 짐들이 사라지고 새로 생겼지만 책에 대한 애착만은 집요해서 아직도 20대 젊은 시절의 책까지 모두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다. 영화 <과부춤> 이후 나는 경제적인 불안을 잊기 위해 다시 책벌레가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신체언어에 대한 책을 읽다가 문득 무릎이라는 단어에 주목했다. 순간 기묘한 영감과 함께 아주 아름답고 깨끗한 이미지의 성적 충동을 느꼈다. 나로서는 신선한 체험이었다. 그것은 스무살 무렵 읽었던 김승옥의 단편소설에서 가장 신비한 섹스의 이미지로 비너스의 멘스가 뛰어나게 묘사된 것을 발견했을 때처럼 아주 강렬하고 신선해서 무릎이라는 단어에 알 수 없는 전율을 느꼈고 며칠을 거기에 집착했다. 마침내 영감의 샘물에서 ‘무릎과 무릎 사이’라는 싱싱한 제명을 길어올리고 말았다.

나는 이 제명을 생각해내는 순간 마치 노다지를 발견한 광부처럼 가슴이 두근거려 그뒤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이제까지 외면당했던 영화판에 뭔가 보복할 수 있는 큰 기대감으로 마음이 자꾸 들떴다. 당시 조감독이었던 신승수 감독과 워크숍의 제작상무를 맡아준 이상운씨에게만 살짝 귀띔으로 제목을 알려주었더니 그들도 금세 얼굴이 상기되어 희색이 만면했다. 우리는 제명이 도용되지 않도록 서로 입조심하며 재빨리 스토리를 만들어 시나리오 작업에 착수했다. 신승수 감독과 내가 공동작업을 했다. 어린 시절 겪었던 성적 체험들과 오늘의 나를 이루고 있는 것들 사이에서 프로이트적 분석을 토대로 영화를 만들고 싶었다. 무엇보다도 내가 갖고 있는 감각 속에 내가 원하지 않는 것과 원하는 것의 모순을 규명하고 싶었다. 의식화된 뒤의 내 모든 문화적인 감각은 전통을 회복하려고 노력하고 있음에도 아무 감흥이 없는 작업이 되고 있는 게 안타까웠다. 팝송이나 록은 물론, 서양 음악의 클래식조차 흥이 절로 나고 리듬에 맞추어 몸이 춤추듯 저절로 반응을 보이는 것에 반해 국악은 의식해야만 감상할 수 있는 게 나에겐 정말 의문이었다. 서양의 모든 문화적인 쾌감은 아주 자연스럽게 흡수되는데 내가 태어난 내 조상의 전통적인 문화와 감각들은 거슬리는 게 너무 많았다. 나는 그 이유를 내가 이미 어린 시절부터 도시에서 문화적으로 잘못 길들여져 왔기 때문이라고 변명했다. 또 그것은 내가 원해서가 아니고 강요에 의한 것이라고 확신했다.

무릎과 무릎 사이의 테마는 그렇게 ‘강요된 쾌감에 길들여져 있는 피해의식’이었다. 그래서 직설적인 설정으로 서양 음악을 하는 여대생과 국악을 하는 청년의 순조롭지 못한 사랑과 갈등을 보여주고 그 원인으로 어린 시절 미국인 음악 교사에게 당한 성적인 상처를 문제삼는 내용의 스토리 구성을 했다. 나는 아직도 의식화된 나의 자존심을 영화에서 표현하려고 부자연스러운 노력을 하고 있었다. 나중에 들은 얘기지만 목욕탕에 들어가는 사람이 팬티를 고집하는 것과 다름없는 자존심이었다. 시나리오를 만들면서 나는 한편으로 직접 제작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기 위해 지방의 흥행업자들을 접촉했다. 그래서 만나게 된 사람이 방규식씨였다. 지금은 고인이 됐지만 한때 제작과 수입과 배급으로 큰돈을 벌기도 한 인물이었다. 그 역시 내 기획을 듣는 순간 프로답게 금세 감을 잡았다. 그와 의기투합하여 ‘이장호워크숍’은 순항을 시작했다. 아직 개인의 제작이 허락되지 않은 시절이었으므로 우선 제작사의 이름이 필요했는데 영화평론가 이명원 선생이 다리를 놓아 태흥영화사와 손을 잡게 되었다.

태흥영화사는 그때 심한 좌절을 겪은 뒤였다. 비구니를 주인공으로 하는 영화를 만들려고 임권택 감독과 함께 오랜 시간 많은 돈을 없애고 힘을 기울였는데 불교계의 반발이 너무 심해 결국은 촬영이 중단되고 말았다. 주인공인 김지미씨는 머리를 비구니처럼 이미 깎은 뒤였고 제작비는 이미 평작의 수준을 넘어섰지만 중단되고 말았다. 사회적으로도 여론이 들끓었지만 결국 영화가 희생되고 말았다. 얼마나 아까운 돈인가. 그 귀중한 제작비가 한순간에 쓰레기로 변해버렸다. 그런데 이태원 사장은 체념이 빠른 사람이었다. 내가 ‘무릎과 무릎 사이’의 기획을 가지고 그를 만났을 때는 이미 모든 것을 염두에 두지 않고 껄껄 웃고 있었다. 그의 말대로라면 떡 사먹은 셈 쳤다고 했다. 그는 나에게 흔쾌히 동업하자고 제의했다. 제작비는 자신이 담당하고 나는 연출만 하는 조건으로 50 대 50의 이익 분배를 기꺼이 약속했다. 모든 것이 순조로웠다. 일이 되려고 하니까 또 하나의 멋진 기획이 제발로 굴러들어왔다. 공포의 외인구단이었다. 전부터 나는 가수 전영록의 무술 솜씨를 눈여겨 두며 그걸 활용해 시리즈 영화를 만들고 싶었는데, 어느 날 방송사에서 우연히 전영록을 만나 그 이야기를 나누다가 그가 먼저 <공포의 외인구단>이라는 만화를 보았느냐고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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