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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한다면 이들처럼, <눈먼 아비에게 길을 묻다>
김현정 2005-07-14

7월17일까지/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 02-762-9190

불행은 경주 강동면 유금리에 들를 때마다 선호네 집만은 빼놓지 않고 거쳐가는 것 같다. 그만큼 그들은 불행하다. 어릴 적에 아버지가 내던져서 바보가 되었다는 이출식, 한쪽 팔을 못 쓰고 다리를 저는데다 머리도 모자란 그의 아내 김붙들. 짚신처럼 짝을 맞춘 그들은 맏딸 선향을 강물에 떠내려 보냈고, 열두살 먹은 아들 선호마저 소아암을 앓고 있다. 눈물과 한으로 뭉쳐진 삶. 그러나 단칸방에 모여앉은 세 식구는 익은 대추를 모은다는 민요 <대추>를 부르면서 춤추고 웃는다. 그 웃음을 보는 이들은 눈물이 난다.

국립극장에서 예술의전당으로 자리를 옮겨앉은 <눈먼 아비에게 길을 묻다>는 능숙한 손길로 감정의 완급을 조절하는 연극은 아니다. 목욕을 하다가 물에 빠져 죽은 선향의 혼에게 어린 생명을 부탁하다가도 아무렇지 않은 일상으로 돌아가고, 이를 갈던 동서지간의 드잡이도 어느새 제상 앞에 모인 <전원일기>다운 풍경으로 변화한다. 그럼에도 한 대목 한 대목이 쉽지 않다. 아무리 바보라고 해도 죽은 자식이 한스럽지 않을 리가 없다. 선향의 사진 한장 남겨두지 않으려 하는 출식의 고집은, 더듬더듬 힘들게 이어가는 말끝에, 자식을 좋은 세상에 보내야 한다는 다짐으로 터져나온다. 아이의 물건을 모두 태워야만 마음 편하게 떠나는 거라고, 죽은 조상이 선호를 살릴 수 있다면 차라리 내가 죽겠다고.

그러므로 <눈먼 아비에게 길을 묻다>는 마음을 놓아서는 안 되는 연극이다. 슬픔이나 불행은 느닷없이 맞닥뜨리는 대목이다. 소설이나 연극이 그러해야 한다고 배워왔던 것처럼, 전초전을 준비하고 찾아드는 것이 아니다. 또한 그렇기 때문에 마음을 놓아야만 할지도 모르겠다. 개가 불알을 먹어 죽어버렸다는 붙들이 남동생의 슬픈 이야기를 하며 웃지 않는다면, 작은집 마당을 맴도는 선향이 서글픈 노래와 장난을 섞지 않는다면, 살아갈 수 없을 것이다.

손기호 연출은 자폐 비슷한 증세를 보였던 아들 때문에 마음을 앓다가 이 연극을 떠올렸다고 한다. 없는 셈 칠 수 없다면 끌어안아야 한다는 태도가 상투어로만 들리지 않는 건 그 절절한 심정 때문일 것이다. 고개 숙이고 말없이 있어도, 출식은 자기가 믿는 방식대로 자식을 사랑하는 거라고 들려주는 김학선의 연기가, 다소 평이한 구성 아래서 파장을 일으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