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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미진진한 액션 모험 영화, <쓰리 킹즈>
박은영 2000-02-01

“화려한 불꽃놀이를 보는 것 같다. 정말 대단한 장관이다.” 이라크 첫 공습을 수행한 미군의 소감이 그랬다. 과연 걸프전을 낭만적인 불꽃놀이나 무해한 전자오락에 비길 수 있을까. 잠시 잠깐 해외 뉴스를 오르내리던 걸프전의 이미지와 정보 뒷편에 뭔가 다른 사연이 숨어있을 법도 하잖은가. 미 국방성의 여과장치로 거르지 않은 걸프전 원액에 듣도보도 못한 화학 처리를 한 영화 <쓰리 킹즈>의 시작은 그런 의문에서 시작됐다. <쓰리 킹즈>는 전쟁을 배경으로 하고는 있지만, 전쟁 액션 영화로 지칭하긴 마뜩찮다. 아예 휴전 직후를 이야기의 기점으로 잡고 있고, 전쟁 영화 특유의 무게잡는 스타일이나 구태의연한 스토리텔링도 구사하지 않는다. 곳곳에 폭소를 터뜨리게 할 지뢰가 묻혀 있는데, 그렇다고 무작정 웃게나 만드는, 생각없는 코미디도 아니다. 날선 풍자와 비난이 따끔거리기 때문이다.

쿠웨이트 왕족의 금괴가 숨겨진 후세인의 비밀 벙커를 습격하자는 계획을 세우며 결성된 ‘쓰리 킹즈’의 멤버들은 이름값 못하는, 평범한 미국인들이다. 트로이는 샐러리맨 생활이 버겁고, 칩은 공항 역무원 노릇이 지긋지긋해 입대를 자원했다. 트로이는 돈이 필요했고, 칩은 현실 도피를 원했다. 전장이 익숙한 베테랑 게이츠는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건 바로 필요(necessity)고, 그것에 의해 움직여야 한다”며, 부하들의 맘을 움직인다. 돈에 이끌려 전장으로 향한 이들은 더 큰 돈에 이끌려 탈영하고, 전리품이 넘쳐나는 후세인의 벙커에서 적군의 동기 또한 그들과 같음을 알게 된다. 돈이 만든 전쟁통에서 이들은 돈 때문에 위기에 빠지고 또 벗어난다. 탈영과 반역에 대한 면죄부까지, 돈으로 사지 못할 건 없더란 얘기다. 초반에 방송 여기자와 게이츠가 벌이는 정사 장면도, ‘<CNN>의 오늘’을 만들어준 결정적인 계기가 걸프전이었다는 사실을 돌이켜 볼 때 그냥 넘길 수 없는, 의미심장한 대목이다.

‘쓰리 킹즈’가 반군의 이란 망명에 대해 고심하면서부터 이야기의 호흡은 느려지고 웃음은 사그라든다. 형식과 이미지의 실험이 돋보이는 전반부와 달리, 후반부는 상당부분을 이야기 전개에 할애하고 있다. 후세인에 대항하면 지원해주겠다던 약속을 저버린 미국정부 때문에 오갈 곳이 없어진 반군들의 이란 망명을 도울 것인지, 그렇다면 어떻게 도울 것인지, ‘쓰리 킹즈’와 더불어 감독 역시 고민이 많았을 것이다. 그러나 속죄하듯, 회피하듯 성급히 내려버린 결론이 아쉽다. 솜씨있게 만들어낸 이 코미디를 미국 관객만큼 편하게 즐길 수 없다면, ‘세계평화는 우리가 책임진다’는 식의 미국식 영웅주의가 거슬려서일지도 모른다.

<쓰리 킹즈>의 형식미는 빼어나다. 카메라는 빠르고 힘있게 인물의 심리와 사건 내부로 다가선다. 독특한 필름 선택과 적절한 전환도 이야기의 전개와 궤를 나란히 한다. 도입부의 입자 거친 화면은 현상 과정에서 필름의 은막을 제거하지 않고 남겨두는 블리치 바이 패스 기법으로, 전쟁 다큐멘터리의 느낌을 전달하기 위해 사용한 것이다. 전쟁이 끝나고 금을 찾으러 나섰을 때 처음 만난 이라크 민간인이 눈에 설은 미군들의 망막은, 스틸 카메라용 엑타크롬 필름의 초현실적인 느낌으로 대체했다. 정상적인(?) 극영화 필름이 사용되는 것은 주인공들이 중대한 마음의 결정을 내린 이후로, 편안하고 깊고 따뜻한 분위기를 연출한다. <매트릭스>의 총격신처럼, 이 영화에도 총탄이 눈에 보일만큼 천천히 위협적으로 날아가는 환상적인 총격신이 있다. 가장 충격적인 장면은, 총 한번 못 쏴 봤다고 불평하는 부하들에게 게이츠가 전하는 총탄의 폐해가 생생한 비주얼로 구현될 때다. 총알이 살갗에 그리고 내장에 와 박히고 담즙이 터지는 일련의 과정, 그 리얼함은 지난해 미국서 개봉했을 때 상당한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감독은 <뉴스위크>와의 인터뷰에서 컴퓨터 합성 이미지가 아니라 실제 시신을 사용해 촬영했다고 밝혔는데, 스튜디오의 우려와 달리 관객을 매료시켰다. “열어선 안 될 판도라 상자처럼” 절제를 모르는 이미지 과잉으로 이야기가 제압당하는 위험을 자초했다는 비난도 있지만, “흥미진진한 액션 모험 영화로도, 기존 액션 영화의 장르를 뒤집은 영화로도 성공적”이라는 극찬을 받았다.

감독 데이비드 O.러셀

스콜세지 + 스톤 + 알트먼 + 타란티노

영화의 스타일과 분위기로 짐작했겠지만, 러셀 감독은 선댄스 키드다. 그는 전도유망한 의학도가 예기치 못한 상황에 직면하고 좌절해가는 과정을 그린 음울한 코미디 <스팽킹 더 멍키>로 94년 선댄스영화제에서 관객상을 수상하며 화려하게 등단했다. 96년 두 번째 작품 <플러팅 위드 디제스터> 역시 비평가 선정 우수영화 톱에 오르는 등 심상찮은 반응을 얻었다. 막 아빠가 된 젊은 남자가 뒤늦게 자기 생부를 찾아가는 여정에서 아내와 소원해지고 동행한 사회복지기관원과 가까워지는 과정을 유쾌하게 엮은 로맨틱 코미디. 현대사회의 얽히고 설킨 인간관계를 요절복통할 재담과 신랄한 풍자로 풀어보이는 특유의 솜씨로 인디영화계에서 입지를 굳힌 그는 세 번째 작품을 메이저 스튜디오에 만들기로 한다. 뭔가 규모있는 프로젝트를 기획 중이던 그는 워너브라더스의 창고에서 먼지 쌓인 시나리오 한권을 보고 영감을 얻었다. 대학을 졸업하고 한창 혼란스럽던 나카라과에 머물렀던 기억을 떠올리며, 걸프전이라는 배경을 체화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는 걸프전과 그 후유증에 대한 방대한 자료 조사, 전문가의 자문을 거쳐 18개월 만에 시나리오를 완성했다. 미국정부를 부정적으로 묘사한 데 대해 “걸프전 당시의 상황을 사실대로 그린 것 뿐이다. 종전 형태가 맘에 걸린다는 얘기는 조지 부시 자신의 말” 이라고 당당히 밝히긴 했어도, 당분간 “정치에서 멀어지자”고 스스로 다짐했다는 것을 보면, 영화화하기까지 많은 갈등과 고충이 있었던 모양이다. <월레스와 그로밋>의 ‘전자바지 소동’을 보고 액션 시퀀스의 리듬을 생각해낼 만큼, 다양하고 방대한 소스에서 독창적인 표현을 뽑아낼 줄 아는 창작 능력이 그의 특징이다. 영화 평론가 로저 에버트는 “전성기의 마틴 스콜세지, 올리버 스톤, 로버트 알트먼, 틴 타란티노처럼, 데이비드 러셀은 바로 지금 순수한 영화 만들기의 즐거움에 취해 있고, 자신의 아이디어를 캐릭터와 액션을 통해 구체화시킬 줄 안다”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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