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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으로 만난 여섯 군인, 전우가 되다, <웰컴 투 동막골>
김현정 2005-08-02

강원도 산속에 숨어 있는 마을 동막골, 그곳에서 적으로 만난 여섯 군인들은 함께 마을을 지키는 전우가 되어 평화와 자유를 얻는다.

동막골에 이르는 길은 오직 하나뿐이다. 풀숲 사이에 숨은 오솔길과 그 끝에 놓인 작은 다리. 먼지와 피에 젖은 군인들은 하나씩 그 길을 지나 느닷없이 햇빛이 쏟아지는, 이 세상엔 존재할 리 없는 천진한 마을과 마주치고선 말을 잊고 만다. 동막골은 그런 곳이다. “아이들처럼 막살라”는 뜻을 가진 마을 이름처럼, 일년을 보낼 감자와 옥수수만 있다면 무엇이 더 필요한지도 모르는, 원시의 낙원이다. 그러므로 이 영화는 전체가 커다란 거짓말이나 꿈일지도 모르겠다. 세상과 이어지지 않았다고 하여 모두가 착하기만 할 수는 없고 행복하기만 한 건 아닐 테니까. 그럼에도 군인들은 환상을 지키기 위해 혹은 거짓말을 유지하기 위해 버리고 떠나온 전쟁터로 돌아가는 길을 택한다. 거짓과 환상이 있어서, 사람들은 살아가는 법이다.

한국전쟁이 절정에 이른 1950년 늦가을, 북한군 중대장 리수화(정재영)는 패잔병을 이끌고 퇴각하다가 중사 장영희(임하룡)와 병사 서택기(류덕환)와 산속에 낙오된다. 그들은 우연히 정신이 나간 소녀 여일(강혜정)을 만나 그녀가 이끄는 대로 동막골에 들어온다. 비슷한 무렵 다른 장소. 자살하려던 국군 소위 표현철(신하균)은 탈영병 문상상(서재경)의 만류로 자살을 포기하고, 약초 캐러 나온 마을 사람을 따라 동막골에 도착한다. 거의 동시에 도착한 북한군과 국군 일행이 서로에게 총구를 들이대는 순간, 며칠 전 비행기가 추락해 마을에 머물고 있던 연합군 대위 스미스(스티브 태슐러)가 나타난다. 밤을 꼬박 새우고도 한낮까지 이어진 대치. 얼어붙을 것 같은 긴장은 이들 중 두명의 실수로 수류탄이 곳간에서 폭발해 일년치 양식이 공중에 흩어지고서야 해동의 기미를 보이게 된다. 여섯명의 군인은 마을 사람들을 도와 밭을 갈고 나무를 하며 전쟁과 증오를 잊어가기 시작한다.

동막골의 첫 모습은 그림책 책장을 열어 보이는 것처럼 예쁘기만 하다. 웃고 떠드는 아낙네들이 디딜방아를 밟고, 아이들이 뛰어다니고, 늦가을인데도, 나비가 난다. 장진 감독의 동명 희곡보다도 신비로운 마을을 만들고 싶었다는 박광현 감독은 그렇게 하기 위해 원작에는 없었던 나비들을 동막골에 불러모았다. 이들은 수호신이고 정화(淨化)의 요정이다. 자기 손으로 한강 다리를 폭파했고 그 때문에 숱한 사람들의 비명을 품고 사는 표현철, 자신에 대해 아무 말도 하지 않지만 얼굴에 팬 흉터가 마음속에도 남아 있을 듯한 리수화, 전쟁이 무서워 도망쳐나온 문상상, 살인을 저질렀을 그들 모두. 여섯 군인들은 고요한 나비가 맴도는 동막골에서 전쟁의 포성 대신 웃음과 노랫소리를 귀담아듣는 법을 익혀간다. 그 시간은 때로 지나칠 만큼 비현실적이다. 새파랗게 물든 풀밭에서 썰매를 타는 장면이나 점점이 박힌 메밀꽃 뒤에서 서로 마음을 트는 장면은 사전적인 의미 그대로 그림에 가깝다. 고집스럽게 바깥 세상을 무시하는, 완고하게 오솔길을 닫아버리는, 어찌보면 외로운 그림이다.

그러나 박광현 감독은 이 판타지가 “지금도 강원도 영월군에 가면…”이라고 끝을 맺는 <전설의 고향>처럼 언제인가 일어났던 이야기로 들리도록 애를 썼다. 옥수수 알갱이가 수류탄 때문에 한알한알 터지고 구름처럼 눈처럼 쏟아지는 대목이 그렇다. 한순간에 현실을 휘발시키는 이 환상은 지친 군인들을 잠재우는 이완제 기능을 하고, 그들이 머물러야만 하는 이유를 부여한다. 위기에 처한 군인들이 순식간에 장벽을 허물고 손을 잡는 멧돼지 사냥도 마찬가지다. <웰컴 투 동막골>은 판타지를 끌어들여서 더디게 가는 시간을 응축한다. 고작 몇달을 함께했을 뿐인 군인들이 아무 상관없는 마을을 지키고자 웃으면서 죽음으로 걸어가는 마지막은 우직하게 사실만 고집했다면 억지에 불과했을 것이다. 죽음을 앞에 두고 “우리 다른 데서 만났으면 참 재미있었을 텐데”라고 말하는 표현철 때문에 눈물이 나는 건 그들이 재미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아마도 장진 감독이 빚었을 상황의 코미디는 평범한 스토리를 비범한 재기로 보충한다. 동막골 사람들은 그들이 알고 있는 상식을 지키고 산다. “이 아저씨 성은 스씨고 이름은 미스(더하면 스미스)”라는 꼬마의 말을 듣고선 진지하고 친절하게 그 이름을 불러주거나 총을 겨눈 남북 군인들에게 “우리는 신경쓰지 말고 얘기들 하라”고 배려해주는 태도는 상식이되, 전쟁이란 몰상식한 상황에선, 코미디가 된다. 그 코미디를 살리기 위해선 배우들의 연기 또한 상식적이고 천연덕스러워야 한다. 여일의 횡설수설에 당황하는 리수화에게 “상위 동지, 꽃 꽂았습네다”라고, 진부한 대사를 웃음이 터져나오게 말해주는 임하룡과 유리병 안에서 곱게 키워 세상에 내놓은 듯 순수한 얼굴의 강혜정, 연극배우들로 이루어진 마을 사람들의 연기는 정재영과 신하균 두 기둥을 손볼 데 없이 지지해주는 버팀목이다. 그들을 보고 있으면 그들이 무사하기를, 아무 일 없기를 빌고 싶어진다. 그러나 전쟁은 그럴 수 없다. 멀리 떨어진 마을 사람들에겐 신기한 불꽃놀이에 불과한 결전. 기억해주는 이 없어도 목숨을 거는 군인들은 마냥 한가롭던 동막골을 잊어서는 안 될 역사의 상처로 아로새기며 현실 속으로 빠져나온다.

미야자키 하야오의 음악 파트너 히사이시 조

드라마를 추동하는 음악

미야자키 하야오를 좋아하는 박광현 감독은 오랫동안 미야자키 하야오와 일해온 히사이시 조를 자신의 음악감독으로 택했다. 존경하는 거장의 파트너이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그의 음악은 “드라마를 짓누르는 대신 드라마를 추동하기 때문”이었다. 1950년생인 히사이시 조는 구니타치음악대학을 졸업한 이후 몇장의 솔로 앨범을 발표하면서 자유로운 형식과 감성으로 주목받았다. ‘조’는 프로듀서 퀸시 존스에게서 따온 이름. ‘히사이시’라는 한자 성을 읽는 또 다른 방식의 일본어 발음이 퀸시와 비슷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와 미야자키 하야오의 첫 만남은 <바람계곡의 나우시카>였다. 그는 이 영화에서 장대한 서사시에 걸맞은 음악과 함께, 고대의 선율이 그러하지 않았을까 싶은, 단순하고도 인상적인 멜로디를 들려주었다. 히사이시 조와 미야자키 하야오는 이후 <천공의 성 라퓨타>와 <이웃집 토토로>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하울의 움직이는 성> 등에 이르는 숱한 영화에서 동반자로 만나왔다.

히사이시 조의 또 다른 파트너는 기타노 다케시다. 기타노 다케시의 간결한 화면과 어울렸던 그의 음악은 <소나티네> <하나비> <돌스> 등. 오케스트라를 이끌거나 후쿠시마 엑스포 등 공연을 기획하기도 하며 다방면으로 활동해온 히사이시 조는 공동작가도 맡은 음악영화 <4중주>로 감독 데뷔하기도 했다. 히사이시 조는 박광현 감독의 말에 따르자면 “울기도 잘하고, 감동도 잘하는” 사람. “무슨 이유에서인진 모르겠지만” 선뜻 음악을 맡아주었다는 그는 70인조 오케스트라를 동원하자고 제안했고, 부탁받은 양의 두배에 달하는 서른네곡의 음악을 보내주었다. 먼저 일본어로 번역된 시나리오를 보고, 편집본 위에 녹음대본을 일본어 자막으로 입힌 테이프를 보고, 감독과 음악감독이 바다를 건너 두세 차례 만나는 복잡한 방식으로 진행된 작업. 박광현 감독은 히사이시 조가 엔딩 크레딧을 위해 보내준 음악을 성급한 관객이 놓치지 않도록, 기자 시사회가 끝난 다음, 마지막 장면으로 당겨와 다시 녹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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