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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드 미스 다이어리> 징계가 철회되어야 하는 이유
강명석 2005-08-18

차라리 방송사에 징계를!

KBS <올드미스 다이어리>에는 신(新)구(舊)가 결합되어 있다. 예지원-오윤아-김지영의 30대 올드미스들과 김영옥-한영숙-김혜옥의 진짜 올드미스의 결합뿐만 아니라, 시트콤의 과거와 현재가 함께 존재하는 점도 그렇다. 노인과 젊은이의 이야기를 ‘가족 시트콤’으로 뭉뚱거리지 않고 그들만의 이야기를 파고든 것은 시트콤의 새로운 모델이었지만, 에피소드마다 뚜렷한 기승전결을 제시하는 전개방식은 과거의 시트콤과 유사하다. 예를 들면 미자가 어떤 주제를 생각하면 그와 관련된 사건이 연달아 일어나며 갈등이 고조됐다가 마지막엔 캐릭터의 심경 변화나 오해의 해소로 마무리되는 식이다. <올드미스 다이어리>가 공감을 일으켰던 것은 단선적인 전개 속에서 대부분 해피엔딩으로 마무리되는 해결방식 때문이 아니라 에피소드를 시작하게 만드는 소재의 현실성 때문이었다. 만약 이 시트콤에서 ‘시어머니의 뺨을 때리는’ 며느리의 이야기가 불쾌했다면 이 시트콤 특유의 전개방식 때문이었을지도 모른다. 그 에피소드에서 며느리는 예지원처럼 시청자가 몰입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다. 그는 시어머니의 뺨을 때리기 전까지 등장조차 하지 않고, 며느리와 시어머니 사이의 갈등은 거의 설명되지 않는다. 며느리는 뺨을 때리자마자 사라지고, 그래서 전후 맥락 대신 며느리가 시어머니의 뺨을 때렸다는 ‘불쾌한 현실’만이 더욱 크게 부각된다. 혹시 그 불쾌한 느낌이 아마 방송위로 하여금 이 장면을 ‘패륜’으로 생각하게 만든 걸까.

그러나, <올드미스 다이어리>는 한국에서 유일하게 노인문제를 다뤄온 시트콤이다. 또 이 에피소드에서도 며느리 대신 정성껏 손자를 돌보는 시어머니의 모습을 통해 며느리와 시어머니 중 누가 잘못한 것인지 분명하게 드러난다. 당연히 이 에피소드가 누구 편에 서 있는지는 쉽게 알 수 있다. 그것마저 불쾌하다면 어떻게 할까. 그럼 노인문제를 다루는 시트콤이 며느리와의 문제는 세상에 없는 일인 셈 칠까. 철없는 어떤 인디밴드는 정 안 되면 팬들 앞에서라도 그 ‘잘난’ 퍼포먼스를 보여줄 수 있다. 하지만 한국의 ‘잘난’ 공중파 방송은 평범한 노인 자체를 잘 보여주지 않는다. 방송위의 징계는 <올드미스 다이어리> 대신 시트콤이 이 주제를 ‘처음’으로 다룰 때까지 아무것도 하지 않은 방송사에 내려져야 한다. <올드미스 다이어리> 제작진에 잘못이 있다면 그런 시도를 시청자들에게 납득시킬 만한 연출력의 부족이지 차가운 현실의 드러냄 그 자체는 아닐 것이다. 음악프로그램에서 벌어진 ‘막을 수 없었던’ 사고에는 대안 찾기보다는 음악 프로그램의 폐지가 당연하게 여겨지고, 좀더 과격한 문제제기를 한 시트콤에는 맥락에 대한 이해 대신 ‘패륜’이나 ‘사상 최고 수위의 징계’라는 말이 돌아다닌다. 가끔, 세상은 시트콤보다 더 단순무식한 방식으로 흘러가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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