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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없는 죄인의 노래, 뮤지컬 <뱃보이>
김현정 2005-09-02

9월11일까지/ 신시뮤지컬극장/ 02-577-1987

<뱃보이>는 어찌 보면 <가위손>과도 비슷한 이야기다. 가위손을 달고 있어 냉대받은 인조인간 에드워드처럼, 박쥐와 인간의 피가 섞인 뱃보이는, 완고한 작은 마을에서 튕겨나올 수밖에 없다. 죄짓는 법을 모르는데도 죄인이 되고만 아이 뱃보이, 태어나기도 전에 저주받았던 소년. 그러나 뮤지컬 <뱃보이>는 그의 비밀이 드러나는 순간까지 시끄러운 소극(笑劇)과 다정한 로맨틱코미디로 행세한다. 낯선 존재 앞에서 당황하는 시골 마을은 진실을 감추기 위해 허둥대고, 허둥대는 사이, 현실은 코미디가 되기 때문이다.

한때 광업이 번창했던 작은 마을, 불량한 테일러 집안의 삼남매는 폐광에 놀러갔다가 박쥐와 인간이 섞여 있는 듯한 벌거숭이 소년을 잡아온다. 마을 사람들은 혼자 살아온 그 아이를 괴물 ‘뱃보이’라고 부르면서 없애려고 하지만, 수의사 파커 박사의 아내 메레디스는 뱃보이를 감싸면서 에드가라는 이름을 지어준다. 그녀는 에드가를 살려주는 대가로 오랫동안 냉랭했던 남편에게 진실한 애정을 약속한다. 시간이 흘러 영리한 에드가는 빠른 속도로 말과 글자를 배우고 신앙도 갖게 된다. 그러나 사람들은 목장의 소떼가 이유없이 병들어가는 것마저 에드가 탓으로 돌리면서 그를 내쫓고 싶어한다. 에드가를 사랑하는 메레디스의 딸 쉘리가 마을 부흥회에 가고 싶어하는 에드가 편을 들던 날, 십몇년 전에 묻어두었어야 할 저주가 고개를 든다.

<뱃보이>의 전반부 이야기는 싸구려 타블로이드판 신문기사를 콜라주로 만든 듯한 느낌을 준다. 극작가 케네스 팔리와 브라이언 플레밍은 타블로이드 신문에서 반은 박쥐인 돌연변이를 잡았다가 놓쳤다는 뉴스를 읽었고, 그가 왜 달아났는지 심각하게 고민하여, 통속적이면서도 그로테스크한 스토리를 완성했다. 뮤지컬은 감정의 혼돈을 겪을 수밖에 없는 이런 이야기에 어울리는 장르일지도 모르겠다. 인공적이고, 시간의 흐름이 중요하지 않으며, 노래가 드라마를 압축해주는 무대. 아담한 소극장 뮤지컬인 <뱃보이>는 작고 폐쇄적인 무대를 미쳐가는 욕망과 집착의 배경으로 활용한다. 성실한 가장과 왜곡된 증오를 동시에 품은 파커 박사는 그 양면성을 동시에 드러내는 대신, 이해할 수 없을 만큼 빠르게 얼굴을 바꿔가지만, 그 역시 받아들일 만하다.

극의 분위기가 신속하게 다른 흐름을 타는 <뱃보이>는 음악과 춤의 형식도 비슷한 속도로 변화해간다. 쉘리가 에드가를 혐오하며 짐승 취급을 할 때는 생각없는 10대를 선동하는 랩이 흐르고, 에드가가 희망만 있는 듯했던 미래를 노래할 때는 낙관적인 재즈가 감정을 도우며, 부흥회 장면에선 당연하게도 모두들 가스펠을 부른다. 극의 시작과 끝을 연결하는 <Hold Me, Bat Boy> 또한 가사에 변주를 주어 어둠에 파묻혀 살았지만 천진한 뱃보이와 악의에 노출된 채 그 자신도 증오로 파멸하는 뱃보이의 두 가지 영혼을 효과적으로 보여준다. 일본에서 <뱃보이>의 쉘리를 연기했던 슈가 이번에도 같은 역을 맡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