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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비롭고 관능적인 모험, <루시아>

첫 번째는 낯선 사람과의 질펀한 섹스다. 두 번째는 진심으로 사랑하는 사람과의 거친 섹스다. 접촉의 종류는 다르지만 오르가슴의 종류는 마찬가지라고 전제된다. 두 가지 사이에 우열을 가릴 수 있을까? 잠깐, 또 하나의 전제를 빼먹었다. 판단의 주체는 남성이며 여성은 객체다. 두명의 여자는 각각의 섹스를 대표하며 각각의 섹스에 빠져 있다. 삼각관계의 중심은 늘 남자 한명이다. 감독·각본의 홀리오 메뎀은 이 상태에서 우열을 가릴 수 없다, 는 상식적인 혹은 교과서적인 결론을 갖고 있다. 교과서로 장편영화를 만들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래서 주체인 남성에게 혼돈을 일으킨다. 첫 번째 종류의 섹스가 남긴 흔적을 기억 이상의 것으로 만든다. ‘내 생애 최고의 섹스’였던 추억이 물리적 잉여가 돼 나타나자 남자는 혼비백산한다. 끝내 어디론가 도망쳐버린다. 깊은 사랑의 섹스에 빠져 있던 여자는 영문도 모른 채 후폭풍을 맞는다. 여자는 상처를 씻고자 먼 여행길에 나선다.

소설가 로렌조(트리스탄 우요아)와 삼각관계를 이루는 루시아(파즈 베가)와 엘레나(나즈와 님리)의 사연이 이런 건데 여전히 좀 딱딱하다. 교교한 달빛이 쏟아내는 바다를 침대 삼아 탐미스런 섹스신을 벌이거나 발기하는 남성을 클로즈업으로 포착한다고 해결될 일이 아닌 듯하다. 그래서 미스터리가 끼어든다. 도망간 남자는 살았는지 죽었는지 불분명하고, 로렌조가 써내려가는 소설은 현실인지 환상인지 분간하기 곤란하게 삼각관계 속으로 파고든다. 사적인 감정없이 동물적인 섹스를 제공하는 카를로스(다니엘 프레이레)의 존재 역시 소설 내부인지 바깥인지 구분하기 어렵다. 카를로스는 전직 포르노 여배우와 동거 중인데 그녀의 딸은 카를로스를 욕망한다. 두 삼각관계가 포개지기도 한다. 로렌조와 여배우의 딸, 카를로스와 엘레나가 또 하나의 섹스로 충돌한다. 충돌은 사고를 일으킨다. 누군가 다치거나 죽거나.

<루시아>를 남성 판타지라고 정색하고 말할 일은 아니나 영화 내부에서 판타지가 상처를 치유하고 관계를 회복시키는 도구인 건 사실이다. 루시아와 엘레나는 판타지 같은 남성성의 존재였던 카를로스를 통해 서로를 보듬어 안게 된다. 나아가 로렌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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