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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현실에 대한 감독의 불안한 시선, <나이트 플라이트>

웨스 크레이븐이 돌아왔다. 상영시간은 짧아졌고, 공간은 압축되었고, 인물들도 줄었다. 정체불명의 목소리도, 가면을 쓴 괴한도 등장하지 않는다. 대신, <나이트 플라이트>의 웨스 크레이븐은 그 어느 때보다도 공포의 긴장과 이완에 영화의 무게를 싣는다.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공포의 순간이 없어도 안도의 한숨과 절박한 위기가 반복되는 상황은 그 자체로 충분히 생동감 있다. 과연 75분이라는 짧은 시간에 긴장감을 잃지 않는 완결된 이야기를 담아낼 수 있을까? 여기에 영화는 공간의 변화에 따라 나타나는 두번의 급박한 반전과 입체적인 캐릭터, 그리고 비행기의 공간적 성격을 통해 답한다.

호텔리어 리사(레이첼 맥애덤스)는 공항에서 우연히 만난 친절한 남자, 잭슨(킬리언 머피)과 같은 비행기, 옆자리에 탑승하게 된다. 그런데 기상 악화를 뚫고 비행기가 이륙을 마친 순간, 잭슨의 정체가 드러난다. 리사의 호텔에 머무르기로 계획된 정부 인사를 암살하기 위해 리사를 협박하는 잭슨. 불안정한 대기로 흔들리는 비행기와 잭슨의 위협에 흔들리는 리사의 심리적 공포가 절묘하게 만난다. 리사의 선택과 비행기 내부의 상황, 정부 인사와 리사 아버지의 운명, 잭슨의 교묘한 전략 등에서 암시되는 9·11 테러의 그림자는 영원히 끝나지 않을 악몽처럼 숨을 조인다. 무엇보다 이 영화의 매력은 한 영화 속에 다양한 장르가 집약된 것처럼 보인다는 데 있다. 초반의 평범한 로맨스와 중반의 심리적 스릴러, 그리고 후반의 호러가 만나 이루어낸 이 불협화음은 캐릭터의 역동성을 부각시키고 공포의 긴장과 이완을 조성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상이한 장르들과 교차편집 등을 통해 극단적 상황과 평범한 일상이 조우하는 순간들을 창조해낸 이 영화에서 미국의 현실에 대한 감독의 불안한 시선을 읽어내는 일은 어렵지 않다.

행여 크레이븐이 정체불명의 괴한 하나 나오지 않는 심심한 스릴러로 변절했다고 실망하는 팬들이 있다면? 걱정마시라. 킬리언 머피의 기이한 연기와 지독히 푸른 눈동자는 그 어떤 괴한보다 끔찍하며 계단에서 굴러떨어지기, 커튼 뒤에 숨은 척하기, 무모하게 칼 들고 설치기 등 전통적 호러의 묘미는 여전히 남아 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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