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링 위의 힘겨운 투쟁, <신데렐라 맨>
박혜명 2005-09-13

20세기 초에 활동한 미국 복서 짐 브래독은 뉴욕의 설움 많은 아일랜드계 이주민 2세였다. 5남2녀가 바글거리는 집에서 태어나 갖은 잡역부 일로 가계를 돕던 그는 스물한살 되던 1926년에 라이트 헤비급으로 프로에 데뷔했다. 치르는 경기마다 초반에 KO승을 올리며 승승장구하다 헤비급 챔피언 타이틀전에서 패한 해가 1929년. 공황으로 모든 것을 잃고 오직 생계를 위해 싸웠는데 뭣 때문인지 그는 5년간 22전16패의 기록만 남겼다. 그러다 또 뭣 때문이었는지 기적처럼 재기했다. 햄 한 조각 먹지 못한 스물아홉의 체력으로 젊고 유망한 헤비급 복서들을 제쳐내더니 브래독은 1934년, 경기 중 몇명의 숨을 끊어놓았다는 챔피언 보유자와 맞붙게 됐다.

이 ‘뭣 때문인지’에 초점이 맞춰졌다면 영화 <신데렐라 맨>은 끈질기고 처절한 스포츠 드라마에 가까워졌을 것이다. 정신병을 지닌 천재 수학자의 실화에서 아름다운 부부애와 노벨상 수상이라는 극적인 감동을 찾아내 영화 <뷰티풀 마인드>를 만들었던 론 하워드 감독은 짐 브래독의 삶을 고독하고 파란만장했던 스포츠맨의 것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우유에 물을 섞어 마셔야 할 만큼 가난한 시절에 소중한 가족의 생계를 온몸으로 책임지고자 했던 가장의 것으로 본다. 새벽마다 초라한 꼴로 하루 일감을 찾아나서던 퇴물 복서 짐(러셀 크로)은 복서로서의 투지 때문이 아니라 푼돈의 생활비가 아쉬워, 대타라는 망신도 잊은 채 어리고 강한 상대들과 맞선다. 그러면 사랑스럽고 현명한 아내 매(르네 젤위거)는 밀린 전기료와 우윳값을 해결해줄 대전료보다 당신 몸이 먼저, 라는 애틋한 당부를 남긴다.

‘신데렐라 맨’은 짐 브래독이 재기에 성공하자 사람들이 그에게 붙였던 별명이다. 뉴욕의 서민들은 부둣가의 재투성이 퇴물이 화려하게 재기한 모습을 보고 공황기를 이겨낼 희망을 얻었다. <신데렐라 맨>에서 벌어지는 링 위의 힘겨운 투쟁은 “널 버리지 않으마”라고 아들에게 약속하는 아버지들의 것이며, 승리가 남긴 감동의 몫은 외부의 어려움을 이겨낸 가족들의 것이다. 스포츠맨을 다룬 영화로서 <신데렐라 맨>은 이 영화만이 보여줄 수 있는 복서의 캐릭터를 굳이 경기 안에 담지 않는다. 마흔한살의 몸으로 이십대 후반의 복서 역을 해낸 러셀 크로가 안쓰러워 보일 만큼 경기장면이 실감난다는 것을 제외하면, 권투영화 <신데렐라 맨>은 짐 브래독의 대전 결과를 아는 이들에게까지 새로운 이야깃거리가 되지는 못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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