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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활한 상상의 세계, <찰리와 초콜릿 공장>
김현정 2005-09-13

<찰리와 초콜릿 공장>의 작가 로알드 달은 어린아이처럼 단것을 좋아하는 사람이었다고 한다. 한개만 먹으면 코스요리를 맛볼 수 있는 풍선껌이나 녹지 않는 아이스크림, 민트로 이루어진 풀밭은 군것질거리에 애틋해하는 철없는 사람만이 생각해낼 수 있다. 아마도 로알드 달은 윌리 웡카의 초콜릿 공장에서 살고 싶었을 것이다. 초콜릿과 캔디가 넘쳐나고, 공장의 주인이 창조자처럼 군림하며, 심술궂은 아이들을 마음대로 혼내줄 수 있는. 그러므로 <찰리와 초콜릿 공장>은 상상의 세계와 그 원천이 꿈처럼 녹아드는, 거친 손길이 그 둘을 분리하고자 한다면 생명을 잃고 시들어버릴, 완벽하게 고립된 창조물일지도 모른다. 이 고집 센 동화를 어떻게 다른 장르로 옮겨놓을 것인가. 그 자신 또한 기괴한 환상의 창조자이자 거주민인 팀 버튼은 그에게 어울리고 그만이 가능한 방법을 선택했다. 팀 버튼은 신이 나서 과자로 만들어진 세상 속으로 뛰어들어가는 어린아이처럼 초콜릿 공장을 건설했다. 천진하고 오만하고 잔인한 진짜 어린아이처럼, 혹은 로알드 달처럼.

너무 가난해서 양배추 수프만 먹고 사는 소년 찰리(프레디 하이모어)는 윌리 웡카(조니 뎁)의 초콜릿 공장 앞에서 달콤한 냄새를 들이마시며 허기를 달래곤 한다. 천재적인 발명가 웡카는 한번도 공장 문을 열어본 적이 없는 은둔자. 누구도 모르는 방법으로 비밀을 지키고 있던 그는 초콜릿 포장지 안에 다섯장의 황금 티켓을 숨겨두고 그걸 찾은 아이들을 공장에 초대하겠다고 발표한다. 일년에 딱 한개 초콜릿 바를 먹을 수 있는 찰리는 간절한 소망과 어른스러운 포기 사이를 오가지만, 우연히 주운 돈으로 사먹은 초콜릿 포장지 안에서 마지막 티켓을 발견한다. 예전에 웡카의 가게에서 일했던 할아버지(데이비드 켈리)와 함께 공장에 초대받은 찰리. 난쟁이 움파룸파들이 사탕으로 만든 배를 타고 초콜릿 강물 위를 노저어가는 꿈의 세계가 그 앞에 펼쳐진다.

제작비로 1억5천만달러를 소진한 팀 버튼은 <찰리와 초콜릿 공장>을 실용성과는 상관없이 값비싼, 매우 사치스러운 수공예품처럼 만들었다. 이 영화는 강박이 느껴질 정도로 섬세하다. <가위손>의 고성(古城)의 기계장치가 떠오르는 초콜릿 공장 컨베이어벨트, 롤리 팝이 들어찬 사탕가게와도 같은 원색, 거품이 이는 초콜릿 폭포와 소인국 릴리풋의 아마존 버전이라 할 만한 룸파랜드, 비유가 아니라 진짜로 쓰러져가는 찰리네 집. 원작의 일러스트를 그린 쿠엔틴 블레이크는 낙서처럼 분방하고 엉성한 윤곽선 안에 연한 색채를 채워넣었을 뿐이지만, <마이너리티 리포트> <터미널>의 프로덕션디자이너 알렉스 맥도웰은 꼼꼼하게 색칠공부를 하는 모범생 소년의 태도를 유지했다. 초콜릿 공장의 첫 번째 방이 관객을 압도하는 건 <헨젤과 그레텔> 이후 모든 아이들의 로망인 ‘과자로 만든 집’이 아예 과자로 만든 숲이 되어버렸다는 아찔한 경험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그렇다고 하여 로알드 달과 쿠엔틴 블레이크의 유머마저 엄격한 미술 아래 파묻히지는 않았다. 부모와 조부모, 외조부모까지 비스듬하게 기울어진 집에 모여사는 찰리의 가난이나 자기가 만든 인형 쇼를 보고 남일처럼 박수치며 좋아하는 윌리 웡카는 부끄러움과 가학이 기묘하게 섞인 희극의 순간을 완성한다. 아이들이 하나씩 처벌받을 때마다 노래부르고 춤추는 움파룸파들의, <팀 버튼의 유령수업>에 비할 만한 뮤지컬 장면 또한, 잔인한 쾌감에 동참하도록 관객을 부추긴다. 사실 <찰리와 초콜릿 공장>은 순진무구한 동화는 아니었다. 초콜릿 강물을 통째로 들이마시는 푸줏간집 뚱보 소년 아우구스투스나 버릇없고 이기적인 재벌가의 소녀 버루카 등의 네 아이는 극단적으로 밉살스럽고, 벌받아 마땅하다고 묘사된다. 윌리 웡카는 찰리에게 상을 주고 싶은 마음보다 그 아이들을 괴롭히고 싶어하는 심술 때문에 이벤트를 계획한 것이 아닐까.

찰리를 제외한 네 아이들은 웡카가 무엇을 만들었는지 눈여겨보지 않는다. “정말 멋지지 않아? 진짜 괜찮지 않아?” 팀 버튼과 윌리 웡카는 영화 내내 이렇게 조르지만, 아이들은 웡카의 과시욕을 충족시켜주는 대신, 그 자신을 자랑하거나 욕심을 채우기에 바쁘다. 아이가 아이를 만난 것이다. 그러나 가난 때문에 자기 자신을 지우는 법을 터득한 찰리만은 웡카에게 처음 먹어본 캔디의 맛을 물어보고, 진정으로 경탄하고, 아픈 기억을 떠올리게 하고, 저녁 식사에 초대해준다. 그러므로 여러 언론이 조니 뎁의 윌리 웡카를 마이클 잭슨에 비유한 건 억측만은 아닌 듯하다. 햇빛을 보지 못해 창백한 피부를 하고 공들여 차려입었지만 광대처럼 보이는 웡카는 빼앗겼다고 믿는 어린 시절을 되찾고자 벽장 속에 머리를 처박은 인물이다. 그는 누군가 자기를 알아주기를 애타게 원하고, 그 때문에 역설적으로 폐쇄적이다.

팀 버튼이 원작에 손을 댄 유일한 부분이 이 과거의 기억이다. 원작에서 윌리 웡카는 동기나 과거가 없는 인물이었다. 팀 버튼은 허공에서 뚝 떨어진 듯한 웡카가 왜 초콜릿에 집착하는지 연구해서 아버지가 초콜릿을 먹지 못하게 했다는 평범한 결론에 도달했다. 그러나 그 결론은 평범하지 않기도 하다. 음산한 배우 크리스토퍼 리가 완벽한 치아를 추구하는 아버지 닥터 웡카를 연기하고, 어린 윌리 웡카는 중세 고문도구와 비슷한 치아 교정기를 달고, 한순간의 사실성도 허용하지 않는 환상의 공간이 과거를 채우기 때문이다. 웡카의 어린 시절은 팀 버튼이 스스로를 추억하는 것처럼, 그의 전작들 틈에 뿌리를 대고 있다.

웡카의 플래시백을 제외한 <찰리와 초콜릿 공장>은 로알드 달과 그의 추종자들을 위한 기념품과도 같은 영화다. 1990년에 죽은 로알드 달은 직접 영화에 참여할 수는 없었지만, 초등학교 3학년 때 로알드 달에게 팬레터를 썼다는 작가 존 오거스트와 팬을 자처하는 팀 버튼이, 스스로 간섭하고 경계를 한 셈이다. 무한으로 보이는, 그러나 울타리를 두른 세계. 팀 버튼은 이 역설의 함정에 빠지지 않고, <팀 버튼의 유령수업>에서 비틀쥬스가 살고 있는 미니어처처럼, 혹은 좁은 구멍 끝에 하나의 세계가 놓인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처럼, 투명한 돔 안에 갇힌 광활한 세계를 창조했다. <찰리와 초콜릿 공장>의 원작과 영화는 거의 겹치듯이 포개진다. 세상에 두개일 필요가 없는 것들이 대부분이지만, 웡카의 초콜릿 공장만은 충분히 그럴 가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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