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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덜군 투덜양] 아! 그녀의 공주 드레스여, <불량공주 모모코>

투덜양, <불량공주 모모코>를 보고 ‘스타일’에 대해 생각하다

아마 길거리에서 실제로 모모코를 봤다면 나는 <불량공주 모모코>를 봤을 때보다 훨씬 큰소리로 웃었을 거다. 진짜 깬다 깨. 쟤 미친 거 아냐? 정신병자인가봐. 키득거리기는커녕 그녀에게 들리라고 큰소리로 떠들며 푸하하하 비웃었을 것이다. 그렇게 큰소리로 웃을 것까지야… 이건 웃음이 아니라 비난이고 공격이다. 왜. 모모코는 내가 남의 시선을 의식하면서 포기했던 꿈을 실현하면서 살아가는 사람이니까. 실은 배알이 뒤틀리는 것이다.

사실 내가 그 꿈을 포기한 건 불과 몇년 되지 않는다. 조금 과장해 말하자면 내 마음대로 내가 입을 옷을 고를 수 있었던 이십대 시절 내내 나는 공주옷을 향한 열망을 버리지 못했다. 물론 모모코처럼 극단적인 옷차림은 엄두도 내지 못했지만 레이스와 꽃무늬, 분홍색과 앙증맞은 프린트, 자수 등 귀여운 스타일에 대한 집착이 심했다. 사실 지난해에도 분홍색 스웨터와 분홍색 코듀로이 바지를 입고 모임에 나갔다가 사람들의 경악하는 표정을 보고서야 뭔가 잘못됐다는 사실을 깨달은 적이 있다. 아무튼 옷가게에서 고르는 옷 상당수에 같이 간 친구들은 두팔로 엑스자를 그렸고 혼자 쇼핑을 갔다가 눈이 뒤집혀 산 나풀나풀대는 원피스 몇벌이 옷장 안으로 직행하기도 했다.

때로는 나의 선택이 과했던 적도 있지만 문제는 옷에 있지 않았다. 장대한 나의 기골, “가까이서 보면 진짜 남자 같아”라는 말을 듣는 인상이 결정적인 걸림돌이 됐다. 같은 옷을 입어도 아담 사이즈에 동그란 인상의 친구는 순간 소녀로 변신하는데 내가 입으면 물난리로 몸만 빠져나온 이재민이 마치 의류 재활용 봉투를 뒤져 찾은 물건을 걸친 꼴이었던 것이다.

스타일은 자유라지만 나처럼 세상 눈치 많이 보고 사는 사람한테는 억압이나 규범으로 작용하는 경우가 더 많다. 내가 공주 드레스를 입었기로서니 나를 때려죽이는 사람이야 없겠지만 “너에게 어울리지 않아”라는 말은 “너 참 무능하구나”라는 말보다 때로 더 큰 상처를 준다. 어울린다는 건 뭘까. 물론 보기 좋고 안 좋은 게 분명 있기는 하겠지만 멋진 스타일, 어울리는 옷차림 이런 표현이 휘두르는 권력은 생각보다 편협하고 폭력적일 때가 많다는 생각이 든다. 충고를 하는 본인이야 상대방을 위해서 하는 조언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아도 대체로 그런 조언은 우월감에서 나온다. 그런 종류의 우월감은 점수 따위로 수치화할 수 없기 때문에 오히려 더 날카롭고 큰 칼이 될 수 있다.

그래서 내가 <불량공주 모모코>에 감동받았던 건 기실 모모코와 이치고의 진한 우정이 아니라 모모코의 강직한 스타일- 패션과 성격 둘 다- 때문이었다. 트렌드니 감각이니 하는 세상의 ‘위협’에 용감하게 응전하는 모모코의 공주 드레스는 정말 멋졌다. 그리고 무엇보다, 무엇보다 진짜 감동이었던 건 모모코가 수놓은 흰 드레스였다. 솔직히 너무 입어보고 싶었단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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