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Skip to contents]
HOME > News & Report > News > 국내뉴스
큐브릭 감독 흑백 <로리타> 비디오 출시
2001-07-27

극사실주의 ‘위악’적 연출 37년뒤 유작 ‘아이즈 와이드 셧’에도 묻어나…

고 스탠리 큐브릭 감독이 62년에 흑백으로 찍은 영화 <로리타>가 비디오로 출시됐다. 제작진의 간섭 때문에 큐브릭 스스로 자기 작품연보에서 빼려고까지 한 <스팔타커스>(60) 이후에 만든 게 이 영화다. 그런 만큼 큐브릭이 자신의 목소리를 충분히 담으려 했을 것으로 짐작된다. 그래서인지 이 영화와 큐브릭의 유작인 <아이즈 와이드 샷>(99)에서 여러가지 유사점이 찾아지는 것 같다.

<로리타>는 `로리타 컴플렉스'라는 말을 낳은, 러시아 망명작가 블라디미르 나보코프의 <로리타-한 백인 남자의 고백>을 가지고, 큐브릭이 나보코프에게 직접 각색을 의뢰해 만들었다. 이혼하고 미국을 찾은 한 40대 프랑스 남자가 하숙집을 보러 갔다가 그집에 사는 13살짜리 소녀 로리타에 매료돼 그 집에 묵게 된다. 로리타와 미망인이 된 그의 어머니 둘이 사는 집에서, 이 남자를 사랑하는 건 미망인이지만 로리타도 이상한 기운을 내뿜는다. 남자는 자신이 일기장에 썼듯 “무척 정숙한 듯하면서 위악적인 저속성을 지닌” 로리타 때문에 미망인과 결혼을 하지만, 마침 미망인이 교통사고로 죽자 로리타와 다른 마을로 이사가 둘의 밀월을 시작한다.

이 둘에게서 해피엔드를 기대한다는 건 당연히 무리다. 사회로부터 벗어나 둘만의 장벽을 쌓으려 하는 남녀의 이야기는 영화나 소설에서 많이 다뤄졌지만, <로리타>에서 눈에 띄는 건 주인공 남자의 심리다. 그는 갈수록 로리타에게 집착하고, 벗어나려는 로리타를 의심하면서 마음의 균열을 일으킨다. 이게 자신의 강박에서 비롯된 착각인지, 로리타와 주변사람들의 농간인지 분간하지 못할 단계에까지 내몰리는 이 남자의 심리를 스릴러의 장치를 약간씩 빌어와 정교하게 잡아낸다. 바로 여기서 남자 역의 제임스 메이슨은 <아이즈 와이드 샷>의 톰 크루즈를 떠올리게 한다. 남자가 비열해지는 대목까지 스스럼없이 드러내는 위악적 연출도 마찬가지다.

욕망이 사회의 울타리 바깥으로 삐져나올 때, 현대인들이 보이는 심리적 균열의 지도를 극사실주의로 잡아내는 건 큐브릭이 영화에 담고 싶었던 세계의 중요한 한 부분이었던 모양이다. 독특한 건 그가 71살에 찍은 <아이즈 와이드 샷>의 톰 크루즈에게보다, 34살에 만든 <로리타>의 제임스 메이슨에게 더 연민을 드러내 보인다는 점이다. 큐브릭은 나이가 들수록 더 젊어진 많지 않은 감독중의 한 명인 것 같다.

임범 기자 isma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