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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라는 매체가 품고 있는 환상성의 실체, <사랑니>
문석 2005-09-27

세상에는 비슷한 외모나 느낌을 주는 상대하고만 연애를 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럴 경우, 그 외모 또는 느낌의 원형은 대개 첫사랑에서 비롯된다. 잘 나가는 대입학원 수학강사 조인영(김정은)이 수강생인 이석(이태성)을 사랑하게 된 상황 또한 비슷하다. 인영은 이석이 자신의 첫사랑과 “이름만 같은 게 아니라 똑같이 생겼”다고 생각한다. 열세살 터울인 두 사람의 사랑이 시작되면서 주위의 시선은 따가워지지만, 인영은 “누구랑 키스하고 싶은 게 나쁜 일이야?”라며 당당하게 사랑을 지켜나가려 한다.

<사랑니>는 단순한 사랑 이야기가 아니다. 이름이 같은 여러 인물들과 독특한 시간배열이 뫼비우스의 띠처럼 꼬여 있어 보는 이를 혼란스럽게 한다. 서른살 조인영과 열일곱 이석의 이야기가 흘러가는 와중, 우리는 간간이 끼어드는 열일곱 조인영(정유미)과 열일곱 이석의 에피소드를 보게 된다. 명백히 서른살 조인영의 회상으로 보이던 이 대목은 열일곱 조인영이 이석을 만나기 위해 서른살 조인영의 학원으로 찾아오는 순간, 돌연 현재진행형이 된다. 여기에 서른살 조인영의 첫사랑, 그러니까 서른살 이석이 귀국하면서 상황은 더욱 복잡해진다. “개인의 과거이면서 과거이지 않을 수 있는 영화적 장치로 같은 인물을 여럿 등장시켰다”는 감독의 의도 탓에 이야기는 아귀를 맞추려 할수록 더욱 미궁 속으로 미끄러져 들어간다. 현재 시점에서 진행되는 이야기 바깥의 세계는 누구의 시간과 공간인가. 서른살 인영인가, 열일곱 인영인가. 결국 영화에서 서술되는 현재조차 그 객관성을 의심케 하는 <사랑니>는 영화라는 매체가 품고 있는 환상성의 실체를 고민하게 만든다.

물론, 복잡한 구조는 이 영화를 이루는 일부에 불과하다. 기능적 대사와 설명적 화면이 거의 존재하지 않는 <사랑니>는 언어로 표현이 불가능할 독창적이고 감성적이며 직관적인 장면과 대사들로 인영의 내면을 투영한다. 깔깔대는 인영의 웃음소리와 돌아가는 세탁기, 터널 속 자동차의 뒷모습, 그리고 “허, 타이밍 참…” 같은 대사는 필름 위에 감성의 잉여물을 덧입힌다. 어쩌면 <사랑니>는 ‘잠자느라 어젯밤에 내린 비를 알아차리지 못한’ 사람이라면 그냥 지나칠 수밖에 없는 유리창의 물방울 같은 영화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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