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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아한 스릴러. <리플리스 게임>

낯익은 이름의 제목, <리플리스 게임>은 패트리샤 하이스미스의 소설, <리플리> 시리즈 중 후기작에 속한다. 그녀의 작품 속에서 리플리는 줄곧 모호한 성정체성과 비정한 범죄자의 이미지를 지녀왔다. 이는 이미 두 차례나 영화화된 <The Talented Mr. Ripley>에서도 확인된 바 있다. 그 리플리를 이번에는 <비엔나 호텔의 야간배달부>로 알려진 릴리아나 카바니가 조율한다. 극단적 상황 속에서 선과 악의 경계를 사유하던 카바니에게 리플리는 더할 나위 없는 텍스트였을 것이다.

우아함 이면에 잔혹성을 숨긴 사기꾼 리플리와 이 철두철미한 냉혈한을 감히, 비난하던 조나단. 그에 대한 리플리의 복수심에서 이야기는 전개된다. 리플리는 조나단이 백혈병에 걸려 죽어간다는 점을 이용해 자신에게 들어온 살인청부를 그에게 넘긴다. 그러나 거액의 돈을 제시받고 살인을 결심한 조나단과 조나단의 행보를 관망하던 리플리 사이에 묘한 관계가 형성되기 시작한다. 조종하는 자와 조종당하는 자가 같은 운명을 공유하자 영화의 흐름은 모호한 상황들의 지배하에 놓이게 된다. 절대적으로 악하지도 선하지도 않고, 자율과 타율을 오가며 행동하는 인물들은 그들에 대한 일관된 감정이입을 불가능하게 만든다. 인간의 심리에 천착하여 인간의 행동을 하나의 외적 기준으로는 판단할 수 없게 만드는 힘, 그것이 리플리 시리즈의 매력일 것이다.

끔찍한 범죄를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해치우는 리플리의 냉정함은 존 말코비치라는 배우의 기이함과 잘 어울린다. 꿈속에서 시를 읊조리듯, 변화없는 톤으로 긴 대사를 소화해내는 그의 몽환적인 연기를 보고 있자면, 리플리의 잔혹함은 지적으로 승화되는 것만 같다. 그와 더불어 엔니오 모리코네의 서정적인 음악은 이 영화에 우아한 스릴러의 분위기를 입혀주지만, 그 우아함에 의해 스릴러의 긴장은 늘어진다. 그리하여 동일한 원작을 바탕으로 했던 빔 벤더스의 <미국인 친구>가 떠오르는 것은 어쩔 수 없다. <미국인 친구>에는 행동과 구조의 지독한 반복, 현기증 나도록 팽팽한 긴장감, 그리고 아리송한 캐릭터들의 다층성이 존재했다. <리플리스 게임>에서 이 복잡미묘한 감정, 인물, 이야기의 결은 한결 축약되고 나열된 형태로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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