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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를린 통신] 제작자 전성시대 끝나나
2001-07-30

시나리오작가 입지강화와 감독 편집권한 확대를 골자로 하는 저작권 개정안 논란

7월13일 독일 연방상원에 상정된 법무부의 저작권 개정안이 독일영화계를 발칵 뒤집어놓았다. ‘예술가들의 저작권 향상을 위한 제안’이라는 이름이 붙은 이 개정안에서 영화와 관련된 부분은 두 가지. 시나리오 작가의 입지강화와 감독의 편집권한 확대를 골자로 하는 내용으로 제작자들은 개정안이 자신들의 불이익은 물론 독일영화계에 종말을 재촉할 것이라며 반발을 보이고 있다.

현행법에 따르면 시나리오가 영화화되는 경우 제작자들은 작가로부터 70년 동안 저작권을 위임받는다. 그러나 개정안이 통과되면 TV영화는 5년, 극영화는 10년 뒤에 시나리오 저작권이 다시 작가에게 돌아가게 된다. 따라서 이 기간이 지나면, 작가는 동일한 시나리오를 다른 제작자나 방송국에 다시 판매할 수 있고, 리바이벌이나 속편을 제작할 때도 제작자들과 새로운 계약을 체결할 수 있다. 극영화 시나리오의 경우 TV물에 비해 작가 수당이 후한 편이지만, 그것도 극소수 감독이나 작가에게 한정된 얘기이고, 소위 ‘바이아웃 계약’이라는 형식으로 제작자가 매입해버리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러나 개정안은 시나리오 작가 수당을 영화 총제작비의 3∼4% 정도로 보장하고 있다. 독일 영화제작비가 편당 평균 36억원 정도니, 작가 수당이 1억2천만원 정도되는 셈이다.

영화제작자들이 더욱 분통을 터뜨리는 이유는 지금까지 제작자의 절대권한으로 인정돼온 파이널컷 때문이다. 지금까지는 제작자가 편집에서 지나치게 횡포를 부렸거나, 원래의 예술적 의도가 손상됐다고 인정되는 경우에 한해서만 시나리오 작가와 감독이 파이널컷에 이의를 제기할 수 있다. 그러나 개정안은 제작자가 편집의 세부 변경내용까지 일일이 시나리오 작가와 감독에게 보고하고 동의를 얻도록 함으로써 파이널컷에 관한 제작자들의 권한을 대폭 제한한다. 게다가 파이널컷이 마음에 들지 않는 경우, 감독과 작가는 작품 배급이나 판매와 관련해 비토권을 행사할 수도 있다.

독일 시나리오작가연맹은 제작자들이 지나치게 과장된 반응을 보인다고 비판하면서도, 현실적으로 비토권을 행사할 작가는 없을 것이라고 어르는 분위기다. 하지만 감독과 작가가 비토권을 가질 경우, 제작자들이 이들의 의견을 존중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라는 점에서 대환영이다. 제작자연맹은 편집안을 변경할 때마다 하나하나까지 감독과 작가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면, 차라리 영화제작에 참여한 모든 사람들을 편집실에 불러다놓고 작업하는 편이 낫겠다고 볼멘 소리를 하고 있다. 또, 영화가 편집을 통해 만들어지는 예술매체인데다, 아무리 좋은 시나리오가 있어도 제작자가 돈을 내놓지 않으면 말짱 헛것인 만큼 파이널컷에 관한 권한은 절대로 내줄 수 없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제작자들은 앞으로 감독이나 작가 외에 촬영감독, 편집자, 배우들까지 저작권을 주장하고 나올 가능성도 있다고 지적한다. 이렇게 저작권 관련 비용이 커지면, 결국 그 부담은 고스란히 제작자의 몫으로 돌아가게 되니, 차라리 외국으로 본사를 옮기겠다는 협박까지 불사한다. 또한 외국 투자자들의 발길이 끊어지면서 독일영화계는 사멸되고 말 것이라는 오멘과 함께 저작권 개정을 저지하기 위한 로비에 총력을 기울일 계획이다. 이번 작전의 시나리오는? ‘카오스’다.

베를린= 진화영 통신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