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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위기에 빠져도 싸다, <위기의 주부들>
강명석 2005-10-13

현대 미국의 ‘꼴보수’와 ‘몰염치’를 조롱하다

유일하게 죄책감을 느끼는 캐릭터 브리.

<위험한 주부들>의 사람들이 사는 위스테리아가는 ‘몰염치’한 곳이다. 그건 그들이 매회 거짓말, 불륜, 매춘, 방화, 살인(대체 어디까지 갈 건데?)을 저지르기 때문이 아니라, 속죄하지 않기 때문이다. 수잔은 이디의 집을 태웠지만 자수는커녕 증거 은폐를 위해 딸에게 절도를 권하고, 궁금한 일만 생기면 타인의 집에 무단 침입한다. 그런데도 그는 위스테리아가의 ‘모나지 않는’ 여자고, 성적으로 자유분방한 이디를 가장 싫어했으며, 딸의 사생활을 간섭한다. 가브리엘도 자신의 불륜은 숨기면서 남편의 재산은닉에는 분노하고, 리넷은 남편과 많은 시간을 보내기 위해 그의 승진을 가로막는다. 그럼에도 이들은 아이들마저 ‘나 게이 아니에요!’를 외쳐야 할 정도로 게이를 경멸하고, ‘헤픈’ 여자를 박대한다. 그들은 고상한 척하지만 이기적이고, 뉘우치지도 않는다.

그래서 브리는 고민한다. 그는 위스테리아가에서 거의 유일하게 속죄하는 사람이다. 그는 자식의 죄를 은폐하되 자책도 함께하고, 자식이 죄의식을 느끼지 않자 그의 반성을 위해 아들의 대마초 흡입 사실까지 밝힌다. 하지만 브리에게 돌아오는 것은 점점 비뚤어지는 자식과, 완벽주의 부인과의 관계에 숨이 막혀 이혼을 요구하는 남편, 주변 사람들의 은근한 비웃음이다. 자신의 원칙대로 열심히 살았지만 브리는 조롱당하고, 그가 ‘공화당원이자 전국총기협회 회원’이라는 사실은 조롱의 대상이 미국 보수주의자들임을 분명히 한다. 그러나 그 조롱은 ‘연민’이다. 자기 방법대로 ‘좋은 엄마’가 되기 위한 그의 노력은 늘 엇나갔지만 진실됐고, 그것은 “그래도 난 좋은 엄마가 되기 위해 노력했어”라는 가련한 외침으로 이어진다. 반면 다른 사람들은 속죄하지 않기에 비웃음당하지 않지만, 대신 끔찍한 죄의 굴레를 경험한다.

폴은 대체 몇 사람을 더 죽여야 할지 모르고, 서로를 속인 가브리엘과 그의 남편은 ‘적과의 동침’을 시작한다. 죄는 죄를 낳고, 한 사람의 죄는 마을 전체의 죄로 커진다. 브리에게 필요한 건 ‘게이’와 ‘대마초’를 이해하는 좀더 유연한 사고방식이지만, 속죄할 줄 모르는 위스테리아가의 사람들은 계속 ‘위기’에 시달리며 결국 ‘절망적’(desperate)인 상황이 된다. 고유의 가치관만 붙잡다가 변화하지 못한 ‘꼴보수’와 ‘성경’을 집어던지고 죄를 우습게 아는 사람들의 메울 수 없는 골. 그게 바로 지금 미국인의 초상은 아닐까. 그리고 메리 앨리스는 그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필요한 건 서로에 대한 연민이겠지요”라고. 이 드라마를 즐겨 봤다는 로라 부시의 남편이 그 뜻이나 알는지 모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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