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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덜군 투덜양] 잘된 자막은 코미디의 유산균! <헐리우드 엔딩>

투덜군, 우디 앨런의 공력과 자막 번역가의 재치에 감탄하다

오늘은 좀 개인적인 얘기로 시작할까. 얼마 전 한 출판사로부터 독일산 카툰의 각색 작업 의뢰를 받았다. 이 ‘각색’이라는 건, 우리나라 사람들의 필로는 도저히 이해가 안 되는, 또는 이해해주기 귀찮은 독일식 유머를 손쉽게 알아먹을 수 있도록 수정하는 작업을 지칭하는 말인데, 아무 생각없이 작업을 맡은 지 만 하루가 채 되기도 전에, 필자는 9회초 1사 만루 위기에서 마운드를 넘겨받게 된 투수의 심정이 되고 만다. 세계 제일의(인 것 같다) 논리적이고도 에누리 없는 기질을 가진 나라 출신의 유머를 간단하게 생각한 대가는 과연 혹독한 것이었으니, 각색으로 시작된 그 작업은 결국 작문으로 귀결되는 숙명을 맞이하고 말았던 것이다.

이러한 고난의 작업 이후로, 필자는 영화자막 번역가들의 세계, 그중에서도 특히 코미디영화를 번역하는 분들의 세계를 좀더 경외하게 되었는데, 이것이 필자가 평소와는 사뭇 달리 <헐리우드 엔딩>의 자막을 눈여겨보게 보게 된 사연이다. 그리고 그 결과를 말씀드리오면 <헐리우드 엔딩>의 자막은, 좋았다.

일단 다행스럽게도 이 영화에는 ‘이건 코미디영화란 말이다!’라 부르짖는 오버를 일삼는 ‘급진 작문파’풍의 자막이 아닌, 상당히 담백하면서도 나름대로 분위기를 적절히 전달하는 ‘중도 각색파’풍의 자막이 붙어 있었다. 누가 뭐래도 우디 앨런 영화에 이른바 ‘통신체’ 자막이 붙는 참상만큼은 정말이지 안 보고 싶단 말이지.

또, 분당 500단어 이상의 대사량을 자랑하는 우디 앨런의 영화를 큰 손실없이 무난하게 번역한 것 또한 좋았다. 모르긴 몰라도, 그 구시렁구시렁 대사들을 매번 15글자 이내의 문장으로 번역해내는 건 거의 광고 카피 쓰기와 맞먹는 일일 게다. 예컨대, 우디 앨런이 갑자기 눈이 멀게 되는 대목에서 “내가 길바닥에서 까만 안경 끼고 아코디언 켜는 사람 같은 장님이 됐다니까!”를 “스티비 원더 같은 장님이 됐다고”로 번역한 건, 음, 제법 재치가 있었단 말이지.

그런데 이러한 번역 중 최고봉은 역시 우디 앨런의 아들이 막판에 날려주는 결정타에 붙은 자막이었다. “걔들(평론가들)은 문화계의 최하위층을 대표하고 있다고요”라는 그의 대사는 “평론가들은 창작계의 기생충이죠”라는, 원본보다 간결하면서도 신랄강력한 자막으로 번역되어 있었던 바, 필자는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음, 과연!’이라는 감탄사를 흘리고야 말았던 것이다.

물론 필자의 입장에서 이러한 대사와 이러한 자막에 대해 이러한 논평을 하는 행위는 이적 또는 자학행위나 다름없을 것이다. 하나, 필자는 아무래도 유쾌한 코미디, 로맨스에다가 할리우드 잘근잘근 씹어주기까지 스리슬슬 힘 하나 들인 흔적없이 풀어내는 우디 앨런의 노련한 공력 앞에선 이러한 자학마저도 서슴지 않을 수 없었다. ‘울 때까지 계속’을 부르짖는 신파 로맨스와 ‘여기서 웃어줘요’라고 빨간 밑줄 쫙쫙 긋는 코미디가 극장판을 장악하고 있는 작금의 정세에선 더더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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