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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승업의 첫여인, <취화선>의 손예진
사진 정진환박은영 2001-08-01

아무리 시대가 바뀌고 미의 기준이 달라져도, 변하지 않는 게 있다. 포근한 누이와 고운 첫사랑의 얼굴을 가진 여배우들에 대한 호감과 애정이다. 가슴에 묻은 아련한 첫사랑의 이미지. 여기 또다시 뭇 남성들을 사춘기 소년처럼 미소짓게 하고, 가슴 가득 눈물이 차오르게 하는 여자가 있다. 임권택 감독의 신작 <취화선>에서 화가 장승업의 첫사랑 소운 역할을 맡은 손예진이다.

“학 같은 여자래요. 신비스럽고 고운 여자요.” 오갈 데 없는 장승업을 데려다 그림 그리는 계기를 마련해주는 역관 이응헌의 여동생 소운에 대한 손예진의 설명이다. 장승업과는 신분 차이 때문에 이뤄지지 못하는 사랑. “초반에 잠깐 나와요. 여덟 아홉신? 그런데도 그 여운과 향기가 작품 내내 묻어나야 하거든요. 드러나는 게 아니라 베일에 싸여 있는 인물이라, 연기보다는 이미지로 보여줘야 하구요.” 사진을 봤다며 태흥영화사로부터 처음 연락을 받았을 때 그리고 소운 역으로 캐스팅이 결정됐을 때 주위에서 ‘축하한다’는 인사보다 ‘각오하라’고 겁주는 말들을 더 많이 들었다고 한다. 신인배우들이 눈물 쏙 빠지도록 호되게 야단맞던 <춘향뎐>의 메이킹비디오 장면, 이유도 설명하지 않고 스무번 가까이 배우에게 ‘다시’를 외친다는 소문 등 임권택 감독에 대한 사전정보도 쏟아져 들어왔다. 어린 신인을 주눅들게 만드는 ‘험한’ 얘기들뿐이지만, 손예진은 오히려 그런 이유로 기대가 많은 듯했다. “이런 작품을 앞으로 다시 할 수 있을 거라는 보장이 없잖아요. 많이 배워야죠. 그럴 수 있을 것 같아요.”

손예진이 처음 얼굴을 알리게 된 작품은 TV드라마 <맛있는 청혼>이었다. 올 봄 방영돼 젊은 층에서 인기를 모은 이 드라마에서 손예진은 라이벌 중국집의 아들(정준)과 사랑에 빠지는 ‘줄리엣’형 캐릭터를 연기했다. “사회생활을 막 시작한 거라 인간관계가 힘들었어요. 연기도 물론 힘들었죠. 리액션이 뭔지도 모르고 시작했으니까.” 첫 작품을 마치고 얻은 결론은, 무조건 열심히 하자는 것. 연기가 만만한 것이 아니라는 걸 알고 나니, 선배들의 ‘심지’도 존경스러워 보이더란다. “자기 표현을 잘 못한다”는, 내성적인 성격의 손예진은 바로 그 성격 때문에 배우를 꿈꾸게 됐다고 말한다. “겉으로 보여지는 것과는 다른 뭔가가 내면에 있다는 걸 알고 있었고, 그걸 표출하고 싶었어요.” 중학교 때 배우의 꿈을 품었고, 고등학교 3학년 때 매니지먼트사를 소개받았지만, ‘아직 때가 아니’라는 판단으로 1년 넘게 대기하며 데뷔를 준비했다. 서울예대 영화과 2학년 재학중인 올해, 첫 드라마에 이어 첫 영화를 만나게 된 것. <취화선> 촬영에 앞서 8월 중순부터는 드라마 <선희 진희>에서 착하면서도 당당한, 자신의 ‘이상형’ 선희 역할로 안방을 찾는다.

탤런트 김현주를 닮았다고 하자, 누구 닮았다는 얘기 정말 많이 듣는다고 장단을 맞춘다. “장점일 수도 있겠죠. 저한테 여러 가지 얼굴이 있다는 얘기니까요. 평범하다는 뜻도 되구요. 외모가 뛰어나면 연기가 묻힐 수도 있는데, 다행이에요. 그런 시선들을 다 흡수할 수 있잖아요. 평범하면서도 뭔가 있는 듯한 얼굴이라면 더 좋겠는데.” 손예진은 여리고 착하고 따뜻한 지금의 이미지가 배역 선택에 족쇄가 될 거라고는 생각지 않는다. 욕심내지 않고 작품마다 조금씩 다른 모습을 보여주다보면, 언젠가는 다양한 색깔을 가진 배우로 기억되지 않겠냐는 것. “저 배우, 알면 알수록 모르겠다”는 평을 듣고 싶다고 덧붙이는 손예진은 지금, 무엇이든 할 수 있는 나이 스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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