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팀 버튼이 사랑하는 모두를 담은 선물세트, <유령신부>
박은영 2005-11-01

일찍이 호러영화와 애니메이션에 매혹됐던 소년 팀 버튼은 공동 묘지에서 늘 마음이 편했다고 한다. 그가 사후 세계에 대한 호기심과 동경을 키운 건 그때부터였다. 그의 세계에선 적어도 죽은 자들이 산 자들을 해코지하는 일은 없다. 무덤에서 나와 새 삶을 얻은 강아지가 흉측한 몰골 때문에 공포의 대상이 되고(<프랑켄위니>), 할로윈의 스타가 ‘재밌자고’ 벌인 일들로 세상의 크리스마스가 엉망이 되는 것(<크리스마스 악몽>)처럼, 사건은 그들의 선의와 열정이 오도됐을 때 벌어진다. 이러한 팀 버튼의 상상력, 특히 그 이미지의 힘 앞에선 저승이나 비정상의 세계가 불온하거나 사악하다는 식의 편견을 고수할 수가 없다. 유령을 신부로 맞는 신랑의 이야기 <유령신부>는 그의 그런 믿음과 미감을 더 적극적으로 밀어붙인 경우다.

19세기 말로 추정되는 빅토리아풍의 마을. 졸부 평민 집안의 빅터(조니 뎁)와 쇠락한 귀족 가문의 빅토리아(에밀리 왓슨)는 돈과 지위를 맞교환하려는 부모들의 주선으로 결혼하게 돼 있지만, 만난 적도 없는 사이다. 첫 만남에서 빅토리아에게 호감을 느낀 빅터는 심야의 빈 숲에서 웨딩 리허설을 하다가 봉변을 당한다. 결혼 반지를 끼운 고목 가지가 손가락으로 변하는가 싶더니, 땅속에서 유령신부(헬레나 본헴 카터)가 부활해, 그를 지하 세계로 데려간 것이다. 빅터는 오래전 결혼을 앞두고 살해당했다는 유령신부가 자신의 아내가 되고 싶어하는 데 경악하지만, 조금씩 그녀와 그녀가 속한 세상의 활기에 빠져들기 시작한다.

이야기의 모태는 시체를 신부로 맞는 유대인 남자에 대한 러시아 민담. 반유대주의자들에게 살해당한 유대계 신부들의 위령곡으로 지어졌을 이 민담은, 팀 버튼의 손을 거치며 슬픈 사랑 이야기로 변모했다. 이승에 남은 약혼녀와 저승에서 사귄 연인, 둘 사이에서 방황하는 남자의 삼각 로맨스. 새파랗게 젊은 남자가 유령신부 곁에 머물고 싶다는 충동을 느낀다는 설정, 그런 갈등에 공감할 수 있는 것은 저승 세계가 그만큼 매혹적으로 묘사돼 있기 때문이다. 빅토리아 시대의 엄숙한 무채색이 지배하는 이승의 삶이 무기력하고 단조로운 반면, 저승은 기괴하고 혼돈스럽긴 해도 화려한 열정과 쾌락이 넘친다. 이승의 부모는 “엄마 아빠가 서로 사랑하는 것 같니? 전혀”라고 말하지만, 저승의 현자는 “헤어지지 않도록 독약을 마시라”고 권한다. 사랑을 찬미하는 쪽은 아이로니컬하게도 이승이 아니라 저승이다.

스톱모션애니메이션으로 생명을 얻어 이승과 저승을 오가는 캐릭터들을 보면, “매체와 소재가 잘 어우러진 절묘한 캐스팅”이라는 팀 버튼의 자평에 수긍하게 된다. 제작을 맡은 <크리스마스 악몽>은 물론, <빈센트>를 비롯한 초기작부터 스톱모션 기법을 즐겨 썼던 그는 CGI 캐릭터가 일반화된 지금도 “수공예품 같은 손맛”의 매력을 놓지 못했다(스톱모션 기법으로 괴수영화와 신화물을 만들었던 레이 해리하우젠에 대한 오마주로, 그의 이름을 빅터가 연주하는 피아노에 상표로 새겨넣기도 했다). 인형의 표정 연기에 전동 장치를 동원하고, 디지털 촬영으로 작업의 능률을 높이는 등 테크놀로지의 덕을 보긴 했어도, 스톱모션은 여전히 1주일에 2분 분량밖에 얻지 못하는 지난한 작업이다. 35개의 세트에서 22명의 애니메이터가 동시에 촬영한 적도 있지만, 그럼에도 촬영에 꼬박 52주가 소요됐다고. 더 놀라운 건 디테일이다. 가끔 눈에서 구더기가 튀어나오고, 팔다리가 끊어져나가 문제지만, 유령신부의 미모는 남다른 데가 있다. 제작진은 캐릭터의 외양와 분위기에 따라 다른 조명을 사용했는데, 유령신부는 마를렌 디트리히처럼 보일 요량으로, 당시 여배우 촬영에 흔히 쓰이던 조명(눈 주위에 조명을 집중하고, 렌즈에 바세린을 발라 필터 효과를 내는)을 주었다. 조니 뎁의 눈과 볼을 빼닮은 빅터 인형의 생김새는 또 어떤가.

<크리스마스 악몽>과 소재도 기법도 닮아 있지만, <유령신부>는 채도와 명도가 훨씬 높은 편이다. 그건 비단 시각적인 변화만은 아니다. <크리스마스 악몽>의 잭은 할로윈 마을과 크리스마스 마을의 화해할 수 없는 간극을 확인하고, “자기 세계에 충실해야 한다”는 교훈을 얻는다. <유령신부>의 결론도 크게 다르지 않지만, 산 자와 죽은 자가 (자의로) 결혼을 고려한다는 설정에서는 두 세계의 화해 혹은 평화로운 공존의 가능성이 비치기도 한다. 악동도 나이를 먹었다는 증거로 보이는 이런 낙관주의는 골수팬 사이에서 엇갈리는 반응을 낳을 것 같다. 어쨌거나 분명한 사실. 고딕호러, 해리하우젠의 유산, 무성영화, 뮤지컬, 블랙 유머, 로맨스, 대니 앨프먼, 조니 뎁, 헬레나 본햄 카터, 크리스토퍼 리. <유령신부>는 ‘지금’ 팀 버튼이 사랑하는 모두를 담은 선물세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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