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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공예적 스톱모션 애니메이션, <월래스와 그로밋: 거대토끼의 저주>
이다혜 2005-11-01

엉뚱한 발명가 월래스와 그의 과묵한 동거인 그로밋이 돌아왔다. <월래스와 그로밋: 거대토끼의 저주>(이하 <거대토끼의 저주>)는 점토로 빚은 인형들을 움직여 한 장면씩 촬영해 만드는 수공예적 스톱모션 애니메이션의 명가인 아드만 스튜디오와 드림웍스 스튜디오가 손을 잡고 5년 만에 완성한 장편 애니메이션이다.

‘슈퍼 야채 선발대회’를 앞둔 영국의 작은 마을. 집집마다 공들여 키운 야채들의 마지막 관리에 정신이 없는 이 마을의 골칫거리는 농작물을 먹어치우는 토끼다. 월래스(피터 살라스)와 그로밋은 토끼 퇴치를 업으로 삼고, 고객들의 집에서 경보가 울리면 즉시 출동, 야채들이 탈없이 자랄 수 있게 한다. 문제만 일으키는 발명품들을 만드는 데 일가견이 있는 월래스는 토끼들을 세뇌하는 기계를 발명, 토끼들이 야채를 싫어하게 만들겠다고 장담하지만 실험은 사고로 끝나고 만다. 그리고 얼마 뒤, 거대한 토끼가 온 마을의 야채를 온통 먹어치우는 사고가 발생한다. 우아한 귀족 부인 ‘레이디 토딩톤’(헬레나 본햄 카터)에게 반한 월래스는 기를 쓰고 문제 해결에 앞장선다.

‘월래스와 그로밋’ 시리즈의 전작들인 단편 애니메이션 <화려한 외출> <전자바지 소동> <양털도둑>의 재치를 기억하는 사람들에게 <거대토끼의 저주>는 규모 면에서는 블록버스터이고 내용 면에서는 종합선물세트다. 영국 시골 마을의 ‘슈퍼 야채 선발대회’를 배경으로 하는 만큼, 건물이나 극의 분위기는 영국 냄새를 물씬 풍긴다. 거대 토끼를 잡기 위해 월래스가 자동차에 암컷 토끼 인형을 매달고, 차 안에서 그로밋이 요염한 포즈로 토끼 인형을 움직이는 퍼핏 쇼를 펼치는 장면은 영화의 백미. <킹콩>처럼 미녀를 납치해 손에 쥐고 포효하는 대목과 달이 밝으면 늑대인간처럼 변신하는 거대 토끼 장면은 이야기를 크게 해치지 않는 애교있는 패러디다. 표정이 달라지거나 동작이 달라질 때마다 작은 점토 인형들인 월래스와 그로밋의 얼굴과 몸에 찍히곤 하는 손자국은 장인정신으로 똘똘 뭉친 이 점토 인형들을 움직이는 사람들의 노고를 실감케 한다. <월래스와 그로밋: 거대토끼의 저주>는 개봉 첫주 전미 박스오피스 정상을 차지했지만, 제대로 기뻐하기도 전에 아드만 스튜디오에 화재가 발생, 30m까지 솟구친 화염으로 창고 내부 3층이 모두 무너졌다. <거대토끼의 저주>는, 화재로 인한 금전적 손실보다 손때 묻은 점토인형들과 세트, 소도구의 손실에 마음아파하게 만드는 힘을 가지고 있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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