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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는, 미친 짓이다, <연애>

요시모토 바나나의 소설 <몸은 모든 것을 알고 있다>에 수록된 단편 <미라>는 잔잔하지만 매우 극렬한 연애담이다. 재밌는 건 1인칭 화자인 여성이 가진 연애의 기준이다. ‘그 사람이 추잡한 상상 속에서 나를 어떤 식으로 다루든 내가 용납할 수 있느냐, 없느냐’다. 그녀는 추잡한 상상을 허용하는 남자와만 연애를 해왔다(그렇다고 추잡한 상상을 실천에 옮겨왔는지는 알 수 없다). 사건은 그녀가 이 기준을 처음 어기면서 벌어졌다. “용납을 자시고 할 것도 없이” 공격적인 섹스에만 몰두하는 남자와 짧고 굵은 만남을 갖게 된 거다. 가능성 높았던, 극단적인 결말은 두 가지였다. 18년간 함께 살았던 고양이를 영원히 간직하고 싶어 미라로 만들었듯 그가 그녀를 미라로 만들거나, 그녀가 그의 머리를 으깨 죽이거나. 긴 시간이 흐른 뒤, 그녀는 어느 쪽이든 그리 나빴을 것 같지 않다고 회고한다.

<연애>의 어진(전미선)은 <미라>의 그녀와 다르면서도 비교할 만한 경우를 겪는다. 어진은 추잡한 상상 자체를 하지 않았을 가능성이 높은데, 어쨌든 그 역시 가지고 있을 연애의 기준을 잔인한 외유내강형 비즈니스맨 민수(장현성)로부터 무자비하게 침범당한다. 그리고 영화의 애초 제목이었던 ‘연애는, 미친 짓이다’라는 경구를 잠시 몸과 마음에 새기게 된다. ‘잠시’라고 여겨지는 건 어진의 연애사가 이제 막 본류를 타기 시작했고, ‘얼굴없는 남자’에게 또 다른 맘을 열어놓기 때문이다. 이렇게 <연애>는 연애 롤러코스터에 뒤늦게 탑승해 세상의 파고를 극적으로 체험하는 여인의 몸과 마음을 훑어가는 잔혹연애담이다.

어진은 재수하다 남자를 만나 대학도 포기하고 결혼을 해버렸고, 아이 둘을 낳았다. 아직 젊은데 어느새 남편은 신용불량자가 됐고 그녀가 절박한 가장이 됐다. 싸구려 보석핀을 만들고, 성인 전화방의 자위 파트너 아르바이트를 하느라 뼈가 휜다. 목소리만 파는 건 그다지 돈이 되지 않는다. <연애>는 여진의 딱한 처지와 고운 자태를 동시포착한 김 여사(김지숙)를 만나면서 대가 끊긴 듯했던 호스티스물의 계보로 툭 뛰어든다. 여진이 김 여사의 믿음직스런 카리스마에 이끌려 보도방 전선에 전업으로 나서고, 몸을 거래해야 돈이 된다는 걸 모르는 바 아닐 터이나 자존심과 직업 생리 사이에서, 익숙해 보이는, 방황을 한다. “가랑비나 소낙비나 젖는 건 다 똑같은 기다”는 동료의 삿대질 충고에 비로소 몸을 연다. 그 몸에서 연애담이 시작된다.

첫 번째 2차를 민수(장현성)와 가지면서 어진의 껄끄러움이 풀리게 된다(나아가 환희를 느낀다). 외제차 딜러 민수는 부드러운 남자인 듯했다. 2차 가놓고 싫으면 하지 말라던, 어진에게 반말하는 놈에게 내 친구라고 보호막을 쳐주던, 술도 마시기 싫으면 먹지 말라던, 너그러운 남자였다. 여진은 “별로 맛있지도 않은데 종류별로 과자를 담아놓은 종합선물세트 같은” 결혼 대신 민수와 따뜻한 연애에 빠져든다. 유능하고 냉철한 비즈니스맨이었던 민수는 사실 김 여사를 끔찍하게 폭행하는 남편과 다를 바 없는 종류의 남자다. 그가 여진에게 상상하지 못했던 잠자리를 요구하고 관철하면서 연애는 미친 짓이 되고 만다.

여기서 연애담은 딜레마에 처한다. 연애는 미친 짓이라고 말하는 동시에 극복하려고 하는데 남자 대 여자의 전선을 너무 강고하게 만들어버렸다. 남자는 극악스런 성적 착취자이고 여자는 쓸쓸한 성적 노예다. 이 대목에서 보도방 동료 지혜(오윤홍)와 성모(윤다경)의 비중과 활약은 특별 언급이 필요할 정도로 크다. 호스티스물의 외장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계급의 바닥에 선 여자가 취할 수 있는 연애의 자세를 냉정하게 쳐다보자는 시대의 눈을 취하고 싶었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두 가지 미스터리한 풍경이 딜레마 해소책으로 제시된다. 김 여사의 불행한 소식을 어진과 보도방 동료들에게 끝내 알리지 않고, 어진의 새로운 연애 상대가 될 ‘하늘’이란 남자의 정체를 끝까지 감추고 목소리만 들려주는 방식이다. 모두 어진에게 미지의 희망을 안겨주는 끈이다. 이 끈은 불편할 정도로 작위적이지 않지만, 위장된 혹은 불행한 결말을 지연한 희망일 수 있다는 걸 유념하는 듯한 태도를 동반한다. 하여튼, ‘사랑하라, 한번도 상처받지 않은 것처럼’이라는 얼굴없는 남자의 연애론이 결정적 위로가 된다. “살아만 있으면 마지막 연애라는 건 없다고 생각해요. 늘 그때가 마지막 같지만 조금 늦게 찾아오더라도 사랑에 대한 감정은 또 오게 되어 있어요. 연애는 상상만으로도 좋은 거잖아요.”

문제는 상상이다. 어진이 <미라>의 그녀처럼 추잡한 상상을 해볼 여지가 있었더라면 그의 연애는 좀 다른 흐름을 타지 않았을까. 싱글맘이 감당해야 할 절대 노동의 벽 앞에 선 어진에게 연애는 사치품이었을 테니 연애의 기준 따위를 가늠할 틈도 없었을 것이다. 사회적 육아를 이웃 육아로 대체해주는 듯했던 집주인 은주는 어진의 노동의 질을 인질삼아 아이들을 뺏으려고 한다. 어진의 노동을 불온시하는 외부의 시선과 그 내부에는 신성한 것이 있다는 영화의 시선이 가장 격렬하게 충돌하는 순간이다(호스티스물에서 이 문제를 피해가기란 난감한 것이다). 이런 유의 충돌에 대처하는 어진의 자세에 그의 연애사도 맞물려갈 것이다. 뾰족한 답이 던져지진 않는다. 혹시 ‘신성한 노동’의 개념을 증오하며 자기 가치 대신 남의 가치 창조에 소모되는 노동과 전쟁을 벌이라던 니체의 경구가 도움이 되지 않을까. 추잡한 상상까지 포용하는 자기 창조를 위해 노동과 전쟁을 벌이라고 했을지 모른다(지금의 노동을 피하라는 말은 아니고). <연애>가 세게 찍은 두 차례의 여성 구타 장면과 반전 성격의 정사 장면에 들인 에너지를 연애라는 미친 짓을 어떻게 계속 해야 하는지 하는 의문 풀이에 좀더 나눠줬더라면 어땠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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