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늑대의 후예들
2001-08-07

■ STORY 1764년, 프랑스 남부 산악지대 제보당에 정체 불명의 괴물이 나타나 여자와 아이들을 무참히 죽이는 사건이 이어진다. 루이 15세는 문무를 겸비한 기사 프롱삭(사무엘 르비앙)과 전사 마니(마크 다카스코스)를 파견해 사건의 진상을 조사하도록 한다. 한편 제보당의 군대를 장악하고 있는 실력자 장(뱅상 카셀)은 괴물의 정체가 거대한 늑대라 믿고 군대를 동원해 늑대 사냥에 열을 올리지만, 야수의 제물이 되는 사람들은 점점 늘어만 가고, 늑대를 잡기 위한 덫이 도리어 무고한 마을 사람들을 희생시키는 역효과를 내고 만다. 프롱삭은 생존자들의 증언과 사건 현장의 흔적을 살피면서 살인 괴물은 늑대가 아닌 악마적인 야수라고 주장하지만, 장을 비롯한 마을 사람들은 그의 말을 믿지 않는다. 지역 권력자들의 제지에도 불구하고 독자적인 조사를 벌이기 시작한 프롱삭은 결국 괴물의 실체를 접하게 된다.

■ Review

올 상반기 프랑스 영화계의 가장 큰 화제는 바로 ‘자국영화 열풍’이었다. 프랑스 영화의 인기는 15년만에 할리우드 영화를 추월했고, 결국 자국 영화 점유율 55%라는 진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그 흥행 열풍의 한복판에 <늑대의 후예들>이 있었다. 올 1월말에 개봉한 <늑대의 후예들>은 개봉 첫주에만 100만명을 동원했고, 모두 700만명의 관객을 불러모으는 위력을 발휘했다. 그 뿐이 아니다. 미공개한 20분 분량을 추가한 디렉터스컷 재개봉 계획이 잡혀 있을 만큼, 개봉 7개월이 지난 지금까지도 <늑대의 후예들>을 향한 관심은 뜨겁다.

<늑대의 후예들>은 시대극의 옷을 입은 액션 블록버스터다.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의 변종으로 보이는 이 작품이 프랑스 관객들의 대대적인 환영을 받은 사실은 여러모로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제껏 <레옹> <제5원소> 등 뤽 베송의 작품으로 대표되는 프랑스 상업영화의 틀 안에는 프랑스적인 요소가 거의 없었다. 그의 영화는 지극히 할리우드적이기 때문에 성공했지만, 같은 이유로 지탄받기도 했다. 프랑스의 현실을 직시할 줄 알았던 영화 신동 마티유 카소비츠조차 자신이 할리우드 영화에 경도됐음을 숨기지 않았고, 개성이 증발된 할리우드 스타일의 블록버스터 <크림슨 리버>를 내놓았다. 크리스토프 강스의 <늑대의 후예들> 역시 할리우드 스타일을 견지하고 있지만, 이 영화는 프랑스의 역사와 전설을 소재로 택하고 있다. 비슷한 시도로, 뤽 베송의 <잔 다르크>가 있었지만, 영화적인 재미가 떨어져 뒷심을 발휘하지 못했던 예를 상기해 본다면, 다소 위험한 선택일 수도 있었다. 그러나 <늑대의 후예들>은 다소 구태의연한 시대극이라는 틀 안에서 최대치 그리고 최고치의 엔터테인먼트를 구사해내는데 힘을 쏟고 있다. 프랑스 블록버스터에 새로운 방향타를 제시한 셈이다.

<늑대의 후예들>은 한마디로 장르의 종합 선물이다. 혁명 전야의 광기로 혼란스럽던 18세기 후반 프랑스 남부에 출몰해 많은 사상자를 냈다는 정체 불명의 괴물에 관한 전설에는, 이미 시대극과 스릴러와 호러와 액션의 요소들이 혼재하고 있다. ‘괴물의 정체가 무엇인가’하는 의문을 풀어가는 과정이 플롯의 뼈대. 왕정에서 파견한 기사 프롱삭과 그의 인디언 친구 마니의 끈끈한 우정, 프롱삭과 갈등하는 마을 귀족 장의 여동생 마리안과의 사랑, 이태리 매춘부 실비아와의 은밀한 관계 등이 촘촘히 전개된다. 인디언과 집시의 문화, 토템 사상을 덧붙여, 다양한 문화의 혼성교배를 시도하기도 한다. <늑대의 후예들>을 이루는 요소들은, 낱낱이 떼어서 보면, 그다지 새로운 느낌이 없다. 미지의 살인마를 추적하라는 미션을 받고 낯선 곳으로 파견돼 오는 주인공의 모험담이라는 기본 얼개는 <슬리피 할로우>를, 현란한 액션 연출과 느린 화면으로 간간이 임팩트를 주는 촬영은 <매트릭스>를, 피와 살점이 튀는 잔혹하고 과도한 결투신은 <브레이브 하트>와 를 닮아 있다. 편집의 데이비드 우, 무술 지도의 필립 콱 등 오우삼 군단이 이 영화에서 배어나는 홍콩 누아르식 비장미의 막후 세력이다.

“미쳐버린 사람들은 야수로 변했다”는 노작가의 회고로 시작되고 마감되는 영화는 간간이 녹아드는 그의 내레이션과 함께 액자형으로 구성되고 있다. 과연 야수는 무엇이었을까. 늑대? 변종 괴물? 보이지 않는 공포가 더 크기 때문인지, 야수를 목격하는 순간 김이 빠지기는 하지만, 적어도 실체가 밝혀지기까지 ‘야수의 정체’에 대한 속임수는 꽤 정교하게 걸쳐져 있는 편이다. “야수가 있지도 않은데 속고 있는지도 모른다”는 의혹이 고개를 쳐드는 순간, 프롱삭(관객)을 야수와 대면시키는 식이다. 그러나 야수가 탄생한 배경을 잘 납득시키지 않은채 서둘러 막을 내렸다는 아쉬움을 거두기는 힘들다. 프랑스 혁명을 부추긴 복합적인 문제들을 ‘야수’로 상징하고 있는 것을 보면, 아직도 18세기는 프랑스 예술인들의 영원한 테마이자 트라우마로 남아있는 모양이다.

박은영 기자 cinepark@hani.co.kr

▶ 늑대의 후예들

▶ 출연배우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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