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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로가 아니라 솔직함에 관심이 있다”
2001-08-08

<노랑머리2> 감독 김유민 (1)

● 뜻밖에 <노랑머리2>는 흥행 부진을 면치 못하고 있다. 트랜스젠더 하리수의 에로틱 연기라는 든든한 간판과 50만의 관객을 모은 전편의 후광에도 불구하고 개봉 열흘 동안 서울관객 3만명에 못 미쳤다. 그러나 역시 뜻밖에 이 영화는 언론과 평단의 고른 호의을 얻고 있다. 찬사 일변도는 아니라도 성적 소수자의 비애를 거칠고 싱싱한 연기와 영리한 구성으로 뚝심있게 그려냈다는 게 중평.

1964년생인 김유민 감독은 1986년 당시 영진공 시나리오 공모에 당선됐고 2년 뒤 <아스팔트 위의 동키호테> 시나리오를 쓰면서 영화계에 입문했다. <채널 69> <> <맥주가 애인보다 좋은 일곱가지 이유> 등의 각본이 그의 작품이고, 이종원 주연의 <푸른 옷소매>(1991), 진희경 주연의 <커피 카피 코피>(1994) 등은 연출도 겸했다. 필모그래피만으로 보면 영화 이력 10여년 동안 작가로서도 감독으로서도 영광의 순간을 맞진 못했다. 자신의 영화사 픽션뱅크를 차리면서 저예산의 결론에 이르렀고, 제작과 감독을 겸한 <노랑머리>와 <노랑머리2>는 각기 다르지만 의미있는 성과를 남겨 김유민 감독은 뒤늦은 주목을 받고 있다.

+ 전편과는 양상이 반대다. 호의적인 평들이 많다.

= 전편은 9명이 비판했고, 1명이 편들어주는 정도였다. 그런데 <노랑머리2>에 대해선 좋은 점, 나쁜 점을 고루 지적해주는 분위기다. 나로선 이 정도라도 고맙다.

+ 인상에 남는 평이 있다면.

= 글쎄…. 아, <씨네21>에서 내 영화의 장르를 정해줘서 인상 깊었다. (웃음)

+ 양아치에로라고?

= (웃음) 맞다. 처음엔 양아치 운운해서 기분이 좀 나빴는데, 가만히 생각해보니 그것도 괜찮은 것 같다. 어차피 어떤 장르냐가 중요한 게 아니라, 그 장르로 무엇을 말하느냐가 더 중요하니까.

+ 흥행이 부진해서 실망이 크겠다.

= 한마디로 재난이다. 연일 내리는 장대비 같은 스코어다. 이런 영화야 어차피 대박이 될 건 아니고, 다음 영화 만들 수 있는 정도만 되기를 바라는데 이번엔 그것도 좀 힘들 것 같다.

+ 대신 비디오시장에선 환영받을 만한 요소가 있지 않은가.

= 비디오업계가 워낙 불황이라, 요즘엔 안정선이라는 게 없다. 두고봐야 될 일이지만, 잘돼야 손익분기점 맞추는 정도가 아닐까 싶다.

+ 흥행을 겨냥한 포인트가 없는 건 아닌데, 왜 안 됐다고 보나.

= 아무리 하리수가 화제의 스타라도, 사람들이 작아보이고 어두운 건 피하는 모양이다. 나도 <엽기적인 그녀> 봤는데, 유쾌하더라. 많이 웃었다. 나라도 그거 보지 <노랑머리2> 안 보겠다 싶었다. (웃음)

+ 어떤 평자들은 예상만큼 성애 표현이 노골적이지 않다고 말하는데, 이건 의도한 건가.

= 성적 소수자들을 놓고 오직 벗기는 쪽으로 나가는 건 내가 용납하기 힘들었다. 다만 트랜스젠더라는 캐릭터 자체가 너무 강해서 이번에는 연착륙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좀 부드러운 멜로의 관습 위에 올려놓은 것이다. 캐릭터가 튀기 때문에 배경을 다소 평면적으로 만든 것이다.

+ 속편을 만들겠다고 마음먹은 계기는. 혹시 1편에서 못다한 얘기가 있었나.

= 그건 아니다. 사실 이번의 컨셉은 디지털이었다. 사람들이 대부분 눈치를 못 채고 있는데, 이 영화는 전부 디지털 촬영이다. 내가 어차피 저예산영화를 찍는다면 디지털은 피해갈 수 없는 길이어서 한번 시도해본 거다. 그런데 <눈물>처럼 충무로 선수들이 시도해도 성공을 못했는데, 디지털을 간판으로 내세우는 건 우리 살림 규모에선 위험하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노랑머리2>를 만들면 좀 안전하겠다 싶었던 거다.

+ 디지털이란 건 눈치 못 챘고, 16mm를 블로업한 거라고 짐작하는 사람은 있었다.

= 좀더 잘했으면 전혀 몰랐을텐데, 중간에 포커스가 안 맞는 장면이 몇 군데 있어서 그럴 거다.

+ 지난번 인터뷰 때 흥행부담도 적고 표현도 자유로운 저예산영화가 체질에 맞다고 말했다. 그런데 이번처럼 흥행이 부진하면 그것도 자유롭지만은 않는 것 같다.

= 그렇다. 반지하방이 아늑하다고 생각했는데, 비가 새니 마음이 달라진다. (웃음) 감독으로서라면 몰라도 프로듀서로선, 할 수 있다면 큰 영화, 재미있는 영화를 시도하고 싶다. 그렇지만 감독으로선 난 큰 영화에 적합하지 않다고 여전히 생각한다. 야성이나 날것을 좋아하는 내 취향도 그렇고, 너무 크고 길게 가는 영화는 내가 지친다. 정신적 조루증 같은 게 있는 것 같다. 감독으로서의 나는 여전히 바퀴벌레처럼 뒷골목의 음습함 같은 데 끌린다.

+ 트랜스젠더 캐릭터는 어떻게 도입하게 됐나.

= 민간인이었던 하리수를 소개받으면서 착안한 거다. 한국영화엔 없던 캐릭터이고, 이 인물이 여성 버디영화의 한축을 맡는다면 새로운 느낌의 영화를 만들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 <노랑머리2>는 무엇보다 싱싱힌 연기가 돋보인다. 연기 연출의 원칙이 있다면.

= 스타에 얽매이지 않는다면 조연은 얼마든지 있다. 대학로에서 날고 기는 연극배우들이 많으니까. 문제는 주연인 하리수가 연기 경험이 없다는 것이었다. 결국 연기의 편차라는 게 풀기 어려운 과제가 된다. 내가 택한 건 평균율이었다. 연극배우들은 연기는 뛰어나지만 다소 과장하는 경향이 있다. 이걸 그대로 가면 주연과의 톤이 깨져버린다. 그래서 연극 출신 조연들의 연기는 숨죽이기를 해야 한다. 대신 주연의 연기는 미숙하니까, 우수어린 톤 한 가지로 가고, 이게 사실적으로 보이도록 주변을 그것에 맞추는 것이다. 대신 단역배우라도 자신이 등장하는 장면 안에선 주연으로 만들어줬다. 연기가 훌륭하다고 느껴진다면 아마 이런 방식이 유효했기 때문일 것이다.

+ 조연들의 연기력은 감탄스러웠다.

= 모두 대단한 잠재력을 가진 연기자들이었다. 다만 연기 지시를 할 때 상투적인 걸 피하도록 했다. 예컨대 편의점 주인에겐 교수의 이미지를 요청했고 형사에겐 악질 교사상을 부탁했다. 물로 다들 잘 소화해서 기뻤다.

+ R과 3류 매니저의 여관방장면은 즉흥연출 같다.

= 아, 그 장면은 정말 공을 들였다. 그거 본래 15분짜리였다. 남자 여자가 한방에 있을 때 할 수 있는 걸 솔직히 모두 보여주고 싶었다. 실제로 그렇게 찍었다. 그런데 찍어놓은 걸 보더니 주변에서 너무 심하다고 하더라. 지겹고 징그럽다는 거다. 그래서 할 수 없이 5분 정도로 줄였다. 아쉬웠다. 여하튼 난 에로가 아니라 솔직함에 관심이 있다.

▶ <노랑머리2> 감독 김유민 (1)

▶ <노랑머리2> 감독 김유민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