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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로가 아니라 솔직함에 관심이 있다”
2001-08-08

<노랑머리2> 감독 김유민 (2)

+ 하리수의 연기 연출은 쉽지 않았을 것 같다.

= 어려운 일이었다. 이번 영화를 하고 난 뒤 깨달은 건데, 트랜스젠더는 보통 여성들보다 몸짓이 더 여성적이다. 흐느적거린다고 느껴질 정도로. 첫 촬영하는데, 하리수 걸음걸이를 보고 식은땀이 났다. 그걸 얼마간 자연스럽게 만들고 나니까, 이번엔 발성이 문제였다. 역시 지나치게 여성적이었다. 성우를 쓸까도 생각했는데, 다행히 영화를 찍는 동안 하리수가 인터뷰를 많이 하면서 말투가 훨씬 자연스러워졌다. 그것만 빼면 이 친구는 성격도 좋고 촬영을 즐기는 편이어서 큰 문제가 없었다. 어떤 평에선 하리수 연기가 어색하다고 했는데, 너무 의식하고 보지만 않는다면, 그녀의 연기도 괜찮았다고 나는 생각한다.

+ 전편 얘기로 가보자. <노랑머리>는 어떻게 시작하게 됐나.

= 원작이 통신에 올려진 손정섭씨의 시나리오인데, 아무도 눈여겨보지 않았던 모양이다. 나는 그게 나온 지 3년쯤 지난 뒤에 보게 됐는데, 읽고 전율했다. 구성은 그저 그런데 유나라는 캐릭터가 홀딱 반할 정도로 매력적이었다. 밑바닥에서 방금 끌어올린 펄펄 뛰는 야성이 있었다. 이건 익혀먹을 이야기가 아니다, 비린내가 진동하게 날것 그대로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과적으로 화제를 일으키긴 했지만 내 최초의 의도와는 빗나갔다.

+ 어떻게 빗나갔나.

= 세 남녀가 서로 얽혀서 섹스를 벌이는 5분가량이 잘린 게 무엇보다 마음 아프다. 이 장면은 노골적이지만 아주 징그럽고 섬뜩하고 슬픈 톤으로 찍었다. 이게 있었으면 오히려 다른 정사장면의 톤도 따라왔을 텐데, 이 장면이 잘려나가니까 여타의 정사장면들이 맥락이 없어보이고 오히려 전체적으로 더 무분별하게 노골적인 느낌이 드는 거다. 흥행이 안 되면 다시 만들겠다는 생각도 있었다.

+ 전편과 속편이 모두 여성 버디무비다. 그것도 남성들에게 아주 공격적이고 도발적인 여성들이 주인공이다. 예사로운 선택은 아니다.

= 난 페미니스트는 아니고, 여성문제에 대한 관심도 별로 없다. 다만 난 남자다움을 혐오한다. 한국사회가 추구해 마지않는 남자다움이란 건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허세다. 입만 살아 있고 어떤 것도 이루지 못하면서 소수자들에겐 배타적인 허세. 싫지만 내게도 그런 요소가 있다. <노랑머리>의 시나리오에 끌린 것도 그 때문일 것이다. 전편과 속편에서 남자들은 특별히 나쁜 사람은 없지만 다 쪼다인데, 그게 내 모습이다.

+ 제작이 끝났는데 공개가 안 된 영화가 있다고 들었다.

= <동첩>이란 영화다. 방기환씨의 아주 짧은 소설이 원작인데, 너무 좋아서 영화로 만들고 싶었다. 어린 소녀가 해방 이후에 성장해나가면서 겪는 일들을 소재로 한 소품이다. 그런데 내가 보고 싶은 영화를 내가 만들면 망쳐놓을까봐 다른 감독을 물색해서 만들었다. 영화아카데미 8기 출신 김우진 감독이다. 썩 만족스런 결과는 아니지만 나름대로 미덕이 있다고 생각한다. 곧 공개할 예정이다.

+ <노랑머리3>를 만들 생각도 있나.

= 이제 그만해야지. 사실은 이번에 러시아를 무대로 3편을 할까 하는 생각을 얼핏 했었는데, 아내가 3편 하면 자기가 집 나가겠다고 하더라. 이산가족 되긴 싫다. (웃음)

+ 저예산영화의 최대 난관은 배급이다. 어떻게 해결했나.

= 갈팡질팡하다가 결국 우리가 직접 했다. 서울 20개관이 넘을 줄 알았는데 결국 14개관밖에 못 잡았다. 속이 많이 상했다. 메이저가 도저히 틈을 안 준다. 어떤 극장에선 손님 안 드는 메이저영화 하고 있는데도 우리 영화를 못 걸겠다고 하더라. 메이저 눈치가 보이니까 어쩔 수 없다면서. 내가 좋아서 하긴 하지만 이런 점 때문에 5억 영화가 50억 영화보다 더 위험한 시도가 돼간다.

+ 영화는 도발적인데, 제도에 시비를 거는 데는 별로 관심이 없는 것 같다.

= 시비 걸어서 흥행에라도 도움이 되면 해야겠지만, 사실 별 관심이 없다. 난 다만 청개구리 근성이 좀 있어서, 남 하는 거 따라하는 게 재미없다. 솔직히 말하면 감독 노릇에 큰 사명감이나 유별난 애착이 없다. 그냥 시나리오 작가로 불리면 편하겠다. 어떡하다보니 이렇게 흘러오긴 했지만.

+ 언론에서 B급영화 감독이라고 칭한다면 어떻게 받아들이나.

= 아이구, B급이라면 대만족이다. C급 아닌 게 어딘가. (웃음) 내 조카는 자기 삼촌이 감독이라고 말하는데 뭐 만들었는지 물으면 대답을 안 한다고 하더라. 내가 A급을 자임한다면 그건 나를 속이는 거다. B급이 편하다. 잃을 게 없으니 얼마나 자유로운가.

글 허문영 기자moon8@hani.co.kr·사진 정진환 기자jungjh@hani.co.kr

▶ <노랑머리2> 감독 김유민 (1)

▶ <노랑머리2> 감독 김유민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