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Skip to contents]
HOME > Culture > Enjoy TV > 드라마 칼럼
[드라마 칼럼] 공감가는 시트콤이란?

<사랑도 리필이 되나요?>의 이소라

아직까지도 <순풍 산부인과>를 만나면 나의 케이블 TV 채널 순회는 중단된다. 순풍의 매력이란 세월이 지나도 거부할 수 없는 것이어서 이를 능가하는 시트콤을 만든다는 게 힘들긴 하겠다 싶다. 무섭고 웃겼던 프란체스카도 시즌을 달리하면서 바뀐 등장인물들이 예전 같지 않아 시들해질 즈음, 캐릭터들에 생기가 돋고 제법 그럴듯한 시추에이션이 만들어지고 있는 시트콤을 발견했다.

<사랑도 리필이 되나요>(이하 리필)라는 제목의, refill인지 refeel인지 사람 헷갈리게 만드는 게 홍보 전략의 전부인 드라마다. 시트콤이란 다른 건 몰라도, 누구나 한 두가지 쯤은 갖고 있을 법한 독특한 캐릭터들의 너무 요란스럽지 않은 표출이요, 누구나 만날 수 있는 시추에이션에서 누구나 그럴 수 있는 액션들을 독특하게 엮어내는 데 그 묘미가 있을게다. 평범함 속에서도 빛나는 독특함과 독특함 속에서도 풍기는 사람 냄새를 드러내는 것이 관건이겠단 말이다. 그런 점에서 리필의 이소라는 참으로 반가운 인물이어서 단번에 감정이입이 돼버리고 만다. 타로를 좋아하고 UFO 동호회 회원이면서 갤러리 여사장님의 여유만만 생활을 누리는 그녀를 보고 있노라면, 공상이 유일한 취미여서 사랑에 리필 따위는 절대 안되는(그러면서도 절대 지치지 않고 운명적 사랑을 갈구하는) 사랑스러운 친구가 생각나기까지 한다.

특히 오랜만에 만난 남자 동창생과의 공식적인 데이트를 허무맹랑하게 끝내고 마는 장면은 이소라가 아니면 소화해내기 힘든 장면이었다. “오늘 무슨 영화 볼까?”(여) “난 액션 영화 좋아해. 넌?”(남) “난 피 흘리고 때리는 거 싫어하는데...”(여) 결국 여자가 보고 싶어 하는 ‘감동적인 영화’를 선택한다. 눈물을 흘리며 영화에 몰두하던 여자, 옆자리의 남자가 궁금해진다. 잔다, 그것도 너무 곤하게. “어쩜, 이렇게 감동적인 영화를 보면서 졸 수 있는 것이냐. 정말 실망이야.” 실망이 그 정도였으면 좋으련만, 밍크 입고 온 손님만 보면 밍크가 불쌍해지는 소라 앞에서 이 남자는 여우털로 된 열쇠고리를 들이민다. “이거 진짜에요.” 진짜라고 그리 확신하는 거 보면 니가 손수 잡은 것이냐고 묻고 싶은 표정의 소라, “어떻게 진짜 여우털을 달고 다닐 수가 있는 거니? 실망이야, 실망!”을 연발할 수밖에. 소라의 “사람에게 실망하는 작은 이유”를 타박하는 친구 진주(변정수)는 결국 감동 영화를 보고 콜콜 자는 그 남자를 따라 자기도 별로 좋아하지 않은 액션영화를 본다. 소라가 그 남자를 좋아하지 못하는 큰 이유가 진주에게는 사랑을 시작하기에 전혀 걸리적거리지 않을 만큼 사소한 것이다. 그렇다면 진주에게 “사랑도 리필이 되나요?” 라는 질문은 “취향도 리필이 되나요” 쯤으로 해석할 수 있겠다. 대답은 당연히 예스고.

이누야샤

한 여자는 성격도 취향도 자기와는 딴판인 남자를 두고 “우리 인연은 여기까지인가봐”라고 말하고, 한 여자는 그 사람은 좋아하고 자기는 싫어하는 영화를 보며 “내가 그 사람을 많이 좋아하나봐”라고 말한다. 인연을 시작할 것이냐 말 것이냐에서 호불호(好不好)가 중요한 기준이 되는 소라와, 인연이란 취향까지도 넘어설 수 있는 거라고 믿는 진주 둘 다에게 사랑이 리필 되면 좋겠다. 그렇지만, 여자들의 취향이란 게 남자의 외모와 경제력에만 국한되지 않는다는 걸 보여주기 위해서는 아니지만 어쨌든 UFO를 기다리는 소라에게, 더 많은 사랑이 리필되었으면 좋겠다. 더불어 이누야샤(투니버스에서 방영 중인 인기 애니메이션의 주인공)를 사랑하는 자기를 이해해줄 지구 남자란 없다고 우기면서도, 지치지 않고 이누야샤 같은 남자를 찾는 평범한 내 친구에게도 말이다.

관련영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