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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풍>이 왔다! [3] - 배우 장동건

배우 장동건을 중심으로 살펴본 <태풍>

사나이로 태어나서…

알다시피, 장동건은 대한민국 대표미남에서 대한민국 대표배우로 성장해왔다. 그에게 배우되기란 남자되기의 다름이 아니었다. 1998년 <연풍연가>를 끝으로 꽃미남 시절은 끝났다. 20세기를 전후해서 연풍에서 태풍으로, 그의 이미지는 바뀌었다. 그가 배우로 거듭나기 시작한 <인정사정 볼 것 없다>(1999) 이후로, 그는 한국 현대사의 혹독한 시련을 남성의 육체로 지독하게 겪어냈다. <아나키스트>(2000)에서 일제시대 허무주의 무정부주의자, <태극기 휘날리며>(2003)에서 남북을 넘나든 전쟁의 희생자, <태풍>(2005)에서 남북에 모두 버림받은 탈북자를 연기했다. 그 사이 만화주인공처럼 늘어뜨린 그의 앞머리가 사라졌다. 대신 얼굴에 군인의 검정칠이 그려졌고(<태극기…> <해안선>), 해적의 칼자국이 새겨졌다(<태풍>). 그리하여 지금, 장동건은 한국에서 가장 터프한 배우다. 장동건이 스스로 <태풍>의 씬 역을 “<친구> <해안선> <태극기…>로 이어지는 거칠고 비극적인 남성 연기의 결정판”이라고 이야기하듯이.

꽃미남 대표에서 마초 대표로

<인정사정…> 이후로 장동건은 극 중에서 총칼을 들지 않은 적이 없다. 장동건은 칼침을 놓거나 칼침을 맞았다. 아니 죽이고 죽었다. <아나키스트> <친구> <태극기…> <태풍>은 모두 장동건의 죽음으로 마무리됐다. 그는 그렇게 비극적인 현대사의 비극적인 최후를 대표하는 남자배우가 됐다. 앞서 언급한 영화들은 청년 장동건의 성장과 겹친다. 그는 <인정사정…>에서 예전의 꽃미남 이미지와 맥이 닿아 잇는 모범생 이미지의 신참형사로 남성 세계로 진입했다. <인정사정…>의 동석은 실수로 용의자를 죽이고 괴로워하는 연약한 동생이었다. 그의 형 구실은 닳고닳은 형사 영구(박중훈)가 했다. <인정사정…>의 보살핌 받는 동생은 <친구>에서 배신하고 배신당하는 (수평적 관계의) 친구로 진화했다. 그리고 <태극기…>에서는 동생을 보호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형으로 성장했다. 마침내 <태풍>에서 가족의 원한을 대신해서 갚는 가족의 대리자로 나타났다. 동생에서 형이 되는 과정은, 악역에 가까워지는 과정이기도 했다. 이처럼 그의 남성은 갈수록 독립적이고, 점점 터프해졌다.

장동건의 캐릭터들은 갈수록 국가권력의 반대편으로 움직였다. <인정사정…>에서는 형사였지만, <해안선>에서는 반공이데올로기를 광기로 내면화한 군인으로 바뀌었다가, <태극기…>에서는 국방군과 인민군을 오가는 비운의 남성을 연기했다. 그리고 <태풍>에서는 아예 남북 모두에서 버림받는 탈북자로, 국가권력의 대척지점에 섰다. 이처럼 그의 비극은 (<친구>를 제외하면) 국가권력으로부터 비롯됐다. 그리고 국가의 횡포는 가족의 위기로 닥쳤다. 그는 국가가 초래한 위기 속에서, 동생을 지키기 위해서 고군분투하고(<태극기…>), 가족의 복수를 대신하는 절치부심하는 사나이(<태풍>)로 변신했다. 가족을 돌보는 사이, 그의 연애담은 지워졌다. 이제 장동건에게는 로맨스가 없다. 장동건은 <인정사정…> 이후의 영화에서 절절한 연애를 한 적이 없다. 사실 오래전부터 그는 무성적 존재처럼 보인다. 장동건은 <인정사정…> 이전에 당대의 최고 여배우과 멜로영화를 찍었다. 김희선과 <패자부활전>, 고소영과 <연풍연가>를 찍었다. 하지만 장동건은 이런 멜로영화에서도 사랑에 무덤덤하거나 연애에 소극적인 남자였다. 심지어 그는 <연풍연가>에서도 고소영을 사랑하기보다 고소영의 사랑을 받는 역할에 가까웠다. 이처럼 장동건의 지상의 것이 아닌 듯한 아름다움은 그에게 무성적 이미지를 심어왔다. 이런 경향은 <해안선> <태극기…> <태풍>을 거치면서 노골화됐다. 이제 그에게는 애인보다는 가족이, 애정보다는 우정이 중요해 보인다. 그렇게 장동건이 가진 애정의 공백엔 국가의 이미지가 새겨졌다.

고마해라, 마이 무따 아이가

장동건은 한국형 대작의 경향을 대표하는 배우로 성장했다. 장동건의 매력은 (특히 블록버스터 남성영화에서) 이미지의 충돌에서 나왔다. 그가 가진 반듯한 (혹은 연약한) 이미지에도 ‘불구하고’, 외부의 시련에 맞서면서 거친 남성이 돼가는 장동건을 보면서, 관객은 그 과정의 충돌에서 애처러움의 공감대를 느꼈다. <친구>에서 열등감은 배신을 낳았고, <태극기…>에서 반듯한 형에서 거친 군인으로 돌변했다. 하지만 <태풍>의 ‘씬’에게는 남성적 결핍이 결핍돼 있다. 씬은 타고난 사나이처럼 보인다. 장동건은 얼굴에 <태극기…>와 <해안선>에서 칠했던 검정칠보다 ‘센’ 칼자국을 새기고 복수를 향해 돌진한다. 하지만 이미지의 충돌은 일어나지 않고, 드라마의 감동은 약해진다. 이제는 익숙해진 장동건의 남성 캐릭터를 보면서, 유명한 한마디가 떠오른다. “고마해라. 마이 무따 아이가.” 그에게는 아직 발견해야 할 이미지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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