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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토피아 디스토피아] 황우석과 그 적들

“젓가락 기술이 빼어나서라고? 전혀…. 사실 황우석 교수팀이 성공했던 건 난자의 충분한 공급 때문이야. 미국이라고 기술이 떨어지겠어? 걔들 윤리규정이 엄격해서 제대로 실험을 진척시키지 못해서 그렇지. 결코 젓가락 기술 같은 게 뛰어나서가 아니야.”

MBC PD수첩 사건이 벌어지기 5개월 전쯤 한 대학교수로부터 그런 이야기를 들었다. 황 교수의 경쟁력을 분석하면서 그 강점으로 한국에서 사실상 생명공학에 대한 윤리규정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았다는 점, 따라서 난자의 공급에 문제가 없었다는 점을 강력하게 시사하는 관점을 엿볼 수 있었다.

그 얼마 뒤 또 다른 지인으로부터 들은 평가는 이와 다르지만 기조는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사실 그 정도는 별것 아니에요. 누구든지 시간이 지나면 할 수 있는 거예요. 오히려 문제는 그 이후 사람의 난치병에 적용하는 기술이지요. 그 분야에서는 좀 그렇지 않나요, 그 팀이?”

그 업적이랄까 평가를 우리 일반시민들이 생각하는 것과 달리 대단히 낮게, 짜게 매기는 분위기였다.

PD수첩이 한창 황 교수 연구업적의 진위에 대해 강력한 암시와 함께 공격을 퍼붓고 있을 즈음 미국의 한 교수는 이렇게 말했다. “이번 논쟁을 계기로 서구의 생명공학 연구자들은 사실상 황우석 교수의 몰락을 바라고 있다”고…. 몰락? 그렇다. 그는 정확하게 ‘몰락’이라는 표현을 쓰고 있었다.

불행하지만 그게 진실이고 현실이다. 대다수 한국인들이 황우석 교수에 대해 열광하고 있을 때 정작 그의 업적과 가능성을 시기하고 질시하는 이들은 세상 어디에서나 존재하며 활동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 이들이 한국에 있건 미국에 있건 유럽에 있건 이른바 ‘진검승부’를 원한다면 좋다. 그런 승부를 벌이는 것은 정당하고 건전한 일이다. 그런 경쟁을 통해서 학문이, 과학이, 문명이 발전해오지 않았는가?

문제는 그런 방식이 아닌 다른 방식, 다른 지점에 있다. 어쩌면 인간의 본성과 관련된 문제라고도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그만큼 어렵고 복잡하며 심지어 파괴적이기까지 한…. 정확하지 않지만 이런 분위기는 몇가지 특징적인 양상을 보이고 있다. 먼저 그의 업적에 대해 비판적인 기조가 이른바 전통적인 엘리트들로부터 흘러나오고 있다는 것이다. 미국의 아이비리그나 유럽의 명문대학 출신 가운데 그에 대해 비판적인 견해가 적지 않다. 비판적 분위기의 또 다른 창구는 의과대학쪽이다. 황우석 교수가 순수 국내파로, 의학 아닌 수의학을 전공했다는 사실이 이런 반작용을 일으켜 미묘한 비학문적 기류를 형성시키는 데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해석하면 지나칠까?

세상의 역사가 정확하게 보여주듯 보다 심각한 문제는 늘 내부로부터 나온다. 내부의 적이 가장 무섭고 끔찍한 것이다. 아직 이번 사건이 어디서부터 시작됐는지, 그 진원지가 된 사람이 누구인지 불명확한 점이 많기는 하다. 그러나 내부의 제보자가 존재해야만 가능했다는 것은 누구나 쉽게 추론할 수 있다. 이 점과 관련해 놓치지 말아야 할 2가지가 있다. 하나는 이제 황우석팀은 보다 정교한 시스템 플레이의 단계로 질적 전환을 이룩해야 한다는 것이다. 특허기술과 그 보유자 및 공유자에 대한 정확한 관리라든가 이익의 합리적 분배 등 이른바 서구적 시스템을 도입할 때가 됐다는 것이다. 특허권의 설정과 분배, 철저한 기술보안규정의 확립과 강력한 실시, 추후 연구성과와 연동된 스톡옵션의 도입 등 갖춰야 할 점이 많다. 동양적이랄까 한국적 정서에 바탕해 연구원이 자발적으로 난자를 제공하는 방식 같은 것으로는 더이상 조직을 유지, 발전하기 힘든 상황으로 이미 밀려들어가 버렸다.

또 하나는 연구팀이 이제 ‘천재’ 아닌 ‘시스템’으로 진화돼야 한다는 것이다. 이번 사태를 통해 황 교수의 건강상태 하나조차 전체 연구의 운명에 너무나도 심대한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 확인되는 판이다. 이순신이 죽고 얼마 뒤 사실상 거북선의 맥은 끊겨 버리고, 장보고가 내부자에게 암살당한 뒤 청해진이 그대로 몰락한 역사가 멀리 있는 것만은 아니다. 황우석 교수는 이제 전선의 맨 앞에 나서서 싸우는 장수가 아니라 그 연구팀의 지도자이자 연구자로 새롭게 자리매김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스스로가 스스로의 ‘적’이 될지도 모른다.

마지막으로 국가가 할 일이 있다. 제2, 제3의 황우석팀을 자꾸 만들어내야 한다는 것이다. 모든 연구자들이 한곳만 선망의 눈으로 바라보도록 해서는 안 된다. 그렇지 않으면 앞서가는 팀을 비판하고 끌어내리려는 분위기는 언제든 재연될 수 있다. 항상 주성은 외성과의 협력과 조응 속에서 훨씬 효율적으로 방어되는 법이다.

일러스트레이션 김순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