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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한국영화 결산 좌담 [3]

올해 가장 불행한 영화, 정지우의 <사랑니>

정성일 : <그때 그 사람들>이 그나마 인구에 회자되었다면, 올해 가장 불행한 영화는 정지우의 <사랑니>다.

허문영 : 올해 홍상수와 김기덕이 여전히 자기 길을 걷고 있음을 보여줬다면 정지우는 데뷔작 이후 6년 만에 첫 영화의 경지를 완전히 뛰어넘는 새로움을 보여줬다. 올해의 또 다른 발견이라고 생각한다. 어떤 특정한 스타일이나 장르성에 기대지 않고 순전히 인물과 이야기가 요구하는 공간과 톤, 움직임을 만들어냈다는 점에서 그가 비로소 작가적 자질을 지닌 감독임을 입증한 작품이라고 본다.

<사랑니>

김소영 : 생각할수록 까다롭고 치밀하게 계산된 형식의 영화다. 의문은 이것이 누구의 판타지도 아니라는 데 있다. 특정의 누구에게 겨냥되지 않은 판타지를 최대한의 형식으로 구성해낸 재능은 놀라우나 궁극적으로 누구에게 뭘 말하려고 하는가 하는 의문이 남는다. 서른살 인영의 캐릭터는 학원 강사로 요즘 사회적으로 중요한 의미를 지닌 비정규직, 불완전 고용인데 그가 열일곱 남자를 욕망하는 게 무슨 의미인지 잘 안 잡힌다. 판타지의 애매함, 구분할 수 없음을 얘기하려고 했던 것 같기도 하고. 영화의 형식도 연기도 기막힐 정도로 대단했지만 어느 한순간 들어갈 수 있는 데가 없었다. 김정은의 연기는 대단했다. 마치 노련한 프랑스 여배우의 연기를 보는 것 같았다.

정성일 : 이자벨 위페르? (일동 웃으며 동의) 보면서 기이하게 <러브레터>와 <베로니카의 이중생활> 두편의 영화가 함께 떠올랐는데 <사랑니>에선 환상과 실재가 이상한 방식으로 중첩된다. 플래시백인 줄 알았더니 동시에 진행된다. 두 시점이 한데 만나는 순간을 보여줄 때, 트릭의 영화구나 하고 실망스러웠는데 그 다음 두명의 이석이 마주하는 순간, 이건 필연적 구조였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마지막 신은 결국 트릭이 트릭을 불러오며 전체적으로 트릭에 자기가 말려든 게 아닌가 싶었다.

허문영 : <사랑니>에는 밀도가 다른 두 시간대가 있는데 감독 스스로도 인지하고 있지만 인영의 시간대의 무게에 비해 어린 인영의 시간대는 왜소화됐다. 그런 문제점이 있지만 개별 장면들을 찍어낼 때 요즘 남용되는 무협영화적인 아름다움, 리듬감을 이 영화만큼 강하게 느끼게 해준 게 별로 없다. <극장전> 정도다. 한 프레임 안에서 인물이 어떻게 움직여야 아름다울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김소영 : 인영이 뭔가 다른 걸 욕망했다면 형식과 연기가 다른 걸 보여주지 않았을까.

정성일 : 서른살 인영의 마지막 선택과 관련해 그것을 단지 사랑이라는 알레고리로 바꿔쳐서 영화가 형식으로만 끝난 것 같다.

허문영 : 선택을 보여주려는 영화는 아닌 것 같다. 이미 첫 장면부터 인영은 이석에게 매혹돼 있었고 영화는 그 감정의 구조를, 혹은 감정의 추상화된 무늬를 보여준다.

김소영 : <달콤한 인생>에서 이병헌이 신민아를 욕망하는 시선은 가능한 코드인데 여기서 인영이 이석을 바라볼 때 그게 뭔지 진짜 잘 모르겠다. 미국에선 30대 여자와 10대 제자와의 사랑이 뉴스로 터지곤 하는데 우리나라에선 욕망의 영역이 아니어서 그런 걸 만들어낸 걸까. 여성주의적 영화인데 왜 굳이 열일곱살 남자여야 했는지 영화 안에서도 잘 설명이 안 되고. 이해가능한 감정의 자원이 있어야 한다.

올해 가장 실망스런 귀환, 이명세의 <형사 duelist>

정성일 : <사랑니>는 우리가 길게 얘기할수록 영화의 이야기하는 능력에 대한 토론을 진전시킬 수 있는 텍스트다. 반면 <형사 duelist>는 이야기 능력의 상실을 보여준다. 6년 만에 돌아온 이명세의 <형사 duelist>는 올해 본 귀환 중 가장 실망스런 귀환이었다.

김소영 : “액션영화인 줄 알고 보러 갔더니 뮤직비디오더라”라는 신윤동욱씨의 평에 공감한다. 아무리 포스트 모던 액션이라도 기본적인 게임의 규칙이 있다. 단검이 상대 어깨를 스치면 더 겨룰 필요가 없는 것인데 그러고도 몇 십분을 더 가니까 매우 지루했다. 이 영화가 ‘시네마틱하다’는 말을 들었는데, 나는 색감 선택부터 미장센까지 조야하다고 느꼈다.

정성일 : <첫사랑> 이후 이명세 감독은 계속 나빠지고 있는 느낌이다. <인정사정 볼 것 없다>는 이명세가 뭔가 새로운 영화를 만들어내기 위해 시행착오를 한, 자신만을 위한 실험영화라는 느낌이었다. 그런데 돌아온 이명세는 심지어 <인정사정 볼 것 없다>를 반복하고 심지어 남순의 캐릭터조차 우 형사와 똑같은 여장남자에 가까웠다. <형사 duelist>에서 ‘시네마틱(영화적인 것)’을 말하는 건 담론의 미학적 자포자기 같다. 번쩍번쩍하며 나를 눈멀게 만드는 것에 매달리면서, 보는 것을 사유하고 개념을 끌어내고 성찰하는 과정은 완전히 생략되는 것이다. 흔히들 거론한 무성영화, 활동사진적인 영화적 흥분은 그런 것이 아니다. 여기에 영화담론이 찬사를 보낸다는 것은 한편으로는 한국영화의 이야기 능력 부재가, 보는 능력의 부재와 일정한 지점에서 만나고 있는 게 아닌가라는 혐의를 일으켰다.

<형사 duelist>

허문영 : 사실 이명세는 불운했던 감독이다. <개그맨>이 완전히 외면당함으로써 불행한 초기를 보내다가 90년대 영화광에게 열렬한 지지를 얻고 여전히 큰 기대를 모았는데 <형사 duelist>는 실망스런 영화였다. 이명세의 초기작들이 갖고 있는 어떤 아름다움, 음악성과 <형사 duelist>의 그것은 좀 다른 측면이 있다. <첫사랑>이 지닌 인물 동선의 아름다움이 <형사 duelist>에서는 속도감과 빠른 편집으로 대체됐을 뿐 사라졌다. 두 주연이 칼을 휘두르고 움직일 때 그 동선들은 어떤 감흥을 전해주지 못했다. 90년대 중반 이후 뮤직비디오 홍수 속에서 영화가 동작의 아름다움을 보여주려면 이전과는 다른 차원의 움직임을 만들어야 하는데, 그 새로운 차원에 이르는데 <형사 duelist>는 실패한 게 아닌가 싶다. 이야기의 무능력 문제는 감독 스스로도 관심을 두지 않았다고 선언했고, 개별 프레임 안에서의 동선의 아름다움이 지속됐다면 문제되지 않았을 측면이다. 그러나 <형사 duelist>는 뮤직비디오, CF와 또 다른, 모션 픽처 본연의 움직임을 창안하는 데 실패했을 뿐 아니라 오히려 그들의 움직임을 모방했다.

김소영 : 이야기에 관해서는 사실 조셉 폰 스턴버그 감독이 이명세 감독과 비슷한 말을 했다. “내 영화는 거꾸로 돌려도 마찬가지다”라고. 그러나 폰 스턴버그에게 중요한 것은 대신 ‘데드 스페이스’(Dead Space)를 없애는 거였다. 그는 한 시퀀스에서 이야기는 흐르지 않아도 공간을 가득 채운 기호적인 의미가 통역돼 나오는 영화를 만들었다. 그러나 <형사 duelist>는 그런 긴장이 없는 ‘콜라주‘다. 소품 등 시각적 요소가 이야기를 멈추고 꼼꼼히 들여다볼 것이 없다.

정성일 : 나는 이야기가 중요하지 않다고 감독이 말하는 순간, 이미 그것은 영화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영화는 숏과 숏이 붙는 순간 이미 이야기다. 사진이 아니니까. 그러나 <형사 duelist>에서는 에디팅이 있을 뿐 몽타주를 보지 못했다. 나는 반문하고 싶다. 거기 이야기가 없다면 타르코스프스키의 <노스탤지어>에서 촛불 들고 가는 장면이 왜 중요하겠는가?

올해의 발견 <용서받지 못한 자> <러브토크>

정성일 : 올해의 발견을 이야기해보자.

김소영 : 일단 저예산 독립장편극영화의 스타들이 등장하는 주기가 점점 짧아지고 있는 징후를 느낀다. 이윤기 감독도 그래서 이미 오래된 감독처럼 느껴진다.

<용서받지 못한 자>

<러브 토크>

허문영 : 이윤기 감독에 대해서는 <러브 토크>가 <여자, 정혜>보다 진전한 영화라는 생각을 갖고 있다. <여자, 정혜>는 결말부에 어린 시절의 상처를 보여줌으로써 영화가 지닌 풍부한 의미가 위축되는 느낌을 받았는데 <러브 토크>는 강한 인과관계를 설정하는 게 아니라 인물들의 모임과 흩어짐에 초점을 맞춰 개별 프레임 안에서 이윤기라는 새로운 감독이 얼마나 높은 긴장을 만들어낼 수 있는지 연출력을 증명했다. 앞으로도 좋은 영화를 만들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용서받지 못한자>의 윤종빈 감독은 기술적인 어떤 몇몇 결함에도 불구하고 군대의 민속지에 그치지 않고 한국 근대사에 대한 중대한 알레고리를 호소력 높은 이야기로 제시했다는 점에서 이야기꾼으로서 뛰어난 자질을 보여줬다.

정성일 : <용서받지 못한 자>가 보여주는 긴급성, 호소하는 바에는 동의할 수 있으나 영화적 미덕은 발견하지 못했다. 만약 이 작품이 선댄스나 칸의 관심을 받는다 해도 마찬가지다. 한국에 대한 풍속화로서는 흥미로울지라도, 미학적 쇼크가 있다고 여겨지지는 않는다. 이 영화의 가장 큰 힘은 윤종빈이라는 연출자가 군에서 제대한 지 얼마 안 되어 생생한 자기체험을 DV라는 매체를 통해 표현할 수 있었다는 점에 있다. 좀 이상한 비유지만 프랑코 모레티가 “괴테는 유감스럽게 적절한 표현매체를 만나지 못했다. <파우스트>를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는 매체는 라디오다”라고 말했을 때 많은 생각을 했다. <용서받지 못한 자>와 (상영시간이 3시간인) <좋은 배우>가 보여준 건 DV라는 매체가, 가능한 소재, 가능한 길이, 매체를 다룰 수 있는 나이를 바꾸어놓았다는 것이다. 독립영화가 필름으로만 찍던 시절에는 세 시간짜리 영화도 불가능했고 막 제대한 사람이 영화를 찍는 것도 불가능했다. 흔히 하는 말로 여자들이 제일 싫어하는 얘기의 3위가 축구 이야기, 2위가 군대 이야기, 1위가 군대에서 축구한 이야기라고 하지 않나. 바꿔 말해 관객의 절반 이상인 여성들이 싫어하는 군대 얘기가 상업영화의 소재로 채택되긴 어려웠을 것이다. 또, 감독들이 막상 뜻대로 영화를 만들 수 있는 경력이 됐을 무렵엔 군대 경험은 이미 망각의 회로에 들어가기 쉽다. 그런데 DV의 힘으로 26살에 대학 졸업작품으로 생생한 군대 이야기를 영화로 만들어지는 모습을 보여준 것이 우리 시대의 가능성이라고 말해야 할 것 같다.

허문영 : 그러나 <용서받지 못한 자>의 이야기가 가진 잠재력과 가치는 좀더 깊이 논의될 필요가 있다. 이 이야기는 스트레이트한 미스터리가 분명 아니다. 이상한 멈칫거리는 숏들이 끼어들고 그들이 이야기를 지체시키면서 불러오는 환기효과가 크다. <용서받지 못한 자>는 보통 군대에 대한 생생한 증언, 민족지적 가치로 많이 얘기되지만 나는 이 영화가 좀더 큰 알레고리를 제공한다고 본다.

정성일 : 물론 휴가를 나와 군대를 플래시백 형식을 빌려 떨어뜨려놓고, 기억과 경험의 정치학을 통해 말하는 것이 보인다. 첫째 군대 장면과 여관 장면이 다른 사람이 찍은 것처럼 다른데, 여관 장면은 홍상수나 장선우 영화에서 봤던 신이다. 군대 장면은 공간 분할이 다른 사람이 찍은 듯 서툴러 보인다. 그것을 극복한 건 인물의 생생함이다. 윤종빈은 장르적 구조를 집어넣고 생생한 체험을 반성적으로 성찰하도록 거리를 떼어놓는 작업에서 재능을 보였다. 그러나 시나리오 구조를 떠나 영화 속 형상으로 만드는 데에는 미숙했다고 본다. 그래서 다소 폄하처럼 들릴지 몰라도 이 영화를 ‘올해의 걸작’처럼 말하는 것은 과장된 평가 같다.

허문영 : 과대평가나 과잉평가에 대한 문제는 이 영화 하나의 문제만은 아니다. 지나치게 많은 그다지 좋지 않은 영화에 너무 많은 훌륭한 수사들이 뒤따르는 것이 현실이다. 그 점에 있어서 <용서받지 못한 자>가 상대적으로 더 혜택을 누린다고 보긴 힘들다.

정성일 : 독립영화, 대학 졸업작품 혹은 단편들이 지나치게 보호되고 있지 않은지 이제는 질문을 제기해야 할 것 같다. 이를테면 <씨네21>에 실린 별점을 보고 있노라면 두편의 영화에 과연 동일한 기준으로 별점을 주는지 의아할 때가 있는데 <용서받지 못한 자>는 별 넷, 아키 카우리스마키의 <과거가 없는 남자>는 별 셋을 받기도 했다. 그럼 <용서받지 못한 자>가 <과거가 없는 남자>보다 1/4만큼 더 위대한 영화인지 묻고 싶다. 물론 열악하고 보호받아야 할 지점에 놓여 있긴 하지만, 그것이 전도돼 미학적 우월성으로, 정치적 전술적 우월성으로 뒤집혀 얘기되는 과장법은 지금 위험한 수위에 와 있는 게 아닌가 싶다.

허문영 : 그러고보면 <스파이더>도 그렇고, 올해 묻혀 지나간 외화가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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