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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딱하게 보기] 우리 사회의 병, <한국의 연쇄살인>

<한국의 연쇄살인>은 부제가 말하듯 한국에 존재했던 ‘희대의 살인마에 대한 범죄수사와 심리분석’에 대한 책이다. 연쇄살인에 대한 개념 정리와 연쇄살인마의 분석부터 시작하여 한국의 연쇄살인사를 훑어낸다. 김대두, 온보현, 유영철 등 유명한 연쇄살인마들과 여전히 미제사건인 부산의 어린이 연쇄살인과 화성의 연쇄살인사건도 분석한다. 저자는 연쇄살인이 단지 ‘선진국병’이 아니라 ‘아시아에서도 싱가포르나 일본, 홍콩보다는 우리나라와 중국이 심’한 현상이라고도 말한다. 다른 말로 하자면 ‘연쇄살인은 그 사회가 안고 있는 병리 현상’이라는 것이다.

현실에서는 <양들의 침묵>의 한니발 렉터 같은 살인마를 찾아보기 힘들다. 의사나 간호사가 연쇄살인을 저지른 경우는 있지만, 고도의 지능과 사회적 지위를 겸비한 천재가 살인마로 잡힌 경우는 거의 없다. 물론 다른 주장도 가능하다. 잭 더 리퍼의 정체가 영국의 왕족이었기에 잡히지 않았다는 가설 같은 것 말이다. 하지만 픽션과 사실은 다른 법이다. 픽션은 가능한 것, 혹은 가능하지 않더라도 흥미로운 요소를 과장하여 다루지만, 논픽션은 지금 밝혀진 것, 존재하는 것만을 다룬다. <한국의 연쇄살인>에 나오는 한국의 살인마들은 대체로 저학력에 불우한 환경에서 자라난 사회부적응자였다.

<한국의 연쇄살인>을 보다보니, <망량의 상자>의 한 구절이 떠올랐다. “세상 사람들은 특수한 환경 속에서만, 특수한 정신상태 속에서만 그 무도한 행위를 저지를 수 있다고, 어떻게 해서라도 생각하고 싶은 거네. 다시 말해 범죄를 자신들의 일상에서 분리하고, 범죄자를 비일상의 세계로 내쫓아버리고 싶은 거지. 그렇게 함으로써 자신들은 범죄와는 인연이 없다는 것을 암암리에 증명하고 있을 뿐일세… 범죄자는 평균에서 일탈한 자로 파악되지만, 평균이란 괴물은 존재하지 않”는다. 범죄자들은, 우리와는 전혀 다른 세계에 존재하는 한니발 렉터 같은 초인이 아니다. 우리 일상에 존재하는 이웃들이다. 단순히 환경론도 아니고, 선천적인 요인만도 아닌 그 무엇이 보통 사람으로 살아갈 수 있는 그들을, 범죄자로 만든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일종의 사회적 병인 것이다. 끊임없이 백신을 만들어내고, 치료약을 찾아야만 하는.

그렇다면 그들에게 가장 결여된 것은 무엇일까? 연쇄살인범 정두영은 행복한 가정을 꾸리기 위한 돈을 모으기 위해 범행을 저질렀다. 그는 보통 사람들과 똑같은 이상을 실현하기 위해, 가장 극악한 방법을 택했다. 자신의 행복만큼, 타인의 행복을 생각할 수 있었다면 그런 짓은 하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타인의 처지 같은 것은 생각하지 않았다. 아마도 우리 사회의 극심한 병도 그것이 아닐까? 여간해서는 타인의 처지를 생각하지 않는 것. 타인을 받아들이는 포용력과 상상력이 없는 것. 자신의 주장이나 행복만이 절대적이라고 믿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