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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회가 지닌 병적 징후, <베리 코리안 콤푸렉스>
이영진 2006-01-03

지저분한 변두리 화장실에서 두 남자가 오럴섹스를 벌인다. 숨어든 두 남자가 몰래 쾌락의 신음을 흘리는 동안 반대편 여자화장실에선 여고생의 비명이 새어나온다. 교복 입은 소녀는 하혈 끝에 아이를 낳고 사라지고, 두 남자는 여고생이 비닐봉지에 싸서 버린 아이를 보듬고 나선다(성기완의 <즐거운 나의 집/후진>). 8년 뒤. 스스로 예수라 자처하는 최만복은 꽃 장식을 파는 길거리 소녀를 만난다. 불쌍한 소녀의 꽃을 팔아주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최만복. 그러나 그 소녀가 실은 8년 전 화장실에서 주웠다가 6개월 만에 다시 거리에 내다버린 생명임을 알지 못한다(임승률의 <오! 마이 갓>).

<베리 코리안 콤푸렉스>는 미술, 음악, 문학, 사진, 디자인, 영화 등 서로 다른 분야에 몸담고 있는 이들이 참여한 독특한 형식의 ‘릴레이 영화’다. 말잇기게임처럼, 앞사람의 시나리오를 받아서 자신의 이야기를 만들고 이를 나중에 한데 붙였다고 한다. 제목이 일러주듯이, 영화는 한국사회에 관한 임상 실험을 자처하고 나선다. 묘한 상황의 대조와 병치를 통해 한국사회의 단면을 열어 보인 뒤(<즐거운 나의 집/후진>), 내레이션으로 극중 위선적인 인물을 후벼파서 조롱하기도 하고(<오! 마이 갓>), 익명성에 사로잡힌 현대인들의 소통 불가능성을 따져보며(<포스트>), 허구와 진실을 가릴 수 있는 경계가 허물어졌다고 발언한다(<와일드 코리아>).

콤플렉스는 원인을 꼭 집어낼 수 없는 복잡한 병적 상황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던가. 영화는 한국사회가 지닌 병적 징후의 표면만을 훑고 지나간다. 통각을 촉구하지도, 치유를 자신하지도 않는다. 참고로 단일한 내러티브를 염두에 두고 이야기를 따르다 보면 혼란만 가중될 뿐이다. 그게 염려스러웠는지 마지막 단편 <리사이클드 포에버>는 앞선 7명의 감독들에게 왜 이 영화를 만들었는지 묻고, 이를 바탕으로 몇몇 장면을 떠올려 보충하지만, 이것 또한 불완전한 또 하나의 해석일 뿐이다. 영화는 내 멋대로 연상을 통해 자화상을 그렸으니, 네 멋대로 느낌을 덧붙이라는 권유만을 반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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