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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도현밴드의 유럽투어 다큐멘터리, <온 더 로드, 투>

윤도현밴드는 영화와 인연이 깊다. ‘윤도현’이라는 이름이 아직 낯설게 느껴지던 1996년 김홍준 감독의 <정글스토리>에서 가난한 록밴드 역을 맡아 실제와 허구의 경계를 넘나드는 연기를 선보였던 그들이, 2005년 유럽투어 다큐멘터리로 되돌아왔다. 근 10년의 세월 동안 ‘윤도현’이라는 이름은 전혀 다른 위상과 의미를 획득하게 되었다. 자신들의 이름을 내건 콘서트를 하기 위해 비닐하우스를 거처로 삼던 헝그리 정신의 록가수의 그림자는 사라진 지 오래다. 굳이 2002년 월드컵의 ‘오! 필승 코리아’를 상기하지 않아도, 이제는 몇 만명이 운집한 콘서트 장에서 강렬한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그들의 모습이 너무나 자연스럽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게다가 한 방송국의 간판급 음악 프로그램의 진행자로 자리매김한 윤도현의 모습에서 ‘도전정신으로 가득 찬 로커’보다는 ‘안정적인 생활인’의 냄새가 강하게 풍겨나오는 것은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윤도현밴드는 이제 대중적으로 가장 인지도 높은 록밴드가 되었다. 대중은 록밴드가 가장 절실하게 요구하는 소통의 대상이자, 음악적 성장에 있어 가장 큰 걸림돌이다. 그래서 뮤지션들은 때때로 정상의 자리에 섰을 때 은퇴를 감행하거나, 마약 혹은 각종 스캔들로 스스로를 추락시키곤 한다. 그런 극단적인 제스처는 그들을 새롭게 성장시키거나 대중과의 결별을 가져온다. 하지만 윤도현밴드는 그들의 건강한 이미지에 걸맞게 안전하고 건전한 방식으로 일탈을 시도한다. 그들의 이름이 전혀 알려져 있지 않은 유럽에서, 영화 속 대사 그대로 ‘맨땅에 헤딩하기’에 다름없는 투어 공연을 감행한 것이다.

제목에서 강조하고 있는 것처럼 이 영화의 주인공은 바로 ‘길’이다. 그것은 물리적으로는 ‘Yoonband’이라는 이름으로 투어버스에 오른 그들이 달리고 있는 유럽의 지리적 공간을 지칭하는 동시에, 함축적으로는 그들이 달려왔고 앞으로 모색해야 할 록밴드로서의 정신적 행로를 가리킨다. 윤도현밴드는 그 길을 함께 달려갈 길동무로, 자신들의 여정을 영상으로 남겨줄 김태용 감독의 다큐멘터리팀 이외에 ‘스테랑코(Steranko)’라는 영국의 신인 밴드를 택한다. 윤도현의 설명을 빌면, 스테랑코는 아직 신인 밴드이기 때문에 테크닉적인 면보다는 열정과 패기에서 윤도현 밴드에 새로운 영감을 불어넣어준 믿음직한 길동무였다고 한다. 특히 그들은 윤도현밴드가 봉착해 있었던 가장 큰 문제인, 관객으로부터 사랑받기 위해서 음악적으로든 외양적으로든 ‘잘 보여야 한다’는 강박관념을 떨쳐버리게 하고, 어떤 상황에서든 순수하게 음악과 공연 그 자체를 즐기는 마음을 회복시켜주었다고 했다.

길은 우리를 어딘가로 데려다 준다. 그러나 우리가 그 ‘어디’라는 지향점에 시선을 고정하는 그 순간, 길 위에 있는 존재하는 수많은 의미를 놓치게 된다. 이 영화는 목적지엔 별로 관심이 없다. 그렇기 때문에 이 영화에는 일반적 의미에서의 극적 재미는 존재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만큼 길의 본래 목적에 충실할 수 있다. 윤도현 밴드와 스테랑코가 공연장과 공연장 사이를 이동하는 투어버스 위에서 자신들이 흥얼거리던 멜로디에 입힌 “결국 우리는 살아가며 알게 되겠지∼ (Eventually, evantually we love and learn∼)”라는 가사는 이 영화의 주제를 압축적으로 들려준다. 게다가 음악을 통해 세상과 소통하고자 하는 록밴드의 멤버들이 모여서 즉흥적으로 멜로디와 가사를 주고받으며 하나의 노래를 만들어가는 이 장면은 투어버스를 훔쳐보는 관객의 눈과 귀를 즐겁게 만들어주기에 충분하다.

이 영화는 <온 더 로드>라는 존재하지도 않았던 영화의 시퀄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온 더 로드, 투>라는 제목을 달고 있다. <사랑, Two>에서 영감을 받은 이 제목은 그들의 첫 번째 여행이, 그들의 최고 히트곡처럼 많은 사람들에게 기억되는 의미있는 도전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데뷔 당시의 각오와 열정을 되살려 제2의 음악인생을 힘차게 시작해 나가라는 염원도 담겨 있다. 그런 점에서 이 영화는 윤도현밴드의 정체성과 관련된 의미있는 지점을 담아내고 있다. 그들은 더 이상 ‘윤도현밴드’ 혹은 ‘윤뺀’이라는 이름으로 규정되기를 원치 않는다. YB라는 새로운 이름으로 자신들을 불러달라고 말한다. 그들이 어떻게 YB라는 이름으로 탈바꿈하게 되는지가 이 영화 안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이름에서 윤도현이라는 대표 고유명사를 지워냄으로써 밴드로서의 정체성을 찾고자 하는 시도와, YB의 발음에서 착안한 ‘Why Be’라는 정체성에 대한 질문을 던지고 답을 찾아가는 과정이 생생히 담겨 있다.

이 영화에서 유럽의 음악계에 도전장을 던진 한국의 밴드가 무엇인가를 성취하는 감동적인 순간을 만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결국 유럽의 공연장에서도 그들의 자리를 채워주는 것은 수십명의 혹은 수천명의 한인 관객뿐이며, 진행상의 어려움이나 관객에 대한 열망은 ‘게릴라 콘서트’수준의 과장 혹은 소동조차 동반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이 영화 속에서 YB는 들리지 않게 신음하고 조용하게 성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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