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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지보고] 김성수·양동근 주연의 <모노폴리> 타이 촬영현장을 가다
김도훈 2006-01-04

킹콩의 아들이 수줍게 고개를 내밀 것 같은 기암절벽의 섬. 그늘을 드리운 협곡 속으로 유선형의 요트가 들어선다. 자세히 살펴보니 능숙하게 핸들을 조종하고 있는 사람은 배우 김성수다. 빠르게 물 위를 달리는 요트의 뒤쪽에는 좌석에 몸을 기댄 양동근의 머리카락이 열대의 바람에 날린다. 둘은 분명히 무슨 말을 주고받고 있지만, 십수 미터 떨어진 선박으로 들려오는 것은 기분 좋은 파도 소리와 모터 소리뿐. 12월21일 오전에 도착한 이곳은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의 <비치>로 유명해진 타이 푸켓의 피피섬이다. 세 시간 넘게 배멀미에 시달리며 섬에 당도한 스탭들은 땅에 발을 내딛지도 못한 채 촬영장비를 스피드 보트에 연신 옮겨 싣고 있다. “메이크업 팀 먼저!” 통통거리는 고무보트 위에서 들려오는 제작부의 외침이 해안가 절벽을 타고 맴돈다. 멀미에 시달린 스탭들의 얼굴이 이상할 정도로 건강해 보이는 것은 푸켓의 강렬한 태양에 그을렸기 때문일까. 얼굴색만으로는 타이 현지 스탭과 한국 스탭을 구분할 길이 없다. 그 사이에 김성수와 양동근이 타고 있는 요트의 갑판 위에서는 검은색 비키니를 입은 윤지민이 촬영 준비를 하고 있다. 피피섬 근교에서 촬영했다는 <007 황금총을 가진 사나이>가 묘하게 겹쳐 보이기 시작한다.

상위 1%가 되기 위해 대한민국의 돈을 훔쳐라

이들이 피피섬으로 날아온 것은 영화의 제목인 ‘모노폴리’에서 추측할 수 있다. 모노폴리는 블루마블의 원조라고 할 수 있는 백만장자 보드게임의 일종으로, 참가자들은 가짜 지폐를 들고 주사위를 굴리며 세상을 돈으로 사들일 수 있다. 남국의 낙원에 호텔을 짓는 것도, 값비싼 요트로 항해를 하는 것도, 모노폴리에서라면 언제든지 가능하다. 영화 <모노폴리> 역시 세상을 보드게임판처럼 내려다보며 일확천금을 꿈꾸는 자들의 이야기다. 액션 피겨를 만드는 것이 유일한 취미인 컴퓨터 천재 경호(양동근)는 카이스트를 나온 대한민국 은행전산망 관리자. 그는 액션 피겨 매장에서 존(김성수)이라는 남자를 만나게 되고 존이 은밀하게 꾸리고 있는 비밀조직 ‘1%클럽’을 만나게 된다. 존의 계획은 최고의 전문가들만을 모은 ‘1%클럽’을 세상을 움직이는 진정한 상위 1%의 권력으로 만들기 위해 자본을 모으는 것. 은행전산망을 관리하는 컴퓨터 천재 경호라면 대한민국의 모든 계좌로부터 소액의 돈을 인출해 천문학적인 자금을 만들어낼 수 있을 것이다. 이제 천국 같은 열대의 낙원에서 존은 경호에게 모든 비밀을 꺼내놓으려 한다. “경호야, 만약 너와 내가 영원히 자유로워질 수 있는 그런 방법이 있다면, 우린 그걸 택해야겠지?”

20회 이상의 산고 끝에 태어난 <모노폴리>의 시나리오는 존 도우와 카이저 소제와 팜므파탈이 걸어다니는 세계의 설화다. 이 복잡한 미스터리 보드게임에서 한푼도 잃지 않고 빠져나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닐 터. 배우들에게도 <모노폴리>는 그리 만만한 도전이 아닌 모양이다. 김성수는 “처음에는 시나리오가 좀 어려운 것 같았고, 캐릭터도 쉽게 떠오르지가 않았다. 두번 읽으니까 그제야 시나리오가 재미있게 느껴지기 시작했다”고 고백한다. 양동근 역시 “캐릭터가 처음엔 탐탁지 않아 받아들이기가 힘들었지만, 전체적으로 보니 내가 연기할 캐릭터에는 나중으로 갈수록 더 큰 무언가가 숨어 있는 듯했다”고 예의 그 신중하고 느린 말투로 전한다. 권력을 지닌 남자와 이용당하는 남자의 관계가 <데블스 에드버킷>을 연상시키는 <모노폴리>는, 감독의 말에 따르자면 “양동근과 김성수의 보이지 않는 긴장관계”에 많은 것을 기대는 영화다. “양동근이 상대역을 맡는다면 어려운 시나리오로도 근사한 영화가 나올 거란 믿음이 있었다”는 김성수의 말에서 상대역에 대한 믿음이 전해진다. 물론 양동근은 김성수에 대해 아무런 공치사도 하지 않는다. 과묵한 이 남자는 상대역을 향해 한번 쓰윽 웃어주는 것만으로 마음을 대신하고 있다.

다시 촬영장. 80인승 선박의 갑판에 카메라를 설치한 스탭들은 김성수가 운전하는 요트가 바다 위를 질주하는 장면을 서둘러 찍어야 한다. “김성수씨, 배 한번만 더 돌려주세요!” 요트의 굉음 때문에 감독의 말이 제대로 전해지지 않는 모양이다. 김성수는 요트를 아슬아슬할 정도로 선박에 가까이 대고서 외친다. “지금 말로 하세요!” 바다는 육지가 아니다. 카메라가 배우들을 태우고 지나가는 요트를 낚으려는 순간, 흔들리는 파도는 선박을 아래위로 흔들어버린다. 정신을 차리면 이미 요트는 프레임 밖으로 사라져버린 지 오래다. (촬영이 끝나고서야 알게 된 일이지만) 메이크업 담당자를 비롯한 십수명의 스탭들이 김성수가 운전하는 요트 아래의 선실에 숨어 있었다. 뼈마디 마디를 욱신하게 만드는 흔들림 때문에 촬영이 끝나자마자 쏟아져 나오는 스탭들의 얼굴은 새하얗게 질려 있다. 멀미약의 효력은 겨우 4시간. 멀미에 강하다 장담하는 사람일지라도 미리미리 멀미약은 챙겨두는 게 좋다. 반나절을 파도의 변덕에 몸을 맡기다보면 귓속 전정기관은 의지에 반해 욕지기를 치밀어오르게 만든다. 그러나 빠듯한 시간은 스탭, 배우와 기자들의 전정기관이 안정을 찾을 때까지 기다려주지 않는다. 10번이 넘도록 요트가 바다 위를 왕복한 뒤에야 촬영은 종료되었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배신, 누가 최종 승자일까

<모노폴리>는 이제 80% 정도의 촬영을 마쳤고, 후반작업을 거쳐 2006년 봄에 개봉할 예정이다. 과연 누가 보드게임의 최종 승리자가 될 것인가. 이야기를 조금 더 공개하자면, ‘1%클럽’ 계획이 성공한 날, 약속장소로 향한 경호를 기다리는 것은 존이 아니라 국정원 요원들이다. 같은 시간에 거액의 채권을 들고서 국제선 비행기에 오르는 존. 존의 배신을 끝까지 믿지 못하는 경호. 결정적인 단서를 손에 쥐고 나타난 존의 여인 앨리. 무엇이 진실이고 무엇이 거짓인가. 어쩌면 그들이 지상낙원에서 보낸 순간들은 열대과일처럼 화려하고 달콤한 맥거핀에 불과할지도 모를 일이다. 푸켓으로 귀향하는 요트가 맹렬하게 속도를 올리자, 어느새 인도양에는 어둠이 내려오기 시작했다.

이항배 감독 인터뷰

“한국에 없는 장르를 한번 열어보자는 욕심이 있었다”

-카이스트를 들락날락하며 꽤 오랫동안 시나리오를 다듬었다고 들었다. =2004년 7월부터 2005년 4월까지 20회 이상 퇴고를 했다. 조금이라도 어디선가 본 듯한 장면이 쓰여지면 가차없이 잘라내면서 만든 시나리오다.

-<모노폴리>를 데뷔작으로 선택한 이유는 무언가. =특별한 제작동기는 없다고 말해두자. 그저 트렌드에 따라가지 않는 새로운 소재를 발견하고 싶었다. 한국영화에는 없었던 장르를 한번 열어보자는 욕심도 있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할리우드적인 장르영화를 따라가자는 것은 아니다. <모노폴리>는 드라마가 중심인 영화이며 거대한 스케일을 자랑하는 영화도 아니다.

-‘새롭다’는 것에 신경을 많이 쓰는 듯하다. 새로운 장르영화라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 =가장 주안점을 두는 것은 이야기의 인과관계다. 인과관계가 딱 들어맞아서 마지막 장면으로 한번에 정리가 될 수 있는 이야기여야만 한다. 드라마에 조금이라도 티가 있어서는 안되고, 관객에게 주인공의 동기를 충분히 이해시킬 수 있어야 한다. 그래서 이야기의 전개가 유추되지 않으면서도 명확한 결론을 가진, 관객의 심장을 건드리는 미스터리물을 만들고 싶다.

-특별히 타이에서 로케를 하는 이유는 뭔가. 시나리오상으로는 이곳이 꼭 타이이어야 할 필요가 없지 않나. =타이에서의 로케는 영화의 소재와 주제를 마무리하며 엔딩을 장식한다는 의미가 있다. 주인공의 환경을 보여줌으로써 그가 드디어 꿈을 쟁취했다는 듯한 느낌을 보여주고 싶었다. 대사없이 상황만으로도 관객이 알아차릴 수 있도록 말이다.

-천재 해커 역에 양동근을 선택한 이유는. =솔직하게 말하자면, 양동근은 최초로 선택했던 배우가 아니다. 그가 연기해온 기존 캐릭터들 중에 이 영화의 주인공과 비슷한 역할도 없었기 때문에 처음엔 조금 망설이기도 했다. 그러나 만나자마자 “아, 이 사람이구나!” 하고 감이 왔다. 정말 여우처럼 스마트한 배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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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최호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