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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토록 영리한 토크쇼, <상상플러스>의 ‘올드 앤 뉴’
강명석 2006-01-05

일반 토크쇼의 상식을 깬 ‘올드 앤 뉴’

KBS2 <상상플러스>의 ‘올드 앤 뉴’에서 룰은 지키라고 있는 게 아니다. ‘올드 앤 뉴’는 분명히 세대간의 언어를 이해하고, ‘바른말’을 쓰기 위한 퀴즈쇼지만 그 사이 상당한 비속어가 등장한다. 언어에 관한 에피소드를 소개한다면서 네티즌의 닉네임을 핑계 삼아 ‘애무부 장관’ 같은 표현들도 슬쩍 끼워넣고, ‘홍간다’, ‘숑간다’ 같은 말을 한 다음 “이런 건 쓰면 안되겠죠?” 하는 식이다.

또 상황을 통제하는 MC 노현정은 두려움의 대상이나 형벌을 내리는 대상이 아니라 오히려 웃겨야 할 도전 과제다. 시침 뚝 떼고 있는 노현정이 패널들의 장난에 가끔씩 ‘무너져야’ 시청률이 오른다. 게다가 패널은 ‘마지막의 마지막’ 순간까지 정답을 맞히면 안된다. 정답을 일찍 맞히면 노현정 아나운서가 패널을 때리며 ‘공부하세요’라고 말할 수도 없고, 탁재훈이 ‘나나나송’을 부를 기회도 없다. 이 코너에서 가장 인기가 오른 탁재훈이 정답을 제일 못 맞히는 패널이란 사실은 흥미롭다. 답을 맞히기 전엔 ‘반드시’ 패널들이 계속 오답을 내면서 정신없는 토크를 선보여야 재밌다. 하지만 그들이 ‘선’을 넘을 때는 다시 룰과 MC에 의해 통제된다.

즉, ‘올드 앤 뉴’의 패널들은 룰을 존중하면서도 룰을 비웃어야 한다. 노현정 아나운서에 대한 상반된 태도를 보라. 그들은 어떻게든 노현정 아나운서의 무너진 모습을 보여주려고 노력하지만, 그렇다고 노현정 ‘아나운서’를 ‘연예인’의 자리로 끌어내리진 않는다. 시청자들 역시 연예인 패널이 단정한 아나운서를 놀리는 것엔 웃어도 ‘연예인처럼’ 대하는 것은 원치 않는다. 이 묘한 이중성, 퀴즈쇼의 통제와 토크쇼의 자유분방함이 긴장감을 이룰 때 ‘올드 앤 뉴’는 가장 재밌어진다.

그래서 패널이 답을 말하는 순간 긴장감은 최고로 오르지만 그게 정답에 대한 기대로 이어지진 않는다. 답을 맞혀 통제할 필요도, 통제에 도전할 필요도 없게 되면 이 코너는 끝난 셈이다. 그걸 바랄 시청자는 없다. 그래서 ‘올드 앤 뉴’의 핵심은 답을 맞히는 것이 아니라, 코너가 정한 통제를 얼마나 영리하게 위반하느냐에 있다. 실제 목적은 다른 토크쇼 이상으로 강도 높은 토크들이 오가는 토크쇼의 완성이지만, 그렇다고 퀴즈쇼의 역할을 놓쳐서도 안된다. ‘올드 앤 뉴’는 ‘답을 맞혀야 끝나지만 답을 맞혀서는 안되’고, ‘MC 말에 따라야 하지만 다 따라서는 안되는’ 독특한 토크 프로그램이 된다. 이는 오락 프로그램에 대한 한 가지 흥미로운 변화를 시사한다. 한때 토크쇼는 제한없는 폭로전이 시청률을 올리는 최고의 수단처럼 여겨졌다. 그런데 요즘 시청자들은 왜 무슨 말이든 하라고 ‘멍석 깔아주는’ 토크쇼대신 거친 단어만 나와도 MC의 눈치를 봐야 하는 이 프로그램을 즐겨 볼까. 하긴, 이제 ‘폭탄선언’이 오가는 ‘무규칙 이종 토크쇼’에 조금은 물린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