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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덜군 투덜양] 작업의 목적, <작업의 정석>

투덜양, 작업 선수들의 경기종목에 의문을 던지다

‘어머니는 말하셨지, 12월엔 건져라’(<작업의 정석> 광고 카피). ‘아버지는 말하셨지, 인생을 즐겨라’(현대카드 광고 카피) 두개의 카피는 상당히 많은 연애들이 최후의 순간 봉착하는 딜레마를 꽤 잘 보여준다. 어머니가 건지라고 하는 건, 아마도 싱글남·싱글녀들을 해마다 설 때면 해외여행 가고 싶게 만드는 집요하고도 끈질긴 덕담일 것이다. 올해는 시집(장가)가야지 라는…. 아무리 뜯어봐도 한판 걸지게 놀고 털어버릴 애인을 건지라는 말은 아니다. 반면 잘나가는, 스스로 잘나간다고 생각하는 남녀들에게는 어머니의 이 애타는 호소 뒤에서 ‘인생을 즐기라’는 환청이 더 크게 메아리치게 마련이고 과년한 남녀의 연애는 항상 어머니의 호소와 아버지의 권유 사이에서 삐걱거리다가 한명만 먼저 기차에서 뛰어내리게 되는 종착역에 도착한다.

<작업의 정석>은 한마디로 잘나가는 선수들의 기싸움에 관한 이야기다. 그런데 한 가지 미스터리한 건 이 영화의 깜찍한 패러디 광고문구처럼 목적어가 없다는 사실이다. 즉 두 선수가 어떤 목적으로 작업을 하는지 도통 모르겠다는 말이다. 영화 초반, 잘나가는 펀드매니저 지원은 맞선 자리에서 만나는 순간, 불꽃이 타오르기는 힘들겠지만 이 정도면 뭐 심각한 탈선은 아닌 정도로 생긴(희한하게도 그 남자는 딱 맞선 턱걸이용의 정답 몽타주다) 성형외과 의사를 만난다. 아하, 그녀는 신랑감을 찾는군. 집에서 자주 오는 전화, 줄줄이 사탕처럼 버티고 있는 누나들과의 가족사진이 모골송연한 긴장감을 만들어내면서 영화는 이 심증을 굳히게 한다.

그러나 민준이 참으로 ‘참하게’ 생긴 데다 안경까지 쓴 전형적인 ‘나 공부 잘해’ 스타일의 정신과 여의사를 유혹하는 장면은 관객을 헷갈리게 만든다. 앗, 이건 우리가 일반적으로 알아온 ‘남자 선수’와는 거리가 먼데? 보통 영화나 드라마에서 직업이 화려한 여자에게 작업하는 남자들은 주로 ‘여자 등쳐먹기’라는 목적을 지닌 백수 정조의 남자인 데 반해 민준은 직업과 배경, 모든 게 빵빵하다. 그의 아버지로 추론하건대 <사랑할 때 버려야 할 아까운 것들>의 잭 니콜슨을 꿈꾸는 것 같은 민준이 작업하는 게 예쁜 여자가 아니라 능력있는 여자라는 건 의아하다.

어쨌든 영화는 이처럼 영락없는 결혼시장에서의 신랑, 신부감 찾기 모드에서 시작한다. 그러다가 제주도의 태풍 에피소드는 느끼한 속물들이 진정한 사랑을 발견하는 것처럼 진행된다. 그런데 결말은 난데없이 “이제 깃발 꽂았으니 우아하게 각자의 갈 길을 가야지?”다. 그래서 이 선수들이 달리는 경기의 종목이 결혼인지, 연애인지, 원나잇 스탠드인지 경기가 끝나도 도무지 알 길이 없다는 게 이 영화의 미스터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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