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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토피아 디스토피아] 대한민국의 ‘힘’

12월6일자 <조선일보> 만평의 제목이다. 일군의 여성들이 황우석 박사 연구팀에 꽃다발을 건네며 외친다. “힘내세요.” ‘1천명 난자 기증식’이 벌어지는 현장은 한바탕 눈물바다, 감동의 도가니다. 그뿐인가? 그 광경을 지켜보는 외신 기자들도 눈물을 흘리며 말하기를 “감동 먹었다…”. 한쪽 구석으로 시민들에게 쫓겨다니는 MBC 취재진의 모습도 보인다.

만평에 묘사된 것은 대부분 사실이다. 난자를 주는 이들도 울었고, 받는 이들도 울었다. 현장에 있던 MBC 취재진이 몰매를 맞을 뻔한 것도 사실이다. 한 가지 내가 동의하지 못하는 것은 외신 기자들까지 울며 “감동 먹었다”고 했다는 대목. 애국적 난자 기증에 감동 먹는 이상한 감성은, 내가 아는 한, 매우 한국적인 현상이다.

<연합뉴스>의 기사를 인용해보자. “독일 언론은 이 과정 속에서 나타난 한국 국민들의 과잉반응과 황 박사에 대한 맹목적 지지 현상을 납득하기 어려울 만큼 ‘기괴하다’고 표현하고 있다.” 황 박사 파동을 바라보는 외국의 시각은 이런 것이다. 한마디로 우리가 ‘대한민국의 힘’이라 자화자찬하는 그것을 서구인들은 ‘기괴하다’고 느낀다.

언젠가 황 박사가 강연차 독일에 간 적이 있다. 그의 강연을 듣고 독일 사람들은 경악을 했다고 한다. 그의 강연은 슬라이드로 기념우표를 보여주는 것으로 시작됐는데, 거기에는 척수장애인이 휠체어에서 벌떡 일어나 가족과 포옹을 하는 장면이 그려져 있었다. 차분한 과학을 기대했던 사람들은 황 박사의 이런 제스처를 매우 기괴하게 느꼈다는 것이다.

그곳 사람들에게도 역시 궁금한 것은 “그 많은 난자를 대체 어떻게 구했냐”는 것. 이 질문에 황 박사는 “한국에는 연구를 위해 자발적으로 난자를 기증할 여인들이 넘쳐난다”고 답했다고 한다. 이 대답을 듣고 경악했던 독일의 학자들은 이번에 ‘1천인 난자 기증식’을 지켜보면서 황 박사의 주장이 불행히도 거짓이 아님을 알게 됐을 것이다.

전해 들은 바에 따르면 그 자리의 독일 학자들은 황 박사의 강연을 들으며 <007>이나 <배트맨>에 나오는 기괴한 과학자, 즉 윤리 따위는 개의치 않고 과학적 업적을 통해 세계를 지배하겠다는 망상에 빠진 과학자를 떠올렸단다. 실제로 황 박사가 10살 어린이를 대상으로 임상에 들어갈 것을 제안했다는 섬뜩한 기사를 읽고, 독일인들이 받은 인상이 과장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성과에 눈이 먼 황 박사와 같은 과학자는 어느 나라에나 있다. <007>이나 <배트맨>에 나오는 과학자도 한국인은 아니잖은가. 논문을 조작하는 과학자 역시 어느 나라에나 있다. 따라서 우리가 부끄러워해야 할 것은 황 박사의 존재가 아니다. 우리의 수치는 그런 황 박사를 위한 과잉반응과 그에게 보내는 맹목적 지지의 분위기다. 그것만은 오직 대한민국의 현상이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가 상찬하는 ‘애국’이 바깥의 눈에는 ‘기괴’하게 보일 수 있다. 김정일 위원장의 초상이 비에 젖는다며 버스에서 내려 플래카드를 회수하던 북한 응원단을 보며 우리가 느끼는 당혹감은, 황 박사에 대한 한국인들의 무한한 신뢰와 맹목적 충성을 보며 세계인들이 느끼는 당혹감과 똑같다. 북한 응원단이 그 충성질을 하며 수치심 대신에 자부심을 느끼듯이, 우리 역시 애국질을 하며 거기서 무한한 자긍심을 느낀다.

일러스트레이션 김순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