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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서 왕의 전설 제대로 보기, <아발론 연대기> 1∼8권
이다혜 2006-01-06

아서 왕을 모르는 사람은 없지만 아서 왕 이야기를 제대로 읽은 사람은 많지 않다. 켈트 문화 전문가인 장 마르칼은 40년에 걸친 연구의 결과물로 아서 왕 연대기를, 아서 왕과 그를 둘러싼 켈트의 전설을 흥미진진한 소설로 내놓았다. 8권에 달하는 <아발론 연대기>에서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은 책의 만듦새다. 시인이자 교수이며 번역가인 김정란의 번역은 옛날이야기를 듣는 듯 편하게 책을 읽게 해주고, 곳곳에 실린 관련 그림들은 내용의 이해를 돕는다. 주요인물 소개와 권두언(서평과 저자의 말, 편집자의 말 등), 저자가 쓴 권말의 해설 등은 아서 왕 이야기를 신화적으로, 문화적으로 좀더 풍부하게 읽을 수 있는 가이드가 되어준다. 아서 왕 전설은 다른 모든 전설(혹은 신화)이 그렇듯 수많은 예술작품의 원형이다. 그리스 신화에서도 발견할 수 있는, 아들이 아버지를 죽인다는 예언에서 싹트는 비극이나 근친상간, 국가의 평안을 뒤흔든 연애담과 같은 이야기가 책장을 술술 넘기게 만든다. <아발론 연대기>의 가장 큰 성취는 아서 왕과 마법사 멀린, 호수의 기사 란슬롯, 귀네비어 왕비와 같은 인물에 가려 있던 매력적인 인물들을 생생하게 끌어냈다는 데 있다. 사랑과 증오의 여주인인 요정 모르간, 여자 문제로 늘 정신이 몽롱한 가웨인, 성배의 영웅 퍼시발 등이 바로 그들. <다빈치 코드>로 세계인의 관심사가 된 성배 이야기의 기원에 대한 이야기를 듣는 일은 거부할 수 없는 매력이다. 트리스탄과 이졸데의 이야기를 감동적으로 읽은 뒤 “인간의 사랑은 만족과 함께 가지 못할 때만 아름답네. 어떤 작가도 만족한 관능을 묘사하지는 않지. 왜냐하면 그런 건 존재하지 않으니까”라는 권말 해설을 읽을 때의 냉소적인 즐거움은, 어른이 되어 옛 전설을 읽을 때만 느낄 수 있는 쾌감이다.